전봉준 투쟁단, 아스팔트 농사지으러 농기계 몰고 청와대로 진격

하야정국이 국민항쟁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이 전국적으로 결성되고, 100만촛불에 이어 30일 국민총파업이 예고 돼있다. 민플러스는 퇴진행동의 대표자들을 만나 정국 진단과 각 진영의 계획을 들어 본다. 세 번째 순서로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김영호 의장을 만났다.[편집자]

▲ 전봉준 투쟁단이 농기계를 몰고 청와대로 진격하고 있다.

“쌀농사 짓던 농민들이 아스팔트 농사로 돌아선 지 오래다. 이제 농사 중의 상 농사, 역사 농사를 지을 때다. 120년 전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뜻을 이은 전봉준 투쟁단이 썩어빠진 위정자를 처단하고 병 든 역사를 밑동까지 갈아엎는다”

땅끝 마을에서 청와대까지 ‘전봉준 투쟁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호 전농 의장을 만났다. 김 의장에게선 갓 지은 쌀밥의 구수한 향이 난다. 그래서일까. 김 의장의 입을 통해 나온 ‘혁명, 항쟁, 궐기’ 같은 표현이 전혀 과격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랫목에서 듣던 푸근한 옛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땅 끝 마을 해남과 경남 진주에서 농기계를 몰고 청와대로 진격한다는데 무슨 일인가?

“농민들은 오래전 쌀농사를 포기했다. 왜? 쌀 80kg 한 가마니에 10만 원이다. 개 사룟값보다 못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17만원 하던 쌀값을 21만 원까지 올려주겠다고 공약했다. 올려주긴 고사하고 오히려 10만 원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농민들은 쌀농사 대신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땅을 깊게 갈아 거름을 내고 씨앗을 뿌려야 한다. 농기계는 땅을 갈아엎는 데 쓴다.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농기계를 몰고 청와대로 향하는 것은 박근혜 일당을 밑동까지 갈아엎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청와대로 가는 농민들을 ‘전봉준 투쟁단’이라고 부른다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120년 전 동학농민들은 輔國(보국, 충성을 다하여 나랏일을 돕고) 安民(안민,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斥洋(척양, 서양의 침략을 물리치고) 斥倭(척왜, 일본을 배척한다)를 위해 전봉준 장군과 함께 항쟁을 했다. 오늘날 병든 이 나라에서 농민이 해야 할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박근혜-최순실의 농단으로 국정이 마비됐으니 박근혜를 퇴진시켜 나랏일을 도와야 하고, 쌀값 폭락과 일자리 대란으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으니 이 또한 해결해 백성을 평안하게 해야 한다. 미국 군대가 이 땅에 주둔해 전쟁 놀음과 사드 같은 무기를 강매하고 있으니 이를 물리쳐야 한다.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는 일본을 단죄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농민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뜻을 이어 한철 농사가 아니라 우리 후손 대대로 물려줄 ‘역사농사’를 짓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스스로를 ‘전봉준 투쟁단’이라고 부른다.”

-전농이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할 때, 오늘과 같이 ‘박근혜 퇴진’이라는 거대한 국민항쟁으로 발전할 것이라 예상했나?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때도 노동법 개악, 쌀값 폭락,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국민들은 총궐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국민항쟁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폭발했지만 이것은 중병이 든 한국사회의 쌓이고 쌓인 모순이 최순실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계기가 있다고 다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살해당하기까지의 317일, 민중진영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알리고, 연대하고 힘을 모아 4.13총선을 승리하고, 부검정국을 돌파했다. 처절하고 헌신적인 투쟁이었지만 대신 승리의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이런 힘이 있었기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그 문을 박차고 국민 항쟁의 바다로 진출할 수 있었다.”

-87년 6월항쟁과 비교한다면?

“87년에 저는 어린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다. 투쟁의 중심부를 조망할 위치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시에는 ‘호헌철폐, 직선쟁취’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해방이후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바꾸는 투쟁이다.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근본적인 가치가 ‘박근혜 퇴진’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87년 ‘군부독재 타도’ 때와는 다르다. 사드 반대 투쟁으로 미국의 민낯을 보았고, 국정교과서에서 친일의 뿌리를 찾았다. 개성공단 폐쇄에서 평화의 파괴범이 누군지 확인했다. 세월호와 백남기 농민에게 독재의 폭력을 가하는 파렴치한 정권을 보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부역한 공범 새누리당, 공범 보수언론, 공범 검찰, 공범 재벌이 있다는 사실이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금의 국민항쟁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퇴진행동’을 강화하는데 전농은 어떤 역할을 계획하고 있는가?

“농민들은 언제든, 동력이 얼마가 되든, 민중의 투쟁 역사에서 주력이었다. 전농은 시·군단위로 조직돼 있는 만큼 ‘퇴진행동’의 지역조직을 건설해 보고자 한다. 단 하루만에 148곳에 설치됐던 백남기 농민 분양소의 경험을 살려 볼 계획이다.

-퇴진행동의 대표자로써 국민들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씀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구한말 위정자들은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혁명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청일전쟁이 조선 땅에서 발발하고, 10년 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래서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은 백성을 탄압한 위정자이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위기를 맞으면 누가 적인지 누가 국민의 편인지 명확해 진다. 불난 집에 와서 도둑질(사드 배치)하는 미국, 어수선한 틈을 타 군국주의를 부활(한일군사협정)시키려는 일본, 이들을 돕는 자가 누군지 확인해야 한다. 위정자, 매국노들을 120년 전처럼 놓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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