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반도 위기, 세 가지 오해와 진실 ③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었다. 위기가 고조된 후 대화 국면이 열린다는 ‘법칙’이 그것이다. 남북 관계에서건, 북미 관계에서건 이 ‘법칙’은 탈냉전 시기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긴박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혹은 그 정도에 준하는 위기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그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남북 대화 혹은 북미 대화가 시작되곤 했다.

‘법칙’의 대표적 사례들

1993년 위기

1993년 3월 한미군사연습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자 북은 ‘준전시 사태’를 선포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위기가 고조되었다. NPT 탈퇴 효력 발생(6월 12일)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북은 미국에 대화를 제의했고, 미국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1993년 6월 2일 북미 회담이 열렸고, 6.11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1994년 위기

미국은 주한미군 기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워 북에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북은 이에 반발하여 IAEA 탈퇴를 선언하고,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14일 미국 주요 관리들은 백악관에 모여 북의 영변핵시설 기습공격을 논의했다. 그 시점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극적 핵합의에 도달했다. 클린턴 정부는 김일성-카터 합의안을 수용했고, 북미 대화가 재개되어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났다.
▲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났다.

2002년 위기

2001년 새롭게 등장한 미국 부시 정부는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핵공격 대상 국가로 북을 지목했다. 또한 중유 제공을 거부하면서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2002년 1월 북은 핵시설 활동 재개 및 운영 정상화를 발표하고, 8,000여 개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진행하여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북미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 4월 23일 베이징에서 3자회담이 개최되었다. 북은 6월 플루토늄의 무기화를 선언했다. 즉 핵무기를 개발했음을 선언했다. 8월 27일 6자회담이 시작되었다.

2015년 위기

2015년 8월 4일 우리 군이 비무장지대의 철책 통로에서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군은 북의 ‘도발’ 사건으로 규정하고, 심리전 방송을 재개했고, 북은 대북 확성기를 향해 사격을 실시했으며, 우리 군 역시 사격으로 대응했다. 북 총참모부는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을 경우 군사 행동에 들어가겠다”라고 통보했고, 준전시 사태를 선포했다. 8월 22일 오후 북의 제안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시작되었고, 8월 25일 남북 공동보도문이 발표되면서 위기는 해소되었다.

▲ 남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이 2015년 8월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 남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이 2015년 8월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2017년 위기

2017년 9월 19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유엔총회 연설장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맞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가 무엇을 행각했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선제공격이나 단독공격을 포함한 모든 군사적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었다. 위기가 고조되자 남북 사이에 대화 접점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2월 남북 정보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회동하여 남북 대화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세 가지 이유

이 ‘법칙’은 2024년 위기 역시 남북 대화 혹은 북미 대화가 재개되어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2024년의 상황은 이 ‘법칙’이 만들어졌던 과거와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

첫째, 한반도에서 적대하는 세력들 사이에 강대강 군사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50차례가 넘은 한미, 한미일 군사연습을 진행하고, 20차례가 넘은 전략자산(핵공격 무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북에 대한 핵공격 연습을 실시했다. 북 역시 한국과 미국에 ‘초강경 대응’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군을 공격할 수 있는 무장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북은 2018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 이후 한미 양국이 제안하는 대화는 ‘시간 끌기용’으로 단정했다.

둘째, 대화 재개를 가능하게 하는 기대 심리가 사라졌다. 과거 위기가 고조되었다고 대화가 시작되는 국면이 열린 것은 ‘비핵화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있었다. 한미 양국은 대화를 통해 북의 비핵화를 ‘유도’ 혹은 ‘압박’할 수 있다는 기대, 북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한미 양국의 적대 정책을 ‘폐기’ 혹은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비핵화 협상은 종말을 고했다. ‘법칙’이 가능하게 했던 비핵화 협상에 대한 기대 심리는 사라지고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만이 지배하고 있다.

셋째, 북미 양측에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대화 분위기를 조성했던 중국 역할론 역시 사라졌다. 과거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제재와 압박, 대화를 통해 북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북과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중재자 역할에서 벗어나 북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존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는 등 중국은 이미 2019년부터 중재자 역할에서 벗어났다.

이상 세 가지 이유로 위기가 고조되더라도 대화 국면은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2024년부터 펼쳐지는 한반도 전쟁 위기 정세는 ‘장기성’을 특징으로 한다. 위기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확전하여 전면전으로 돌입할 수 있는 새로운 위기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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