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반도 위기, 세 가지 오해와 진실 ①

2024년 한반도 전쟁 위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오해를 다룬다.

① ‘공포의 핵균형’은 유효한가

② 북은 ‘전쟁할 결심’을 했는가

③ 위기가 고조되면 대화 국면이 열리는가

 연초에 한 노동운동가를 만나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최근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분 자신은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면서 핵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왜 최근 북미 사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그분께 그것은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모델로 한 이론이기 때문에, 지금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드렸다. 즉 북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분의 놀라는 표정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분이 언급한 것은 바로 ‘공포의 핵균형’ 이론이다. 핵을 가진 국가들끼리의 전쟁은 곧 핵전쟁을 의미하며, 핵전쟁은 공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핵보유국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수십 년 동안 국제정치학계를 풍미 해왔고,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는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큼 평화로운 국제상태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특히 냉전 해체 이후 ‘공포의 핵균형’ 이론은 한국 사회 운동 진영으로 급격히 전파되었고, 급기야 하나의 법칙처럼 수용되었다. 북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장거리 투발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갖게 되자,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산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현실은 ‘공포의 핵균형’ 이론과 충돌한다. ‘전쟁이 없다’고 말하는 이론과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현실이 충돌하는 것이다. 위 노동운동가의 복잡함은 바로 이 충돌에서 발생한다.

공포의 핵균형 이론 “소련은 미국과의 대결을 피했다”

그런데 이런 혼란과 복잡함은 이론에 대한 오해에서 생긴 것이다. 이론은 자연과 사회의 객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따라서 이론은 현실을 반영한다. 이론에 맞춰지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포의 핵균형’은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펼쳐지던 냉전 시기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지구를 몇십 번을 파괴하고도 남을 막대한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소련이 냉전적 대결을 펼치면서도 전쟁으로까지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공포의 핵균형’ 만큼 단순하고 명료한 설명 틀은 없었다.

그러나 ‘공포의 핵균형’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현실을 반영해서 나온 이론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은 미국과의 대결을 회피했다. 미국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건,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평화 의지 때문이었건, ‘평화공존론’으로 익히 알려진 소련의 대외정책은 미국과의 핵전쟁을 피하는 것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전쟁마저 불사하며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미국의 강경 입장에 압도되어 미사일 기지 건설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 후 소련은 냉전 체제를 수용하고, 냉전 체제 안에서 미국과 평화적 경쟁을 추구했다.

이렇듯 ‘공포의 핵균형’ 이론은 냉전 시기 미소 핵대결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이론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실이 바뀌면 이론도 바뀌기 때문이다.

바뀐 현실 “북은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

신냉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최근 국제질서에서 미국과 대결을 펼치는 주요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이 두 나라는, 과거 소련과 달리,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미·러 대리전이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만이 독립을 시도한다면, 설령 미국이 대만을 강력히 지원하더라도 중국은 대만을 공격해 무력 통일을 시도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공통적인 지향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데 있다. 즉 미국 중심 일극 질서를 다극 질서로 바꾸려고 한다. 미국의 이해관계와 중·러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역시 과거 냉전 시기 미소 대결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과거 소련은 미국의 질서 하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대결을 펼쳤다.

북도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정책·국가정책으로 확정했지만, 북의 이런 입장과 태도는 사실 2022년 10월부터 본격화하였다. 그때부터 한미 군사 연습이 진행될 때마다 ‘맞춤형 대응 군사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핵정책을 법으로 만들었고, 미 본토와 미군 기지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 체계를 갖추는데 사력을 다해 왔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확정적으로 결론 내는 것은 위험하다. 어떻게든 평화적 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핵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도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는 언젠가는 충돌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공포의 핵균형’ 이론은 결코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2024년 한반도 전쟁 위기의 현실은 당면한 전쟁 위기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전쟁을 막기 위한 정확한 실천을 요구한다.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위험한 정책과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한미 동맹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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