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는 애초에 없었다 ①

최근 ‘유엔사’ 재활성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유엔사에 편입시키고, ‘유엔사’를 전투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재활성화의 목표이다. 재활성화가 완성되면 사실상 아시아판 나토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아시아판 나토는 북·중·러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유엔사’의 법적 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유령사령부’인 셈이다. 따라서 ‘유엔사’ 재활성화는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사’ 문제를 오랫동안 추적해 왔던 이시우 사진작가가 지난 11월 9일 “한-유엔사 참전국 국방장관회의에 즈음한 토론회 『‘유엔사’ 재활성화와 역학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에서 발표한 글을 요약·재구성하여 세 번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① 맥아더는 ‘유엔사령관’이 아니다
②법적 근거 없는 ‘유엔사’ 후방 기지
③유엔 깃발 사용도, 군사분계선 통과도..... ‘유엔사’의 권한 아니다

1950년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사태가 ‘평화의 파괴’를 구성한다고 결정하고(안보리 결의 82호), 6월 27일 원조 제공을 권고하고(안보리 결의 83호), 7월 7일 미국통합사령부 창설을 권고했다(안보리 결의 84호). 그런데 7월 24일 사령부 창설식에서 통합사령부 대신 뜬금없이 ‘유엔사령부’란 이름으로 바꿔치기 되었다.

▲ '유엔사'가 유령단체라는 캠페인이 통일대교에서 열렸다.(2020.11.24) ⓒ사진제공: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 '유엔사'가 유령단체라는 캠페인이 통일대교에서 열렸다.(2020.11.24) ⓒ사진제공: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미국, 미국통합사령부를 ‘유엔사’로 명칭 변경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트리그브 리(Trygve H. Lie)는 안보리 결의 당시 유엔의 군대를 창설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 의해 거절되었다. 1950년 7월 6일 안보리 의장(노르웨이 유엔 대사)은 다시 한번 ‘유엔을 위한 기구로서’라는 단어를 결의안 84에 넣을 수 있는지 유엔 미국 대사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미국 대사는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안보리 결의 84에서 ‘유엔사령부’가 아닌 ‘미국통합사령부’가 결정된 이유다. 미국통합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내용도 결의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유엔 결의 84에 따르면 ‘미국통합사령관’을 임명할 권한은 유엔 사무총장에 있지 않고, 미국 대통령에 있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7월 10일 일본 도쿄에 있는 맥아더에게 ‘사령부’를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지시 서한에 명시된 명칭은 ‘유엔사령부’였다. 맥아더는 7월 11일 트루먼에게 보낸 답장에서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 국제적 군대의 유엔사령관”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미국통합사령부’는 ‘유엔사령부’로 둔갑하였다.

7월 25일 유엔 미국 대사는 미국통합사령부 명의의 첫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맥아더가 도쿄에서 ‘유엔사령부’ 일반명령 1호에 의해 ‘유엔사령부’를 창설했다는 내용이 보고되었다. ‘유엔사’라는 명칭이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7월 31일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 대사는 ‘유엔사’는 단지 미국통합사령부 산하의 “야전기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 보고서에서는 ‘유엔사령부’와 통합사령부라는 명칭이 혼용되었다.

미국이 ‘유엔사’로 둔갑시킨 이유

미국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7월 7일 안보리 결의 84 채택 당시 ‘유엔사령부’라는 명칭을 반대했다. 그래서 미국통합사령부라는 명칭이 채택되었다. 그런데 그 후 미국은 ‘유엔사령부’라는 명칭을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을 공식화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미국의 법절차와 관련된다. 미국이 미국통합사령부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전쟁 선포를 하지 않고 미국통합사령부를 설치하려면 안보리 결의 84가 ‘미국통합사령부 설치 조치’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 84는 미국통합사령부 설치를 ‘권고’한 것이지 ‘조치’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전쟁 선포를 하지 않고서는 미국통합사령관을 임명할 수 없었다.

유엔 헌장은 안보리의 ‘권고’와 ‘조치’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아래 유엔 헌장 39조를 보자. 39조는 평화 유지 혹은 회복을 ‘권고’하거나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유엔안보리에 부여했다.

유엔 헌장 제39조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권고하거나, 또는 제41조 및 제42조에 따라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조치’의 구체적 내용은 아래 41조와 42조에 담겨 있다. 41조는 외교적 조치이고, 42조는 군사적 조치이다.

제41조

안전보장이사회는 그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또한 국제연합회원국에 대하여 그러한 조치를 적용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 조치는 경제관계 및 철도·항해·항공·우편·전신·무선통신 및 다른 교통통신 수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과 외교관계의 단절을 포함할 수 있다.

 

제42조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할 것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는 국제연합회원국의 공군·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봉쇄 및 다른 작전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안보리 결의 84가 결정한 것은 ‘권고’였다. ‘권고’는 유엔 회원국의 의무가 아니다. 만약 ‘강제조치’가 결정되었다면, 모든 유엔 회원국이 ‘유엔사’에 참여해야 한다. ‘유엔사’에 참여한 16개국은 안보리 결의 84의 ‘권고’를 수용한 국가일 뿐이다.

미국은 안보리 회의에서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을 때, 자신이 주장했던 ‘미국통합사령부’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자신이 반대했던 ‘유엔사’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미국 법절차 상 미국통합사령관을 임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엔사무국 법률과, ‘유엔사’라는 명칭은 ‘잘못된 이름’이라고 인정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유엔사’ 해체가 결의된 바 있다. 당시 유엔 총회 역시 ‘유엔사’가 제대로 된 명칭이 아님을 인지하고, 인정했다. 유엔 총회 해체 결의안에서 유엔사령부는 인용부호 처리된 “유엔사령부”로 명기되었다.

1994년 유엔사무국 법률과(UN Office of Legal Affairs) 역시 ‘유엔사’는 잘못된 이름(misnomer)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맥아더는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보다 우리에게 더 알려진 인물이다. 맥아더에 붙는 직책이 바로 ‘유엔사령관’이다. 그러나 맥아더는 ‘유엔사령관’이 아니다. 맥아더는 ‘미국통합사령관’일 뿐이다.

따라서 ‘유엔사’ 재활성화 역시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 미국이 냉전 시기 자국의 이익을 위해 ‘유엔사’라는 명칭을 도용해 왔고, 신냉전 시기인 지금 또다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시아판 나토 결성을 위해 ‘유엔사’를 도용하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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