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친북 Vs 친일반북’, 당신의 선택은?
1950년 2대총선과 정치구도 닮은꼴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의 육사 흉상은 지난 2018년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공개됐다. ⓒ육군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의 육사 흉상은 지난 2018년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공개됐다. ⓒ육군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의 주역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 영웅 5명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된다.

국가보훈부가 철거를 지시했다. 홍범도 장군이 1927년 공산당에 입당해 소련과 항일무장투쟁을 공조했다는 이유다.

앞서 보훈부는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사업을 막기 위한 헌법소원 청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945년 광복 직전까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천재 작곡가인 정율성이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는 이유다.

한편 보훈부는 국립현충원 안장기록에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친일’ 행적을 삭제했다.

백선엽은 21살 때인 1941년 일본 괴뢰군대인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고, 1943~45년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설립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 자신도 회고록 ‘군과 나’ 일본어판에서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었다”라고 자신의 친일 행위를 인정한 바 있다.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작곡가 정율성, 일본 괴뢰군 장교 백선엽.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작곡가 정율성, 일본 괴뢰군 장교 백선엽.

보훈부는 왜 항일독립운동가 대신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옹호할까?

보훈부의 이런 반역적인 처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단순히 빼앗긴 국권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논리라면 항일무장투쟁 영웅이라도 사회주의 세력과 함께 일본에 맞선 분들은 독립유공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홍범도 장군 등의 흉상 철거도 윤 대통령의 이런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이유다.

항일 영웅 정율성은 반국가적 인물로 치부하고, 독립군에 총을 겨눈 일본군 장교 백선엽의 만행을 미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에서 반공주의자로 돌변한 백선엽이 6.25전쟁에 참전해 당시 이승만 정부를 지켜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은 왜 항일운동을 폄훼하면서까지 반북 대결의식을 부추길까? 총선이 코앞인데 친일 딱지가 두렵지 않은 걸까?

여기에는 윤석열 정권의 섬찟한 총선전략이 숨겨져 있다.

총선, ‘반일 Vs 반북’ 체제 대결장

윤 대통령은 25일 국민통합위원회에 참석해 “진보는 우리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다”라며, 대한민국의 비약을 위해 이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 때는 민주화운동 세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공산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의도된 발언 이면에는 총선을 무한체제대결로 끌고 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

총선이 20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정세는 친일매국정권 심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윤석열 정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이런 선거 구도를 조장해 왔다. 뭔가 다른 구상이 있다는 소리다.

윤석열 정권의 총선전략은 친일매국 프레임을 반북대결 선동으로 돌파한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국민에게 대놓고 묻는다. 당신은 “반일이냐? 반북이냐?”라고. 반일이면 종북으로 몰고, 반북이면 매국 행위도 눈 감으려는 속셈이다.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전쟁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이렇게 되면 총선에서 유권자는 ‘친일이지만 반북’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반일하는 친북’을 선택할 것인가만 남는다. 전쟁위기 속에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과거에도 이런 구도의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 6.25전쟁 한 달 전인 1950년 5월 30일에 치러진 2대 총선이 그랬다.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가 강제 해산된 상태에서 이승만 정부의 관료는 대부분 친일파로 채워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일 시위는 자연히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총선이 다가왔다.

이승만 정권은 총선 패배가 예상되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1949년 한 해 동안만 유력인사 11만4천여 명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구속했다. 구속된 이들 대부분은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촉구하던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결국, 2대 총선은 반일과 반북 사이의 체제대결장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총선이 치러진 후 6.25전쟁이 발발했다.

해방정국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지금 ‘반일 Vs 반북’ 간의 체제대결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 4월이 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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