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없는 부산영화제, 창조적 문화말살이 시작되다

올 여름 흥행몰이를 했던 영화 '부산행'없는 부산영화제가 개막했다. 태풍 '차바' 영향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막이 오른 부산영화제는 그러나 부산시와의 갈등 속에서 전 집행위원장의 부재 속에 치러졌다. 영화계의 보이콧으로 어렵사리 치러지는 부산영화제의 속사정은 정말 무엇일까? [편집자] 

이용관 없는, 낯선 부산국제영화제

▲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부산영화제에서 그의 부재는 부산영화제의 흑역사를 예고하는 것이다.(사진출처 :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이하 부산영화제) 두 사람의 부재로부터 시작했다. 그간 당연하게 조직위원장을 맡아왔던 부산시장과 부산영화제의 산파이자 상징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없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2014년 영화 ‘다이빙 벨’ 상영을 두고 마찰을 빚은 후, 감사원 감사와 부산시의 검찰 고발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지난 10월 6일 개막해서 오는 15일 폐막하는 부산영화제는 태풍 ‘차바’가 영화제마저 휩쓸고 간 듯 시작부터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용관 없는 부산영화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시 고발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28일, ‘업무상 횡령’이라는 다소 불편한 죄목으로 징역 1년을 구형받았고 오는 10월 26일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업무상 횡령’은 공인에게는 명예실추의 죄목이다. 이에 대해 한국 영화계에서는 검찰이 지나치게 무리한 잣대를 적용했다는 반응이다. 부산시가 검찰에 고발한 내용의 대부분은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음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기소된 케이블체널사업 관련건도 혐의 입증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산영화제와 케이블채널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가 지지부진해지자 이에 대한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회사에게 협찬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2750만원을 편법 집행한 것이 업무상 횡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 집행위원장의 지시나 직접 결재 없이 사무국장이 독단적으로 집행했고 이에 대한 일관된 진술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최종 재판의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용관의 부재가 의미하는 부산영화제의 미래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의 무게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이제 ‘창조적 몰락’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정치와 관의 무리한 개입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회복 불능의 선고를 받은 거나 진배없다. 재판의 결과는 부산영화제의 미래와는 이미 별개다. 시간이 지나면 이용관 개인의 명예는 일정하게 회복될 수도 있겠지만 부산영화제가 받은 상처에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사실 부산영화제는 오랜 기간 정치권의 간섭을 받아왔고 그때마다 일관된 원칙으로 중립을 지쳐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간 조직위원장 체계의 불안한 출발

▲ 올해 부산영화제 포스터, 한 그루 소나무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사진출처 :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외형적으로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부산시장이 맡아오던 조직위원장을, 부산영화제의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인 김동호위원장이 맡게 되면서 민간 위원장 체계로 첫 출발을 내딛고 갈등도 봉합되어가는 듯 보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부산영화제의 문제를 되짚어보려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파행과 갈등의 봉합을 더듬어봐야 한다. 지난 7월에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역시 민간 조직위원장 체계로 다시 출발했다. 정지영 감독은 부천영화제의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김만수 부천시장과 함께 개막식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모토를 확인하며, 10여 년간 이어온 부천영화제 파행에 대한 봉합을 공식 선언했다.

부천영화제는 부천시의 김홍준 집행위원장 경질과 이에 대응한 ‘리얼판타스틱영화제’ 개최로 대립의 극점까지 갔었다. 이후 영화계의 협의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시장교체에 힘입어 겨우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아직도 예전의 부천영화제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최소한 희망은 보여줬다. 이처럼 부천영화제가 그동안 겪었던 정치적 풍랑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알기에 부산영화제의 현재 상황이 더 암울하다.

부산영화제는 현재 김동호 조직위원장을 통해 외형적으로 부산영화제 사태를 수습하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출발은 불안하기만 하다. 김동호 위원장은 현역에서 은퇴수순을 밟고 있으며, 강수연 집행위원장 만으로는 영화제 운영이 힘에 부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단순히 미봉책에 불과한 방안이 오래 갈 순 없다. 결국 올해가 지나고 나면 실질적인 부산영화제 운영 체계가 등장할 것이다. 이용관 위원장의 복귀가 있을 수 없다면 어떤 봉합책도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천의 경우와 부산의 경우는 파행의 정도나 원인에 있어서 그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배제하는 과정에 깊이 베인 정권의 그림자와 상호간의 집단적 불신, 이어진 무리한 재판까지 곳곳에 깊은 상흔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퇴진이 정치적 보복에 의해 자행됐다는 점은 이용관 개인의 문제에서 한국 영화계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부산영화제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정치와 부산영화제

▲ 2014년 부산영화제 기자회견 장면 (사진출처 :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부산영화제는 정치와 많은 연관을 가져 왔다. 한국 최고의 국제행사로서 국내외의 관심과 영화매체의 질적 성장은 정치권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의 부산영화제는 후보자들의 필수 방문지가 됐다. 부산영화제가 처음 정치적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부터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는 영화계와 오랜 정책적 결합을 통해 준비한 영상정책 공약발표회를 위해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찾았다. 당시 부산영화제 측은 반기지 않았지만, 야당 대통령후보의 레드카펫 입장과 소개를 허용해야 했다. 김대중 후보는 다음날 오전, 영화인들과 함께 영상정책 공약을 발표했고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때가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부산영화제의 첫 실험대였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고, 야당 국회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정치 불간섭을 원칙으로 내세웠고 이를 관철 시켰다. 이용관 당시 부집행위원장 역시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 나아가 이회창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영화제 도중 광복동 PiFF 광장을 방문해서 상설 무대에 올라가려하자 영화제 관계자가 제지했다. 부산영화제의 첫 정치적 결합이 그해 있었고 영화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 냈다.

2002년 영화제에서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안상영 부산시장이 개막사에서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방문 사실을 언급한 것을 두고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집행위원회는 총사퇴를 불사하며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사과를 통해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영화제 기간 중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개최했고 제작발표회에도 조용히 참여했다.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가져온 것은 한국 영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한국영화는 김대중 정부를 통해 괄목할만한 진흥을 이루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1998년부터 시작된 국민의 정부는 1999년 1월 영화계와의 공약이었던 영화 검열 폐지와 민간 자율형 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 설치, 영화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벤처업종 적용,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설치, 극장전산망의 공공화, 스크린쿼터 준수, 영화진흥금고의 확충 등을 담은 법안을 입법한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질적 성장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영화산업시장을 열게 된다. 유일하게 헐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영화 산업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영화인들의 검열로부터의 자유로운 사상적 향유를 가져 왔고, 나아가 남북문제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다양한 영화가 제작됐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영화계가 ‘좌파’로 몰리게 된 이유가 됐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김대중 정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것 역시 정치적 탄압의 이유일 수 있다. 지금의 여당 입장에서 영화계는 야당의 적극적 지지 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성근, 명계남 등이 대표적으로 활약한 노사모 등의 지지는 노무현 정부를 탄생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영화계는 여당의 도시인 부산시와 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업무상 횡령’이 적용 됐으나 서병수 부산시장의 입장에서는 세월호 문제를 다룬 영화 ‘다이빙 벨’의 부산영화제 상영을 정치적으로 보복한 것이다. 나아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재판은 실상 영화계에 대한 보복으로 이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계 내부의 갈등

▲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 (사진출처 :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한국영화계에서 부산영화제는 남다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영화계가 부산영화제이며, 부산영화제가 한국영화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위상 때문에 올해 부산영화제를 두고 영화계가 갈등하는 것이다. 김동호 조직위원장 체계는 일단 성공적인 수습책일 수 있다. 김동호 위원장 역시 부산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이고 영화계의 신뢰를 충분히 얻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영화제를 7~8년 전부터 사전 준비와 영화제의 20년을 지켜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있을 때의 김동호와 지금의 김동호 위원장은 확연히 다르다. 대다수 영화계는 김동호 단독 체계를 수습이라고 보지 않는다. 김동호 위원장으로 인해서 영화계는 부산영화제를 유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미봉책이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의 손으로 성장시킨 부산영화제에 대한 아쉬움이 갈등의 원인이다. 어떻게 하면 원만히 수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를 보이콧하기로 한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한국영화산업노조 등 영화계 단체를 비롯해 공개 보이콧 참여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단체인 영화제작가협회의 개별 판단에 맡긴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완곡한 보이콧 참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영화계는 부산영화제의 대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해야 한다. 영화제의 정치적 간섭은 영화산업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인 사항이다. 영화라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는 시민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정치는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계 3대 영화제인 프랑스의 깐느, 이탈리아의 베니스,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가 실상 자국의 영화산업의 쇠퇴와 상관없이 치러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 나라는 헐리우드 영화를 주로 소비하고 있다. 자국의 영화는 예술의 영역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오랜 전통에 따라 관의 간섭이 배제되어 운영되고 있다. 결국 영화가 시민의 정치적 입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 가장 대중적이고 주목받은 매체가 영화이고 부산영화제는 그 정점이다. 그리고 부산영화제 운영예산의 대부분을 부산시가 감당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입김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부산시의 정치권과 관을 중심으로 입장권이 배부되면서 실상 영화인들의 참여가 제한 받아온 최근 몇 년의 사례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영화인의 잔치가 아닌 영화제를 보면서 부산영화제의 암울한 미래를 불안하게 염려했던 기억이 난다.

거창하게 문화에 대한 정치적 불간섭을 다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우리는 그러한 국가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다만 부산영화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고 올해는 갈등 수준에서 부산영화제에 대한 영화인들의 참여가 있다면. 내년부터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영화인으로 위장한 정치 예술가들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고 영화제는 결국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부천영화제와 부산영화제는 다르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정지영 초대 민간 조직위원장 체계의 출발과 함께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공로상 증정이 있었다. 부천영화제의 심장인 김홍준 감독의 귀향이었다. 부산영화제는 부천영화제와 같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김동호-강수연 체계는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한국 문화계는 공연계 등 곳곳에서 자본을 무기로 한 ‘예술검열’이 부활하고 있다. 영화계는 지금까지 문화의 국가적 간섭에 앞장서서 맞서왔고 이제 다시 그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영화계는 특히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 이는 부산영화제의 어두운 말로를 예고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문화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창조적 문화말살’이 이뤄지고 있다. 조심스레 부산영화제의 친여 성향 낙하산 집행위원장 등장을 예견해 본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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