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1

  최근 한국 문화계는 2가지의 큰 이슈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간섭’에 대한 사안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건이다. 둘 다 공통적으로 정치권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로 인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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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문화와 예술은 ‘한류’로 대표되는 다양한 성과를 세계적으로 거두고 있다. 또한 세계 6위권의 영화 시장과 영화산업의 구조화는 미국 영화와 나란히 경쟁하는 자국영화시장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만들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의 기반을 문화와 예술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은 오히려 문화통제 정책들을 시행해 왔다. 급기야는 ‘블랙리스트’라는 자본에 의한 예술 검열을 자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문화, 예술정책의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문화, 예술정책의 바람직한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1996년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최희준의원의 정책 담당 비서로부터 출발하여 20년간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한 정책 분야의 일을 해왔다. 경험들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정책 20년을 돌아보고 문화국가에 대한 꿈’을 이루는 시도를 지속하기 위한 연재이다. 특히 내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다. 새로운 정부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비전들이 제시될 것이다. 필자는 이 연재를 통하여 바람직한 문화와 예술정책 비전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필자 서문)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선거 문화정책 공약 핵심 모토이다. 영국의 예술정책 모토를 수용한 것으로 문화정책이 문화건설, 문화통제의 체계에서 바뀌는 것을 상징한다. 김대중 정부를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문화와 예술의 진흥이 국가의 목표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까지의 문화체육관광부는 ‘문예회관, 스포츠 시설 등을 건설하는 문화건설부’의 역할이나 ‘검열을 통해 예술을 통제하거나 방송, 언론을 통한 국민정서의 획일화를 시도한 문화통제부’의 역할이 주라고 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공약을 준비하는 과정에 서 문화계의 정책 의견을 수용하여 함께 공약을 검토하고 만들었다. 그 비전을 함축한 것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중심인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의 문화정책 모토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발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 예술 정책은 진흥의 시대를 맞는다. 그리고 이를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가장 앞장서서 역할을 한 이가 최희준의원이다.

최희준의원은 영화 검열폐지와 민간행정위원회 성격의 영화진흥위원회 설치,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산업의 벤처업종 적용,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설치, 스크린쿼터의 유지, 온라인 게임 활성화를 위한 최초의 게임입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진흥법, 문화산업진흥기본법, 공연법, 음반 및 비디오물, 게임물에 관한 법률의 입법화를 주도했다.

이 법들은 의원입법으로 발의됐으며 1999년 1월 7일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또한 인디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라이브 클럽의 합법화’를 이뤄냈으며, 극장 전산망의 공공 관리 체계 도입을 통해 영화 예매 수수료의 부당한 징수를 막았다. 다양한 문화정책의 실천적 입법이 김대중 정부 초기에 이뤄진 것이다.

필자는 최희준의원의 정책담당 비서로 출발해 문화와 예술정책의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앞으로 연재에서 정책에 대한 경험과 의견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얻은 산물이다. 15대 국회(1996년 ~ 2000년) 4년은 현장과 함께 만든 필자의 정책 의견을 수용하여 의회에서 이를 관철시키고 제도화 한 최희준의원과 나눈 신뢰의 시간이었다.

예술정책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기본 목적

흔히 사용하는 ‘문화예술’이란 용어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문화와 예술은 엄격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 한다’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켑처

‘예술’은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는 예술의 상위 개념으로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문화예술’이라는 말은 문화를 마치 예술에 한정하거나 예술의 본질인 ‘창조를 통한 가치의 구현’이라는 기능을 문화라는 폭넓은 포장을 통해 수준의 저하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와 예술정책은 그 출발에서부터 궤를 달리해야 한다.

문화 정책의 목표는 ‘향유와 참여’의 진흥이다. 문화 향유권 신장과 예술, 스포츠, 관광 등의 활동에, 참여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문화정책의 목적이다. 예술정책은 문화정책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정책으로 ‘창조와 가치’의 진흥이다. 예술은 인류의 삶과 역사에서 출발하여 창조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인류의 가치 실현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당연히 예술진흥을 위한 공공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국정철학’이라는 말은 많이 듣고 있다. 현재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문제는 정부 부처 어디에도 ‘국정 철학’을 고민하는 부처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문화국가를 꿈꾼다. 예술은 인류의 삶과 역사를 기본으로 가치를 만들어 간다. 그 가치를 모으고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화부가 국정 철학의 주무부처’가 돼야 하고 이는 예술정책의 진흥을 통해 수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정책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고, 문화체육관광부의 기본 정책 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의 실행 역시 영국의 예술위원회와 같은, 창작자인 예술가와 수용자인 국민이 모여 실제 정책을 실행하는 제도의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관료에 의한 문화와 예술정책은 근본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관료 중심의 국가에서 시민 중심의 국가로 나아가는 출발을 문화부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부가 없는 문화국가’를 희망하는 것이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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