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드는 의문 (5)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의 해방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덕택에 주어진 선물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싸워 얻어낸 전취물일까? 전자를 ‘타력 해방론’, 후자를 ‘자력 해방론’이라 부른다.

이남 사회는 타력 해방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이북은 자력 해방론이 절대적인 상식이다.

물론 자력 해방이라고 해도 우리 민족 자체의 힘만으로 일제를 물리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 파쇼국가와 연합군 사이의 ‘판갈이’ 전쟁이었기 때문에 당시 최강의 힘을 가진 국가도 단독으로 파쇼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연합군(미국, 소련, 영국 등)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독일에 함락된 프랑스나 일본의 식민지가 된 중국이 자력으로 해방했다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프랑스나 중국과는 달리 자력 해방론에 소극적일까?

우리 사회가 유독 자력 해방을 믿지 않는 이유는 조선인민혁명군(김일성 빨치산부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20년대 번창하던 항일독립군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들해졌고, 오로지 조선인민혁명군만이 끝까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남 사회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히 자력 해방을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고 없다.

타력 해방론이 대세를 이룬 또 다른 이유는 미군정에 빌붙은 친일파 때문이다. 일제에 타협했거나 투쟁을 회피했던 세력들은 ‘어차피 해방은 미국이 시켜줬으니 독립운동 따윈 필요치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과거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수단과 논리로 활용했다.

이들은 8.15광복이 연합국의 승리가 가져온 선물임을 강조하면서, 항일독립군이 일제와 벌인 전투와 투쟁의 성과를 상쇄시키려 했고, 그럼으로써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던 자신들과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동일 선상에 놓으려 했다.

해방의 원동력을 무엇으로 보는가가 중요한 이유는 해방 이후 새조국 건설을 자체의 힘으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면 새조국 건설도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미군정에 의해 친일파 척결이 중단되고, 미군정의 발표에 따라 38선 이남에만 단독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반대했겠지만, 타력 해방론이 팽배한 이남의 현실에서 감히 미군정에 저항하지 못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3년 후에는 미군이 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처럼 자력이냐, 타력이냐는 해방된 조국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문제로 작동했다.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자력 해방론을 주장할 수는 없다. 자력 해방론의 기준은 일제와의 전쟁에서 당당한 주체로 참여해서 승리에 공헌했느냐? 특히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내는 전투를 하고, 일제 통치기구를 분쇄했는가? 여부에 달렸다.

우리의 광복은 과연 자력 해방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광복이 오기까지 우리 민족은 쉬지 않고 일제와 싸웠다. 해방의 그날은 우연히 주어진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피땀 어린 저항에 연합국의 승리가 더해져 이룩한 결실이었다.

3.1독립만세 이후 결성된 항일독립군의 봉오동전투(1920년), 청산리전투(1920년), 1930년대 들어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송현성전투(1936년), 보천보전투(1937년), 간삼봉전투(1937년), 륙과송전투(1939년) 등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갔다.

특히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이 개시했다. 8월 9일 경흥요새 돌파전투, 훈흉 해방전투를 비롯해 웅기 해방작전, 나진지구 해방작전, 창진지구 해방작전 등 국내 진공 작전은 반일 전민항쟁의 불길과 함께 타올랐다.

당시 소련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이 한반도에 진격하자, 미군도 이에 질세라 한반도 진출을 계획했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일본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만일 소련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이 없었다면 ‘조선사수론’(조선을 끝까지 식민지로 남겨 두려는 일제의 종전협상 카드)을 주장했던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군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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