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에서 완성된 글로벌 신냉전동맹

나토 정상회의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다. 8차 나토 전략개념을 합의하는 회담이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나라가 초청되었다.

나토는 군사동맹이다. 즉 전쟁공동체이다. 따라서 나토 전략개념은 전쟁에 대한 어떤 전략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이 초청되었다는 것은 전쟁에 대한 어떤 전략개념에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8차 전략개념: 러시아는 눈앞의 위협, 중국은 최종의 위협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10년 만에 바뀌는 전략개념을 채택하는 이벤트였다. 지금까지 나토 전략개념은 7차례 바뀌었고, 이번에 8번째 전략개념이 채택되었다. 1차부터 4차까지는 냉전시대의 안보환경을 반영한 것이었고(각각 1949년, 1952년, 1957년, 1967년에 채택), 소련과의 군사적 대결을 담고 있었다. 5차(1991년)와 6차(1999년)는 탈냉전시대의 안보 상황이 반영되었으며 여기엔 특정한 대결국가가 지목되지 않았다

2010년 리스본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7차 전략개념은 나토를 자유, 민주주의, 인권 및 법치를 공유하는 가치공동체로 규정함으로써 6차때까지와는 차별적인 내용이 담겼다. 2010년을 전후해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나토”를 통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려는 미국의 비전이 반영된 것이었다. 다만, 이때도 특정 대결국이 지목되지 않았으며,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이 피력되었다. 그런데 이번 8차 전략개념은 7차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러시아를 유럽-대서양 지역의 가장 중대하고 당면한(direct)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강력하고 독립된 국가로 존속시킨다는 나토의 의지가 피력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변국과 대서양 인근 국가들을 침략해왔던 러시아 패턴의 반복이라고 적시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장기전을 꾀하는 미국의 구상은 나토 차원에서 공식화되었다. 평화협상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중국은 규칙기반 국제질서(the 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를 파괴하는, 체제적 도전(the systemic challeges) 국가로 규정되었다. 나토 동맹을 분열시키려는 중국의 강압적 전술에 맞서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러시아가 당면한 대결의 대상이라면, 중국은 국제체제를 위협하는 궁극적인, 최종적인 대결의 대상이다.

셋째, 러시아와 중국이 핵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탈냉전기 축소되었던 핵무기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물론 나토가 핵무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extremely remote)고 적었다. 그러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지극히 낮다는 전제 아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특히 미국 핵무기의 전략적 가치를 나토 국가들의 안보를 위한 최상의 담보(supreme guarantee)로 설정하였다. 신냉전은 핵전쟁의 길이 열리는 것이고, 신냉전의 장기화는 핵전쟁 으로 가는 길을 넓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완성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을 ‘초청’하여 나토동맹과 ‘태평양동맹’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나토동맹과 ‘태평양동맹’의 공통의 대결 상대국은 중국과 러시아이다. 미국을 꼭지점으로 하는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의 반러반중 동맹연합이 구축된 것이다. 이로써 글로벌 신냉전동맹이 완성되었다.

글로벌 신냉전동맹은 바이든에 의해 시작되었고, 바이든에 의해 완성되었다. 지난 해 10월 공급망 회복 정상회의는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경제 버전이었다. 러시아, 중국에 의존한 공급망 체계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신호탄이었다. 지난 해 12월 민주주의정상회의는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정치 버전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권위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국제질서에서 고립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번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군사 버전까지 완비되었다. 이것이 바이든의 정치 인생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바이든은 미국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신동맹’ 체계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동맹이 전쟁 수행을 위한 국가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완성은 곧 지구적 차원에서 전쟁의 구조가 구축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 구조 1: 양대 진영의 구축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되듯이 전쟁은 양대 진영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나토가 러중 양국을 각각 당면한, 최종의 위협국으로 지목한 이상 이들의 정치적 갈등이 대화를 통해 해결되기 어려운 정치적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대결의 양상은 진영의 편제와 공고화로 확산된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중립국으로 남아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결정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립국들조차도 한 쪽 진영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토와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하나가 되었다. 전쟁은 지역 범위를 넘어 진영을 구축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베이징에서 “신시대 국제관계와 글로벌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공동성명”(2.4 베이징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반미(反美) 반(半)동맹체제를 구축했다. 6월 23일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가 화상 정상회의를 열고 미국 일극질서를 비판하고 다자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선언(브릭스 베이징 선언)을 채택했다.

세계는 일극 체제 유지를 위해 중러를 적으로 규정하는 미국 진영과 미국의 패권에 맞서 다극화를 추진하는 중러 진영으로 양분되고 있다. 글로벌 신냉전동맹이 완성됨으로써 양대 진영 간의 정치적 대결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전쟁 구조 2: 군사력의 전진배치

군사력의 전진배치는 충돌의 원인이 되고, 더 큰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높인다.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폴란드와 루마니아,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에 나토 상비군을 4만 명에서 30만명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유럽 내 주둔군 전력증강을 발표했다. 유럽지역 작전을 관할하는 제5군단 사령부를 폴란드에 영구주둔시킨다는 것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바로 옆에 위치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이미 배치되어 있는 사드의 정식배치(사실상 영구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한미 작전 계획을 최신화하고 있으며 이 작전 계획에는 중국 문제까지 포함시키려 한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안에 새로운 작전계획이 마련될 것이다. 지난 해 9월 실시된 한미 티크나이프 훈련(참수작전 훈련)에는 인도-태평양 전역(사실상 중국 대상)의 특수작전을 위한 기술 습득 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확장된 평택미군기지와 군산기지는 주한미군의 공군 주력부대가 배치된 미 태평양 사령부의 대중국 항공전 최전선이다. 제주 강정해군기지는 평택-군산-제주를 잇는 미국의 대중국 해전 최전선이다. 미국은 중국으로까지 군사력을 전진배치시키고 있다. 전쟁 구조는 우크라이나뿐 아니아 아시아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력의 전진배치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 5월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에서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순환배치하는 문제가 협의되었다. 한미 군사연습과 훈련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한미 군사연습은 핵무기와 전략자산이 동원되는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기갑여단전투단을 빼고 올가을부터 신속이동이 가능한 기동여단전투단(스트라이커부대)이 순환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질주

6월 2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전략 개념’이 어떤 내용일지 현재로서는 전혀 모른다”고 밝혔다. 내용도 모른 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취임 11일 만에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더니 최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나토 정상회의에 내용도 모른 채 참석했다. 졸속 외교가 계속되고 있다. ‘초청’에 의해 참석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호출’에 불려다니는 외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경쟁과 갈등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가 부정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보편적 가치’는 나토 전략개념에 명시되어 있는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동의어이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이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반러반중 글로벌 신냉전동맹에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쯤 되면 글로벌 신냉전동맹의 행동대장 소리를 들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마드리드에서 또 하나의 진풍경은 한미일 정상회담이었다. 4년 9개월만의 개최라는 의미 부여를 받고 있는 마드리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미일의 구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위험한 외교이다. 백악관은 한미일 정상회담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3자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된 역사적 회담”으로 평가했다. 한미일 협력의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국방비 100% 증액을 공언한 기시다 정부는 날개를 달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을 “이번 순방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로 평가했다. 사실상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동의를 표한 것이다.

지금은 전쟁의 시기이다. 미국은 신냉전 국제질서를 구축하면서 모든 나라를 전쟁 구조로 빨아들이고 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이 전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며 장기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전쟁 구조로 깊숙히 빠져들고 있다. 취임 3개월 동안 전쟁 구조에 휘말려드는 위험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 ‘호출’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형국이다. 가장 위험한 시대에 가장 위험한 정부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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