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30년 전 끝난 ‘냉전’과 구분하기 위해 ‘신냉전’이라 부른다.

과거 냉전이 6.25전쟁을 거치며 세계질서로 구축된 것처럼 신냉전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체제화되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열전과 다른 의미의 전쟁인 냉전이 모두 열전 과정에 구축된 것은 결코 역사의 우연은 아니다.

과거 냉전이 미-소 단일 전선이었던 반면 신냉전은 러-미‧중-미‧북-미로 이어진 3중 전선이라는 점도 신냉전 정세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과거 냉전의 지정학 그 한복판에서 한반도는 분단과 대결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대야 했다. 그런데 북‧중‧러를 상대로 미국이 펼치는 신냉전의 태풍 속으로 우리는 또 빨려들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가 신냉전의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열전을 동반한 냉전

냉전의 가장 큰 특징은 ‘핵보유국 간의 전쟁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세계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열전을 벌인다. 물론 나토(NATO) 미군이 아직은 국경선에서 전쟁 물자만 지원하지만, 우크라이나사태는 미국이 벌이는 러시아와의 열전으로 봐야 한다.

또한, 대만과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미국, 두 핵보유국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하고 있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온다’고 미중 간의 잦은 충돌이 대만전쟁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사실 냉전 시절엔 볼 수 없던 장면들이다.

냉전 시기는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는 속에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침탈과 지배를 소련은 묵인했다.

핵무력과 달러를 앞세운 미국의 막강한 패권에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미국은 이들 핵보유국과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핵무기 보유국끼리의 상호전쟁억제)’을 유지하며 냉전 체제를 관리했다.

냉전과 달리 신냉전이 열전을 동반한다는 사실은 북한(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했음에도 “전쟁 그 자체가 주적”이라며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북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하면서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듬해 신년사에서 ‘핵 버튼’까지 언급하며 한반도에 전쟁이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신냉전이 핵보유국과의 열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북은 대미 핵선제타격이 가능한 수준으로 군사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신냉전의 전장이 지금은 우크라이나지만 언제든 대만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어쩌면 한반도가 열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과거 냉전과 다른 신냉전의 첫 번째 특징이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냉전

과거 냉전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발생한 이념 갈등의 산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의 유일 패권을 인정했고, 6.25전쟁에서 미국과 맞섰던 중국도 핵보유국이 되면서 미국과 수교했다. 쌍방 간에 체제 대결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중국과 소련이 서로를 ‘교조주의’, ‘수정주의’라 비난하며 이념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양국 모두 미국의 패권에 맞서 사회주의를 고수할 의지는 없었다.

1990년 들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맥없이 무너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냉전은 다르다.

러시아는 지금 모스크바에 미국 미사일이 날아올 각오를 하고 결사전을 벌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흔들림 없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국과의 반도체 및 공급망 전쟁에서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으며,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그 어떤 군사 위협에도 일국양제(중국과 대만이 제도는 다르지만 하나의 국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열린 미·중 국방장관회의에서 중국은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不惜一戰)는 말까지 써가며 설전을 벌였다.

이처럼 과거 냉전과 달리 신냉전은 미국의 유일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조선)과 반제동맹을 결성해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양상을 띤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미국의 쇠퇴기에 시작된 냉전

과거 냉전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브레턴우즈 협약을 통해 달러제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핵폭탄까지 실전에 투하하는 등 군사제국의 위용을 떨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신냉전 구축을 시도하는 오늘날 미국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은 누적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실업과 물가인상 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또한, 최근 국가 간 과학기술력의 편차가 줄어 세계무역의 중심지가 원재료 보유국으로 옮겨가면서, G2(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과 공급망 경쟁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글로벌 공급망과 에너지(천연가스, 원유, 신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관계 강화를 합의하고, 여기에 13억 인구의 인도까지 호응하면서 ‘오일달러’로 유지되던 달러 기축통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 1980년 세계 1위 교역 상대국이 모두 미국이었던 데서, 2018년 기준 세계 190개국 중 128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군사 패권도 위기를 맞은 것은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는 최강 무력을 자랑하던 미국의 쇠퇴를 그대로 보여준다. 1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지만, 미군은 탈레반 무장대에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솔레이마니 이란군 사령관을 암살한 미국에 이란이 보복 공격을 가했을 때, 응징하겠다는 말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최근 미국의 신냉전에 맞선 북의 핵무력 고도화에도 유엔을 통한 추가 제재를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결국 반대 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했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가입을 종용하기 위해 소집한 아세안 1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절반 이상의 국가가 동참을 거부했다.

이처럼 신흥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에 자발적으로 편을 들던 과거 냉전과 달리 쇠락기에 접어든 미국이 줄세우기를 강요한다는 점이 신냉전의 세 번째 특징이다.

신냉전, 미국의 승산?

과거 냉전은 소련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이번 신냉전의 승부는 북‧중‧러 포위를 위한 미국의 동맹국 줄세우기 여부에 달렸다.

과거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이번 신냉전에도 승산이 있을까?

미국이 핵보유국에 대한 전쟁도발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문제이니 논외로 한다.

신냉전의 승부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위에서 밝힌 3가지 특징으로 볼 때 미국엔 승산이 없다.

특히 과거 냉전은 세계 경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었기 때문에 배제와 포위가 자유로웠던 반면,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영향으로 중국은 아시아 모든 나라와, 러시아는 유럽 대부분 국가와 긴밀한 경제 교류를 맺고 있다.

독일을 필두로 유럽이 당장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이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 러시아에서 독일 해안에 이르는 장장 1,230㎞의 파이프라인(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공사를 완공한 시점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위해 이 가스관 개통을 불허해 버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당장 독일이 이탈 조짐을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독일로 들여올 천연가스로 올겨울을 날 채비를 하던 유럽으로선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에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그 동맹은 국익과 직결되었다. 그러나 제 살길도 바쁜 지금의 미국은 동맹국에 혜택은커녕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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