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덕용의 한마디] 청와대 이전에 대해

옛날 같으면 파천(播遷)이다.

지금은 용산이 서울 경계 안에 들어있지만, 도성의 관문인 남대문을 나아가야 하니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어떤 물리력에 의해서 옮겨가는 것도 아니고 전쟁 전란 때문에 작전상의 이유로 대통령 관저(사무실)를 옮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관습 관례에 따르면,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 저자(都市)의 크기나 그 지역의 명성에 의해서 서울(首都)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통치자나 군주가 있는 곳 나라 우두머리의 거주지가 곧 수도 서울(都城)이 되었다.

요즘도 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통령이나 수상의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곳을 그 나라의 수도 서울로 여기는 게 상례이다.

아무리 민주화 세상이고 모든 게 평등화된 세상일지라도 수도나 서울이 갖는 의미는 상당한 무게와 깊이를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사회정치적 동물이고 떼를 이루어 살아가는 생물체이다.

질서와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대표자가 있어야 하고 잘났거나 못났거나 앞선 길잡이 지도자 우두머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떼 무리 생활을 하는 공동체 습성의 생명체가 갖는 숙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 우두머리가 거주하는 머릿 저자 수도 서울이 갖는 무게와 깊이는 그렇게 가볍거나 아무렇게나 생각할 일은 아니다.

국체(國體) 국가 개념이 많이 평준화되고 절대성이 희석되고 많이 일반화 보편화되었다고 해도, 그 어떤 개인이나 단체 어떤 사회집단보다도 가치와 존엄성 면에서 크게 우위에 있다.

더구나 유구한 역사와 한 핏줄 형태의 단일민족국가일 경우 그것이 더욱 그렇다.

국체의 변혁이나 국가 위기의 경우 이에 소속한 민족집단은 이를(국체, 국가) 절대시 지켜야 한다는 사명 의식, 사수(死守)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수도(서울)는 국가의 대표 상징이다.

그래서 국가수반의 관저와 집무실은 그 나라 수도 상징이기도 하다.

개인의 의지와 거주지에 따라서 국적을 마음대로 바꾸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국가 국체에 대한 절대성 신성성이 가벼워지고 옅어져서 옛 같지는 않다,

여타의 다른 도시들도 제각각 특성이 있고 발전 정돈된 모습이어서 규모 기능 면에서 수도와 별로 다를 것도 없다.

그렇지만 국가와 수도, 그 국가를 대표하는 자의 관저나 집무실은 여타의 저자(都市) 개인의 사가(私家)나 공공 기관의 일개 관공서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위상을 갖는다.

존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요즘 대통령의 관저이고 집무실인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겨 간다는 일로 말이 많고 세상이 매우 시끄럽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는 공공 기관 중에서도 최고 핵심 공기관이다.

대통령의 관저는 개인 사사 살림집이 아니다.

대통령은 그 나라 최고 제일의 공직자이고 선출직이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연봉(월급)이 국가 공무원 중 액수가 가장 많다.

관저 역시 국무총리를 비롯한 여타 공직자의 관저에 비교가 안 될 만큼 모든 면에서 월등한 수준이다.

국가 상징물인 국기와 국가(國歌), 나라꽃, 그다음이 아마 국가 공기관 제1호인 정부 청사와 국가 권력의 표상인 대통령 관저가 될 것이다.

그 이름도 빛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제일 상징은 국보 1호인 남대문(崇禮門)이 될 수도 있고, 자연경관으로는 남산이나 인왕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무엇보다 정치체제가 우선이다.

그렇다 치면 역시 북악산과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다.

청와대가 없는 서울, 대통령 관저가 없는 서울은 어쩐지 허전하고 ‘서울’ 같지가 않다.

국가 상징성으로서의 수도 서울은 그 무게와 존엄성을 열 번 강조해도 많지가 않다.

따라서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와 그 진산인 북악산의 존재야말로 서울을 서울답게, 나라의 으뜸 저자 머릿 저자(首都)로서의 체신과 품격을 더해 주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관저 청와대가 당장 서울 경계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관저의 이전은 서울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의 정치 사회적 정서에 하나의 커다란 충격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현재의 서울은 아주 먼 옛날엔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로 한성(漢城) 한양으로 불리었다.

고려 때엔 남경(南京)으로 대접을 받으며 이궁(離宮)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조에 와선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경북궁의 후원으로 군사 훈련장, 과거 시험장, 임금의 농사터(親耕地)가 있었다.

그 후 왜놈 총독관저를 신축, 해방 후엔 미군정장관 관저로 자유당 때는 경무대(景武臺)라 이르고 이승만의 잠자리였다.

4·19혁명으로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어 본관 지붕에 청기와를 올려졌다는 데서 청와대라 이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91년에 새로 지은 것이지만 푸른 기와를 올린 건물이어서 그대로 청와대라 이른다.

집터의 길흉이야 믿을 수 없는 풍수설이고 덧없는 미신이지만, 청와대로 불리던 대통령 관저(집무실)가 이전한다니, 북악산과 그 주위 산자락이 갖고 있던 정치사적 의미와 존엄의 무게가 어디로인가 다 증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서울이란 낱말이 갖는 정겨움, 도성 수도가 갖는 역사성이 켜켜이 쌓인 도시 중심이 텅텅 비어 버린 아니 온통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느낌이다.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느닷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 시민이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 모두가 전혀 예상하거나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예상을 초월한 괴질, 코로나 전염병으로 전전긍긍 지구 전체가 총체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괴질이 줄어들 만하면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번창한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3년째 대유행,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빈민 자영업자를 비롯하여 너나없이 저소득층 모두가 생활고로 하루 버티기가 힘에 겨운 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름값이 치솟고, 물가고에 수출길이 막히고 국내 경기뿐만이 아니고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미국은 세계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전쟁놀이에 혈안이고, 중국 포위 적대시 정책에 우리를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

이에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민족 통일의 길에 장애를 놓는다.

북은 이에 맞서서 정당한 자위권 방어를 위해 ICBM을 쏘아대며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판이다.

이런 판국에 무슨 생뚱맞은 청와대 이전 타령인가.

5월 10일에는 청와대를 완전 개방 공원화하여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게 당선자의 윤석열의 외고집이다.

지금 일반 국민들은 밥 먹고 살기에도 힘들고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너무 오래 시달려서 한가하게 청와대 공원 벚꽃 구경 다닐 힘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 규정 지키며 무슨 기분으로 계절을 즐기며 윤석열표 봄놀이에 취해서 새로 전개되는 검찰 공화국을 노래하고 새 대통령의 은덕을 찬양할 흥이 날것인가.

국민들과 소통을 위해서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는데, 그것을 실행하려고 따져 보니 도대체가 ‘재앙’ 수준이어서 용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용산 집무실은 ‘재앙 수준’이 아니고 행복 수준, 축복 수준이란 말이다.

적어도 대통령 관저를 소통지지(疏通之地)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 때는, 한두 번 생각하고 그냥 아무런 점검 검토도 없이 글자로 써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옛 같으면 파천에 해당하는, 도성 수도를 옮기는 일에 버금가는 국가 중대사 중의 중대사인 것이다.

홀아비 월세방 옮기는 것도 아니고 신입생 1학기 끝내고 하숙집 옮기는 것도 아니다.

수표교 아래 밥 냄비 걸었던 양아치들이 청계천 오간수 다리 밑으로 거적때기 옮기는 것도 아니고, 광화문통 건달패가 용산역으로 근거지 옮겨 가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가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유분수가 있고, 나라 망해 먹을 무당춤에 혼이 나갔어도 체면이 있지, 원 세상에 백주 대낮, 이 무슨 경우 없는 짓이고 분수 모르는 도깨비장난이란 말인가.

초가삼간 오막살이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옮겨도 1년 2년 최소한 몇 달을 두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두 칸짜리 판잣집을 지어도 그렇고 3개월 된 강아지집을 옮겨가도 그렇다.

판잣집에도 구들을 놓아야 잠을 자고, 강아지집을 옮겨가도 강아지 묶을 줄 말뚝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규모 없는 나라라지만 그래도 일개 국가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관저를 옮기고 두 달 내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가겠다는 사람이 세상에 어느 나라에 또 있을까 말이다.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거짓말이었고, 국민을 속여서 권력만 거머쥐면 그만이라는 막가파식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임이 여실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대통령 선거고 나라 살림살이 국정 운영이라는 것이 모조리 야바위 장난이고 불한당 놀음이다.

원래 자주권이 없는 나라의 정치판이 그렇고 그런 것이고, 그런 정치판에서 한자리해 먹겠다고 나서는 물건치고 사람다운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건 해도 너무 한 것이다.

이건 뭘 알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줏대도 없고 주관도 없고 자기 의견도 없다.

흐물흐물하게 비곗살만 올라가지고 덩치만 머슴아지 머슴아가 아니다.

날마다 한 이불 덮고 자는 제 마누라 제 안사람의 실토다.

껍데기만 남자지 남자가 아니란다.

머슴아 생긴 것이 계집애처럼 그래서, 그렇지만 제 마누라 말만 잘 들으면 그거야 훌륭한 남편이지만, 王자 좋아하는 운명 철학 도사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속 판이라면, 그놈의 앞날도 빤할 속이다.

선제 타격이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나발을 불어대는 수준이라면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에게 ‘재앙’을 내린 북악산 밑이 문제가 아니다.

왜놈 군대와 양코 군대가 번갈아서 지신밟기를 한 용산 땅이 문제가 아니고, 남쪽 땅 1천 5백 리 강산 어디를 가나 삼재수(三災數)에 오구삼살방(五鬼三煞方) 아닌 곳이 없으렷다.

王자 좋아하는 王도사께서 서울 천지 천하 좋은 땅 다 그만두고 어이 하필이면 용산 땅을 지목하셨을까.

악귀 흉물 귀신 많기로 따지자면 어디 북악산 밑만 흉지(凶地) 일까.

1894년 동학 평정한다고 핑계치고 기어든 쪽발이 군대가 맨 처음 용산 땅에 진을 쳤다.

이어서 청일 전쟁, 노일전쟁을 거쳐 일제 강점 36년 동안 왜놈 군대가 거기 있었다.

해방 후엔 양키 군대가 밀고 들어와 불법 점령 상태로 오늘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훈도시 찬 좀팽이 왜칼 귀신에, 쌍권총 찬 노랑머리 양키 귀신이 득실거리는 게 용산 땅이다.

동학군 토벌 때 작두로 목이 잘려 죽은 전라도 개땅쇠들이 많았다.

피투성이 몸체에 모가지 없는 귀신들이 봉두난발에 눈 부릅뜬 녹두장군 앞세우고 이빨을 갈고 몰려들 것이다.

뿐인가, 해방공간 4·3봉기, 여순봉기, 남녘 산봉우리마다 피어오르던 나라사랑 모닥불, 민족 전사 모두모두 6.25 지리산….

메이드 인 USA 총알 맞아 죽은 3·8귀신 분단 귀신들 어디 손 놓고 잠이 들었겠나.

옛 미군 사령부 자리로 떼거리로 몰려올 것이 아닌가.

얼마 전 미자본제국 코쟁이 대사관이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옮겨간다는 확정 발표가 있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양키 대사관을 따라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흉내 내는 짓이라면 그야말로 오구삼살방 흉지 중 흉지를 찾아가는 꼴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