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진보와 집권 사이 (2)

87년 6월항쟁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었고, 10년 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촛불항쟁 10년은 과연 어떤 정치를 창조할까.  [편집자]

(1) 집권욕 약하면 진보 아니다
(2) 정권교체보다 체제교체가 절실한 이유
(3) 한국 노동자의 최대 불행은 자기 정당 없는 것
(4) ‘항쟁 없는 선거’와 ‘선거 없는 항쟁’의 교훈

“한가한 소리 하고 앉았네” 대선 토론을 지켜보다 던진 이 한마디에 동감의 눈길들이 포개진다.

“정권교체요, 정권재창출이요”라고 떠드는 거대 정당 후보들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반응이다.

사실 그 후보들의 말에는 100년 만에 도래한 대전환기, 격변기라는 시대 인식이 결여되었다.

시대 인식을 제대로 못 하면 어떤 정책도 말짱 도루묵이다.

재건축이 시대 인식이라면 리모델링은 정책에 비유할 수 있다. 재건축할 집에 리모델링을 아무리 잘해봐야 소용 없는 것처럼 ‘격변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처방도 실효성이 없다.

격변기를 알리는 3가지 징후

1) 미국 패권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

1차 세계대전 이후 100년을 유지한 미국의 군사 패권과 경제(달러) 패권이 서서히 몰락하고,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등장했다. 이것이 격변기를 알리는 첫 번째 징후다.

이 자체로만 보면 아직 패권이 바뀐 게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균형 외교를 펼치면 된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중국과 분쟁을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특히 미국이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대중국 포위 전략에 줄을 세우는 바람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주변국들의 처지가 이만저만 딱해진 게 아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마저 앞에선 미국에 고개를 숙이는 척하며, 중국과 뒷거래를 터서 겨우 경제위기를 타계하는 실정이다. (표1 참조)

지금이야말로 시대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 그런데 코로나 여파로 앞당겨 도래한 이 격변의 시기에 ‘미국 1극 체제’의 우물 안에 빠져 한미동맹이라는 썩어가는 동아줄에만 국가 운명을 매달아 놓는다니 어디 될 말인가.

▲ 2000년 세계 최대 무역 상대국은 미국(파란색)이었지만, 2020년 대부분 중국(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자료 : UN Comtrade]
▲ 2000년 세계 최대 무역 상대국은 미국(파란색)이었지만, 2020년 대부분 중국(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자료 : UN Comtrade]

2)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조선)

북한(조선)이 미 본토에 도달하는 핵미사일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 전쟁 발발의 뇌관이 사라졌다. 머지않아 미국은 북한(조선)을 적대국 반열에서 제외하고 핵보유국으로 국교를 수립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중국은 1971년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과 국교 수립까지 8년이 걸렸다.

‘공포의 균형’(양국이 전체 무력은 차이 나지만, 핵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는 균형을 이루므로써 상호 전쟁 도발을 못 하게 된 상태)이 가져다준 평화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정전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고, 70년 분단체제가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북한(조선)이 더는 적국이 아니므로 자유롭게 여행도 유학도 가능하고, 서로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사실 지금도 가능하지만, 대북 제재라는 미국의 철저한 통제 때문에 실현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북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면 ‘공포의 균형’에 따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을 미국이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북을 적대하며 마치 고장난 축음기처럼 ‘한반도 비핵화’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꼴인가.

3)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산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2011년 월가 점령이라는 사회 위기로 이어졌고, 2016년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의 등장으로 정치 위기를 맞았다. 바이든조차 ‘미국우선주의’를 연장함으로써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종말을 고했다.

종주국 미국의 신자유주의 파산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전이 되어 자산‧소득 불평등과 부동산 폭등을 낳았다.

월수입 300만 원 노동자는 평생 먹지도 입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벌어 봐야 서울에 25평 아파트 한 채 장만하지 못한다. 그러니 땀 흘려 일할 대신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에 투자하고, 오를 수 없는 차별의 벽에 부딪혀 하루에 38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지옥 같은 세상에 새 생명을 잉태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경제체제 수립이 절실하다. 일자리 몇 개 더 만들고, 아파트 몇 채 더 지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격변기를 대하는 진보의 품격

미군정 하에서 친미로 둔갑한 친일파가 득세해 오랜 세월 이 땅에 친미 정권이 유지되다 보니, 어쩌면 여야 거대 정당은 미국의 몰락이 부른 세계사적 격변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정당이라면 격변기를 빠르게 감지하고 체제 전환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우선 격변기에 민중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떨쳐 나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87년 6월항쟁과 촛불항쟁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다음으로 진보정당은 ‘정권교체니, 정권재창출이니’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체제교체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민중의 힘을 키우는 직접정치 역량을 부단히 축성하자.

또 진보정당은 역사의 대전환을 거스르는 반동들의 선거 이벤트에 눈독 들이지 말고, 자주와 평등이라는 우리 사회 근본 문제의 쟁점화 대중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격변기 진보는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을 닮고, 민중의 마음을 헤아릴 때 그 품격이 드러난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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