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진보와 집권 사이 (1)

87년 6월항쟁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었고, 10년 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촛불항쟁 10년은 과연 어떤 정치를 창조할까.  [편집자]

(1) 집권욕 약하면 진보 아니다
(2) 정권교체보다 체제교체가 절실한 이유
(3) 한국 노동자의 최대 불행은 자기 정당 없는 것
(4) ‘항쟁 없는 선거’와 ‘선거 없는 항쟁’의 교훈

진보와 개량 사이

진보정당이 집권의 고삐를 늦추면 개량주의가 자라나기 마련이다. 반대로 진보정당이 집권전략을 완강하게 실천하면 조합주의, 경제주의, 출세주의, 관료주의 같은 변질을 피할 수 있다.

가령 대통령 자리가 욕심난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진보 집권은 각성한 국민이 스스로 들고일어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국민 속에 깊이 들어가 이들을 불러일으키는 진보집권의 치열한 나날에 개량주의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대체로 집권에 대한 강한 욕망 없이 대충 시늉만 하면 낡은 요소들이 침습한다.

욕심 내봐야 이뤄지지 않을 거니까 현실적으로 국회 의석이나 좀 늘리자는 류, 너무 먼 미래니까 당장 눈앞의 투쟁이나 잘하자는 류, 대중운동에 집중하며 최악이나 피해 보자는 류 등 개량으로 빠질 요소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국민의 역동성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개량이 접근한다.

이처럼 집권욕은 진보와 개량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최근 진보당이 10년 안에 집권하겠다며 집권욕을 강하게 드러낸 것은 곁눈질하지 않고 꿋꿋하게 진보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집권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욕망으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겠다고 결심한 진보당의 내일은 그래서 희망이 보인다.

집권욕 약하면 진보 아니다

집권욕이라고 하면 출세주의와 권력화가 떠올라 어쩐지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보정당이 있기 전 8‧90년대 재야운동을 했던 선배들에도 있고, 보수정당들의 권력다툼에 신물이 난 신세대에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하지만 모두 큰 착각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미군 지휘하에 있고, 남북이 만날지 말지, 중국과 교류할지 말지 등 국익과 직결된 외교는 모두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노동으로 얻어진 기업이익의 과반이 해외자본의 주식 배당금으로 빠져나간다. 이처럼 국가의 핵심 권력이 외세에 있는 현실에서 진보정당이 집권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요컨대 진보정당이 집권욕 없으면 개량에 빠지고, 약하면 보신하게 됨으로 결국 집권욕이 강해야 진보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자신이 진보라면 이제라도 집권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되지도 않을 헛짓 말라’는 소리에 기죽지 말고, ‘정치에 미치면 패가망신한다’는 비아냥은 한번쯤 들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진보집권은 외세에 넘어간 권력을 국민에 돌려주는 애국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과 마찬가지로 진보집권도 굴함없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분열과 탄압, 고립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진보가 ‘본캐’(본래 캐릭터)를 잃어버리고 자꾸 쪼그라들어 쩨쩨하게 굴기 일쑤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다시 찾으면 되니까.

진보집권에 동의하는 이들과는 이제 어설픈 자존심은 접고 통 크게 단결하자. 꽁해서 데면데면하던 사이가 있다면 진보집권의 길에 훌훌 털어버리자. 이런 게 본래 진보다.

세상을 당장 바꾸진 못해도 자신은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 제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꿔서 주변이 감동하고, 이것이 집단에 전해져 조직적인 실천이 이루어지면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진보집권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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