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 1975년 4월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주재 미국 대사관 지붕 위에서 헬리콥터에 타려고 줄을 지어선 모습. 오른쪽 : 2021년 8월 중순 성조기가 내려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상공을 선회하는 지누크 헬리콥터 모습
▲ 왼쪽 : 1975년 4월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주재 미국 대사관 지붕 위에서 헬리콥터에 타려고 줄을 지어선 모습. 오른쪽 : 2021년 8월 중순 성조기가 내려진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상공을 선회하는 지누크 헬리콥터 모습

미국은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미국을 못 믿겠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아프칸에서 야반도주하다시피 패주한 미국을 보고 하는 소리이다. 바이든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바이든의 선택은 트럼프에 이어 “미국 우선주의”였다. 바이든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질서있는 퇴각”을 할 수 있었는데, 순간의 판단착오로, 또는 노인네의 고집으로 베트남식 “탈출극”을 자초한 것일까?
상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스스로가 "미군을 철수시킬 좋은 시기란 없었다"고 고백했듯이, 도주하는 것 말고는 미국은 할 수 있는 것이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 아프칸과 미국간 전쟁의 승패는 오래 전에 결판이 났다. 오바마 시절 이미 철군 구상을 하다가 철회한 바 있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올해 5월까지 철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터였다. 

바이든은 "얼마나 더 많은 미국인의 목숨을 걸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미국국민에게 항변하기도 하고, "아프간군조차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고 죽어선 안 된다"며, 미군 목숨값이 아깝다는 식의 말을 많이 했지만, "지난 한 주 동안 전개된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미군이 아프간 개입을 끝내는 것이 옳은 결론"이라고 강변했다.
바이든은 지난 4월 아프칸 침략을 촉발한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모든 미군을 아프간에서 철수시킨다고 폼나게 선언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서둘러 도주한 내막은 사실 별 게 아니다. 8월에 아프칸 정부군 몰래 나오지 않으면, 9월 11일 직전 뒷발을 잡는 아프칸 정부군과의 충돌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미국은 아프칸에서 질서있는 퇴각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결국 대공세를 펼친 탈레반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에 진입해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한국은 아프칸과 다르다?

아프칸 사태로 자신이 외교 정책에 노련한 전문가이고,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한 바이든의 꼴은 말이 아니게 구겨졌다.
아닌게 아니라,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은 미국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것이다"라는 트윗을 날리고, 미국내 여론 역시 '제2의 사이공 함락'이라며 비판하자, 바이든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지난 18일(현지시각)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중국이 대만에게 ‘봤지? 당신들 미국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은 자기 이익밖에 모르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삽시간에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대만, 한국 등에서 국익에 맞지 않으면, 미국이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바이든 행정부는 급하게 불끄기에 나섰다.
바이든은 아프칸과 “대만, 한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서, “동맹이 침략당하면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지난 17일 “대통령은 그가 반복해온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우리 군대를 감축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런 약속을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디로 한국과 대만에는 “아직 먹을 게 많아 포기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기만이고, 미국이 하루 빨리 떠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황당한 소리이다.
한국과 아프칸은 다르다. 아프칸은 20년을 뜯어먹었지만, 한국은 70년을 뜯어먹었고, 앞으로도 계속 뜯어먹겠다는게 미국의 속심이기 때문이다.

엉뚱한 교훈

아프칸 사태를 보며, 상대적으로 급속한 불안감에 빠지는 지역은 아마 대만일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 등 분리독립파들이 과연 끝까지 미국을 믿고 중국과 맞서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독립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엄청난 불안감에 쌓일 것은 분명하다.

아프칸 사태를 놓고 불안감에 젖어 엉뚱한 교훈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있다.
보수언론들은 이제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이 한국에게 동맹 유지비용 청구가 더 늘어날 것이니 이에 잘 협조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식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거는 이익이 한국을 대중국포위전략에 동원하는 것이니만큼, 빨리 이를 수용하여 미국을 잘 붙들어 매야 한다는 황당한 매국논리를 연일 설파하고 있다. 자신이 생존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데 이골이 난 세력이 이 땅의 주류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간 남북관계 방해, 방위비 분담금 강요, 한미연합훈련 강행, 세균부대 배치, 코로나19방역위반 폭죽난동 등 미국의 행패에 눈살을 찌푸리는 국민들이 버젖이 보고 있는데도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걸 보면, 불안하기는 불안한가보다.

아프칸 사태에서 진짜 가져야 할 교훈은 미국이 이제 자신의 입으로 “미국은 자국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을 대놓고 실토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제국주의국가라는 것을 고백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 악당을 때려잡는 경찰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쇠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반도에만 오면, 한국은 아프칸과 다르다면서, 종속적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그 침략성을 강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 미국이 경찰노릇을 해 줄 것을 원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미국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는 것을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는 것을. 특히 우리 국민은 이 땅이 미국을 위한 중미대결의 병참기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런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은 이 땅에서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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