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하늘길, 다시 날고 싶은 노동자(3) - 대한항공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경영악화의 책임과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이익 부진까지 정리해고, 무급휴직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매각대금 챙기기에 급급했던 이스타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 ‘제1 국적기’ 대한항공의 상황은 어떨까?

대한항공에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는?

‘대한항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갑질’, 그리고 ‘남매의 난’ 등이다.

지난해 3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망 이후 조원태 회장-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경영권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동생 조원태 회장에 맞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3자 주주연합(KCGI-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반도건설)을 구성하고 지분을 모아 동생에 대한 압박을 높여왔다. 8~9월 임시주주총회 소집이 예상됐지만 이를 포기하고 내년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담판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항공도 지난 4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 2천억 원가량의 긴급자금을 수혈받은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유휴 여객기를 화물수송기로 활용해 올해 2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한항공 역시 올해 갚아야 할 회사채가 4조 4천억 원이다.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에 부채를 높인 주된 애물단지는 호텔사업으로, 칼호텔네트워크와 대한항공의 종속회사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IC)이 있다.

국내에 4개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칼호텔네트워크는 지난 2014년 이후 매년 적자 수렁에 빠져있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하며 호텔사업을 하고 있는 미국법인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anjin Int'l Corp, HIC)은 한진그룹이 출자한 해외계열사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계열사다.

한진그룹은 198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15층 규모의 ‘윌셔 그랜드 호텔’을 인수했다. 취득금액은 9948억. 1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했다. 그 후 2009년, 이 호텔을 최첨단 호텔과 오피스 건물로 변모시키겠다는 계획(윌셔 그랜드 프로젝트)을 발표하고 2011년 재건축에 돌입한다. 8년간 10억 달러(약 1조 5300억 원)를 투자했지만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기순손실 규모가 770억 원에 달한다.

그룹의 호텔사업을 위해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통해 7600억 원을 HIC에 투자했다. 곧 만기가 도래하는 HIC의 차입금 7336억 원에 대한 지급보증도 제공하고 있다.

▲ 8년 간의 공사 끝에 한진그룹 대한항공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다시 지은 윌셔 그랜드 호텔. 2017년 완공됐다. [사진 : 뉴시스]
▲ 8년 간의 공사 끝에 한진그룹 대한항공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다시 지은 윌셔 그랜드 호텔. 2017년 완공됐다. [사진 : 뉴시스]

당시, 호텔 신축도 아닌 리모델링에 8년간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사실을 두고 건설업계도 믿기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텔은 73층의 미국 서부 최고층 빌딩으로 탈바꿈 했지만 한진그룹의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이후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한진그룹이 출자한 해외계열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어도 실속은 없었고, 수익성은 줄곧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번 차입금을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항공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한 상황이 돼버렸다. 결국 대한항공은 LA에 있는 윌셔 그랜드 호텔 경영난으로 야기된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한진인터내셔널(HIC)에 9억 5000만 달러(1조1100억원)를 긴급 수혈하기로 결정했다. 호텔사업을 하는 미국법인 HIC의 영향으로 대한항공의 자금부담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앞서 조원태 회장은 유동성 위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알짜’ 사업부인 기내식과 기내면세품 판매 사업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9900억 원이다. 대한항공의 기내식 사업부는 하루평균 기내식 7만1600식을 생산해 30여 개 글로벌 항공사에 공급해왔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의 시장점유율이 70~80%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선 단연 최대규모다. 그러나 지난 4월 기내식 사업부 관련 협력업체에선 이미 직원 1800여 명 중 1000명이 권고사직서를 썼다.

대한항공 역시 코로나 직격탄으로 지난 4월부터 전 직원의 70%가 순환휴직에 들어갔다. 69년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자회사인 한국공항은 2021년 연차까지 당겨쓰고 있고, 2차 하청업체 ‘EK맨파워’에선 지난 4월 직원 380여 명 중 260명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끝나지 않은 경영권 분쟁으로 조원태 회장은 최근 한진칼(한진그룹 지주회사) 주식 150만 주를 담보로 약 40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룹의 부채와 유동성 위기 속에서 오너가는 경영권 분쟁 중이며, 노동자들은 일터를 떠나고 있다.

▲ 지난 7월, 대한항공 노동자들의 기내사업부 매각 반대 투쟁. [사진 : 뉴시스]
▲ 지난 7월, 대한항공 노동자들의 기내사업부 매각 반대 투쟁. [사진 : 뉴시스]

위기 대응, 과거 방식과는 달라야

경영위기, 코로나 위기에 허덕이는 이스타항공,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의 내막을 살펴봤다.

이스타항공과 아시아나케이오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며 코로나19를 빌미로 기존 경영실패의 원인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며 해고를 단행했다. 자본과 경영진의 이익을 위해서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상황이다. 또,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준도 ‘고용유지’를 온전하게 전제하고 있지 않다. 정부가 항공분야를 살리겠다며 투자했던 40조 원의 결과는 ‘고용유지’를 가져오지 못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종료될 다음 달 이후 노동자들은 더 큰 대량해고나 구조조정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이달 15일 종료 예정이었던 항공업 등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의 지정 기간을 내년 3월 말까지로 연장했지만 역시 기간만료 후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스타항공을 제외한 국적 항공사 8곳의 유급휴직자는 이미 1만7,905명, 무급휴직자는 6,336명으로 전체 항공사 직원 수의 65%에 달한다.

자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지만, 고용유지와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재벌총수 및 대주주, 경영진의 사재출연, 보유주식 매각 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매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남기기 위해 고심할 뿐, 혹은 경영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방법만을 고심하고 있을 뿐이다.

항공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은 항공업계 현실에 대해 “코로나19 사태가 항공 및 유관업종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고, 항공업종은 재벌 사주의 전횡과 무능이 어느 산업보다 이미 적나라하게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시급한 자금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해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도 문제가 지적된다.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 고용유지 의무도 불분명하고, 먼저 대량해고가 발생하고 있는 지상조업사 등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 책임은 묻기도 어려운 방안”이며, “자금지원 주체인 산업은행이 지원 대상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도 배제하고 있다”면서 “(개정안은)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를 비롯해 기존 경제구조를 유지하는데 급급한 방안”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은 재벌체제의 모순을 심화하고 공공성은 후퇴시키며 위기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한 과거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성이 유지돼야 하는 필수공공서비스 업종이라면 무능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방안까지 포함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 멈춘 하늘길, 다시날고 싶은 노동자

코로나19로 경제위기와 고용불안이 악화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항공산업. 그 직격탄은 항공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의 생존권 문제가 심상치 않다.
위기가 닥친 원인엔 코로나19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내막을 살펴본다.

1)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2) 아시아나항공, ‘제2 국적기’가 어쩌다가…

3) 대한항공, 남매의 난 속에 감춰진 부채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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