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하늘길, 다시 날고 싶은 노동자(2) - 아시아나항공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항공업계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았던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결국 무산됐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됨에 따라 산업은행은 지난 4월에 이어 2조 4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아시아항공에 투입하는 등 채권단 관리체제에 놓이게 됐다. 구조개편과 구조조정도 뒤따를 것이 예상된다.

아시아나 부채 비율은 작년 말 1795.1%에서 올해 상반기 2366.1%까지 급증했다. 올해 2분기 화물 운송에서 선전하며 234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상반기 기준 2686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해 전년 대비 적자 폭이 확대됐다. 자본잠식률도 50% 가까이 올랐다. 결국 아시아나 부채가 매각의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비행기 운항 중단까지 겹치면서 가뜩이나 부채가 많았던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더욱 커졌다.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

제2국적기였던 아시아나항공이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금호그룹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아시아나항공의 곳간을 열었다”는 것이 재계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그 중심에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있다. 그는 현재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며,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주회사인 금호고속(전 금호홀딩스)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금호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 [사진 : 뉴시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 [사진 : 뉴시스]

부채가 쌓이기 시작한 때는 한 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당시 박삼구 회장은 금호그룹의 재건을 위해 6조 4000억 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한다. 당시 그룹 자산 가치는 3조 5천억 원이었는데, 이보다 두 배가 넘는 기업을 인수한 것. 이어 2008년 대한통운을 4조 1000억 원에 인수하며 재계 순위 7위까지 오른다. 2년 사이 10조 5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주력 계열사였던 아시아나는 인수전에 1조 6500억 원가량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중 1조 2000억 원가량을 외부에서 빌리며 재무체질까지 약화됐다.

재계 7위라는 기록은 짧은 시간만 허락됐다. 대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차입금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건설경기 둔화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며 그룹 전체에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부채로 결국 인수 3년 만인 2009년 대우건설을 재매각한다(대한통운을 2011년 재매각).

2009년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 역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금호그룹은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에 박삼구 전 회장은 2009년 7월,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경영권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박 회장의 첫 번째 경영권 상실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채권단의 요구로 15개월 만인 이듬해 다시 복귀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나항공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복귀한 박 회장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다시 매물로 나온 ‘금호산업’의 재인수였다. 재인수를 위해선 자금 7300억 원이 필요했다.

당시, 금호산업은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및 그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08%를 보유한 상태였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단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되고, 금호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아시아나항공은 100% 지분을 갖고 있던 알짜 자회사인 금호터미널을 박 회장의 개인회사인 ‘금호기업’에 헐값에 팔았다. 이를 기점으로 아시아나항공은 하락세에 접어든다.

금호기업은 금호터미널을 인수한 후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고, 사명을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로 바꾸며 박 회장의 금호그룹 지배의 핵심인 지주회사가 된다. 금호홀딩스(금호고속)는 박 회장과 그 아들 등 오너일가가 지분 66.22%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홀딩스(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지배구조가 짜였고, 금호산업을 재인수한 박삼구 회장은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아시아나항공에 부담을 지게 했다. 2017년 금호타이어 인수를 선언하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5년 거래한 아시아나 기내식 납품업체(LSG)와 재계약 협상을 하면서 그룹 지주사인 금호홀딩스(금호고속)의 채권(신주인수권부사채, BW) 1600억 원을 사달라고 요구했고, 업체가 이를 거절하자 재계약하지 않는다.

그 후, 이 요구를 들어준 중국 하이난 그룹 계열사와 합작해, 아시아나항공이 6대4 비율로 기내식 협력업체(게이트고메코리아, GGK)를 세워 30년 치 기내식 공급계약을 맺게 된다. 그러나 이 납품업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기내식 공급 차질이 빚어졌고 임시방편으로 다른 하청업체에 기내식 공급을 맡겼는데, 공급물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2018년에 있었던 일명, 아시아나 ‘기내식대란’ 사태. 사세 확장과 경영권 찾기에 급급해 금호홀딩스 자금을 조달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이런 일련의 일괄거래가 지연되는 동안 금호아시아나 소속 9개 계열사는 자금난에 빠진 금호홀딩스(금호고속)를 지원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회사자금을 빌려줘야 했다. 그룹 전략경영실 지시로 금호홀딩스에 45회에 걸쳐 총 1,306억 원을 담보 없이 최저 연 1.5%의 이자율로 빌려줬고, 이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비계열 협력업체를 통해 280억 원을 끌어와야 했다.

하이난 계열 기내식 업체에 기내식 사업권을 넘기며 금호그룹이 ‘채권 계약 불성립·해지 시 기내식 계약도 해지된다’는 조건의 부속계약을 맺은 것도 문제가 됐다. 지난 8월 공정위는 금호그룹이 총수 일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며 아시아나항공에 81억여 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그룹 계열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총 320억 원이나 됐다.

또, 공정위는 당시 금호홀딩스 채권 인수를 대가로 이 GGK가 기내식 사업권을 가져가면서 아시아나항공은 15년간 거래했던 LSG는 물론 다른 해외 업체와 더 유리하게 기내식을 거래할 기회를 잃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실례로 당시 LSG 측은, 금호홀딩스(금호고속) 자금투자를 요구하는 금호그룹 측에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거절하는 대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율을 20%에서 40%로 높여주고, 아시아나항공에 3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은 이를 거절하고 LSG측과 재계약하지 않고 채권을 사주겠다는 하이난 그룹과 거래했다.

▲ 기내식 대란에 이어 총수 일가의 갑질이 도마에 오른 2018년 7월.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박삼구 회장 퇴진을 촉구했다. [사진 : 뉴시스]
▲ 기내식 대란에 이어 총수 일가의 갑질이 도마에 오른 2018년 7월.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박삼구 회장 퇴진을 촉구했다. [사진 : 뉴시스]

두 손가락에 꼽히던 항공사는 어쩌다가…

그룹에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곳간을 열어야 했던 아시아나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운행 중단까지 겹치면서 가뜩이나 많았던 부채는 더 커지게 됐다. 결국 매각시장에 나왔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를 HDC현산에 3228억 원을 받고 매각하기로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에 해당하는 322억 원은 이미 받아둔 상태다.

금호그룹의 핵심, 지주회사인 금호고속(전 금호홀딩스)은 지난해 금호산업 지분(44.99%)을 담보로 한 대출을 갚기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1300억 원을 차입했지만 이도 제 때에 상환하지 못해 만기를 연장한 상태다. 금호고속은 이미 보유자산 대부분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잡혔고, 내년 1월 만기인 차입금을 자체적으로 갚을 능력이 없는 상황이 됐다.

박삼구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통해 금호그룹을 재건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금호그룹 자산총액은 11조 4000억 원 안팎으로 이 중 아시아나항공 비중이 60%를 차지한다.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대금을 금호그룹을 추스르는 마지막 희망으로 삼은 것.

그러나, 불어난 부채에, 금호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가 밝혀져 과징금까지 안았다. 결국 HDC현산에 매각하는 건 불발됐고, 채권단 관리체제로 넘어갔다. 산업은행은 HDC현산에 인수 가격을 1조원 깎아주겠다고까지 했지만 이 많은 부채를 감당하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자산은 4조 5천억으로 주저앉는 상황이었다. 잘나가던, 두 손가락에 꼽히던 항공사는 어쩌다가, 금호그룹은 어쩌다가 이 상황이 됐을까.

그룹 총수에 의사결정권이 집중되면서 총수 결정의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잘못된 결정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이런 견제를 받지 않은 황제경영이 금호그룹의 몰락을 이끌게 했다는 목소리가 무성하다.

지난 8년 동안, 평균 637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던 아시아나항공을 무너뜨린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3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 경영권 상실이다.

아시아나항공 위기의 책임은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경영진에 있지만, 그 피해는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제2의 국적기로 성장시키고, 기내식 대란 때에도 승객들의 항의를 온몸으로 받았던 노동자들이 기재축소, 비수익노선 정리, 지점 철수 등으로 인해 희망퇴직·무급휴직·정리해고가 내몰리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고 정부로부터 1조 7천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지난 2월부터 비상경영체제가 가동되며 전 직원이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또, 승객수화물 하기와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아시아나에어포트의 하청업체이자, 박삼구 전 회장(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500여 노동자들도 희망퇴직, 무급휴직을 강요받았다.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은 지난 5월 정리해고됐다. 인천·서울 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을 했지만 회사의 반응은 없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아직 거리에서 투쟁 중이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운반업체 에어케이터링서비스(ACS)도 지난달 26일 폐업해 196명 전원이 쫓겨났다. ACS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받고 직원들이 임금 30%를 반납하면서 버텨왔다. 지원금은 2개월 연장됐지만 결국 폐업을 단행했다.

또,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간 아시아나가 공적자금을 지원받는다고 해도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에 대한 지원자금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재매각을 위한 몸집 줄이기, 구조개편 속에 또 다른 정리해고 바람이 불어올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박삼구 회장은 60억 원이 넘는 퇴직금을 챙겨갔고, 아시아나항공 브랜드 사용 대가로 월별 연결매출 0.2%(약 120억 원)를 금호산업으로 가져가도록 했다. 경영악화의 책임으로 물러난 회장의 모습과 노동자들의 풍전등화 같은 고용상황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기획] 멈춘 하늘길, 다시 날고 싶은 노동자

코로나19로 경제위기와 고용불안이 악화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항공산업. 그 직격탄은 항공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의 생존권 문제가 심상치 않다.
위기가 닥친 원인엔 코로나19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내막을 살펴본다.

1)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2) 아시아나항공, ‘제2 국적기’가 어쩌다가…

3) 대한항공, 남매의 난 속에 감춰진 부채와 위기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