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빈민스토리(28)

▲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이 또 다른 노점상 투쟁으로 인식하는 것 [사진 : 필자제공]
▲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이 또 다른 노점상 투쟁으로 인식하는 것 [사진 : 필자제공]

1. 들어가며 

노점상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상적 이해를 넘어 구체적 형성 과정과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점상을 단순히 거리에서 장사하는 이들로만 파악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점상을 이야기하면서 ‘사회구조’라는 말을 무척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누구든 행동할 수 있는 범위나 행동 양식은 사회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건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토대 위에서 여러 가지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회 또한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위에 정치, 법률, 종교 등이 세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중간층 또는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중간층이 상류층으로 가는 징검다리이면서 하류층과는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층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회구조를 계층으로 분류하는 이론을 ‘계층론’이라고 한다. 계층은 단순히 소득 수준에 따라 계층을 나누고 양적 분류의 성격을 띠는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몇 개의 층으로 나눌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1) 

주1) 계급, 책갈피 출판사, 이재유, 14쪽 계급, 민중, 시민은 어떻게 다른가 

노점상을 상인계층으로 파악하는 시각은 단속으로 시달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점상을 어떤 계급적인 범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사회구성원의 행동을 규정 하는 것 가운데 ‘계급’은 경제제도 혹은 생산의 사회적인 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를 말한다. 나아가 생산관계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산 체계 내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의 결과로 사회적 부에서 자신이 유용할 수 있는 몫의 크기 및 그 획득 방식 등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사람들의 거대한 인간 집단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생계를 위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임금노동자”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다양한 부문별 직종별 및 그 밖의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해내는 노동자와 그 가치를 자본의 유통과 사회적인 총자본의 재생산을 통하여 이윤으로 실현을 하는 사무, 판매, 전문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업체 임노동에서 의해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계급이라는 말은 라틴어 클라시스 classis에서 나왔다. 클라시스는 본래 무엇을 나누고 구분하며 분류한다는 의미로 로마시대 6대왕인 세르비우스는 로마시민을 다섯계급으로 나누고 여기에 재산이 아무것도 없고 자식만 있는 프롤레타리아(무산자)를 더해 6개 모둠으로 구분...서양에서 정치와 계급을 연관지어 계급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1760년대 중반이다.2)

주2) 위의 책 22쪽 - 23쪽 계급의 역사 

2. 노점상은 노동자인가?

이러한 물음은 노점상을 도시 빈민의 일 주체로써 성격, 지위와 역할을 둘러싸고 전체운동의 방향 속에 자리매김하도록 한다. 노점상을 노동자로 스스로 규명하려는 노력은 단속을 받는 가난한 상인이라는 인식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가 동등하게 부여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존중받아야 하며 일보 전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점상이 노동자이기 위해서는 고려되고 살펴봐야 할 것들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활한다. 나아가 인간사회의 발전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대립과 변화를 통해서 진행되어 왔다. 이를 노점상에게 적용하면 생계수단인 ‘노점 좌판과 물건’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으며 자신을 직접 고용한 집단에 귀속되어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엄밀히 말해 전통적인 ‘생산수단’의 소유 관계를 둘러싼 생산 관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전적 의미에서 직접적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노점상은 생산 관계상 단일한 계급으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 생활상태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단속이라는 불안정한 삶, 낮은 소득과 그에 따른 소비조건을 고려한다면, 재생산영역 또는 소비영역에서 빈곤하다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도시빈민으로 바라봐야 한다. 노점상의 발생 원인과 경제적, 생활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이들 대부분은 ‘정체적 과잉인구’로 광범위한 ‘노동자 계급’으로 나갈 수 있다.

3. 노점상과 계급의식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생각을 갖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노점상은 자신이 소유하는 좌판에 의지해 장사를 하기에 노동자라는 주체적인 자기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노점상의 ‘소소유자’적인 기질로 인해 기회주의적이고 이중적이기 때문에 사회운동에 복무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한다. 대표적인 일례로 2009년 용산 철거민 투쟁에 있어서 일부 노점상은 조직 우위를 내세워 연대를 포기하고 투쟁을 회피했다. 결국 노점상의 저항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것에 그치며 사회적 문제로 시야를 넓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노점상 운동의 일면만 바라보는 시각으로 사회변혁의 일주체로 자신을 정립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노점상의 저항은 생존권이라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투쟁을 이끄는 ‘주체의 의지’에 따라 노동자 민중과 함께 하는 총체적 사회변혁의 일원으로 나설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서울시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노점상 관리대책’에 따른 부분적인 허가제를 둘러싸고 노점상 저항은 필연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결국 노점상은 소소유자적 성격을 갖는 집단을 벗어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노점상은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현시대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80년대와 90년대 초에도 노점상 ‘배제와 포섭’ 정책은 있었고, 해당 주체는 치열하게 자신을 지키며 노점상의 독자성을 유지해 나갔다. 설령 '노점상 관리' 정책으로 다수를 배제하고 일부를 포섭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더라도 ‘운동 주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실천으로 ‘소소유자적 의식’은 충분히 극복되어 왔다.

이처럼 노점상이 철거민 투쟁이 지역과 공간을 중심으로 자신의 투쟁이라고 인식하는 것,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이 또 다른 자신의 투쟁으로 인식하는 것, 자신의 투쟁을 사회 전체적인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노점상 도시빈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회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노동자 자신도 자신들의 투쟁을 사회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며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조합주의와 경제투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계급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은 전체운동이 함께 넘었어야 할 과제다. 이상 노점상이 노동자로 자신을 규명하는 문제는 결국 계급적 의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짚어 봤다.

이렇게 노점상과 도시빈민은 자본주의 전체구조 속에서 정체적 과잉인구로써 그리고 계급관계 속에서 재생산 영역 안의 다양한 갈등을 둘러싼 투쟁을 자생적으로 또는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도시빈민이 노동자계급의 한 부문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로 이 시기에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철거민, 노점상을 중심으로 한 도시빈민 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됐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노점상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조직되고 사회적 모순과 민주주의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천해 왔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철거민연합’으로 결성된 ‘빈민해방실천연대에서 수석부위원장’ 을 겸임하고 있다. 

현장을 지키며 카메라를 드는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사진 책《청계천 사람들 : 리슨투더시티》외 도시빈민 관련된《가난의 시대 : 동녘 》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동녘 》 《그곳에 사람이 있다 : 나름북스 》공저로《누리하제 : 노나메기》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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