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철 1호선 월계역 문제 해결, ‘주민회의’ 열어 머리 맞댄 주민들

지난해 12월30일, 코레일이 수도권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를 증편하면서 열차 노선과 배차 간격을 전면 개편했다. 이로 인해 1호선 월계역을 이용해 출근하던 주민들은 열차 한 대를 놓치면 다음 열차를 36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평생 가야 한번 하지 않던 지각을 하고, 하루 일상이 무너졌던 주민들. 이들은 불편에 적응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50일이 지났다.

코레일이 주민 면담에서 답한 ‘4월 전면개편’ 조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민의 뜻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현재 진행형이다.

▲ 지난 1월 초, 출근길 월계역 상황. 현재 열차와 다음 열차의 간격은 12개 정거장이다.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 지난 1월 초, 출근길 월계역 상황. 현재 열차와 다음 열차의 간격은 12개 정거장이다.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50일간 어떤 일이 있었나?

새해 출근길, 월계역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주민들을 목격한 민중당 노원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노원 운동본부)는 주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문제, 일상의 애환이 되는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기로 했다. 늘어난 열차 배차 간격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은 이 정보를 습득해 해결 방법을 고심했다. 일주일간 150여 명의 주민이 집단 민원 운동을 벌였고, 노원 운동본부에 출근길 열차 상황을 수시로 제보하고 대책을 제안했다.

노원 운동본부는 주민들의 민원을 바탕으로 코레일 책임자(광역철도본부장)를 만나 주민요구안을 전달하고, 해당 기관(부서)의 사과를 받고 요구안의 내용대로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주민들은 월계역 상황과 문제 해결 과정을 온라인커뮤니티 등에 퍼나르며 월계역 문제를 함께 해결할 주민을 찾고 조직했다. 주민들의 일상적인 고충에 대해 즉각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고, 월계역 앞에서 주민 행동(집회)도 벌였다.

설 연휴가 끝난 후, 코레일은 아침 출근시간대 열차 3대 증편했고, 환승을 하지 않고 구로역까지 운행하는 열차도 생겼다.
☞ 관련기사 : ‘주민의 힘으로 주민의 뜻대로’ 주민고충해결 사례 - 월계역 열차 배차 문제

▲ 주민들의 민원내용과 요구안으로 코레일 광역철도본부장을 면담한 결과. 노원 운동본부는 홍보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알렸다.
▲ 주민들의 민원내용과 요구안으로 코레일 광역철도본부장을 면담한 결과. 노원 운동본부는 홍보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알렸다.

주민회의 안건 ‘월계역 문제 해결 방법’

누구에게 ‘대리’해 달라거나 ‘청원’하지 않고, 코레일이 제시해 주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주민이 나서 ‘직접 정치’ 방식으로 월계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22일 주민회의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코레일이 약속한 4월 전면개편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22일 오후, 월계동 주민들이 월계역 앞 한 카페에 모였다. 이날의 안건은 역시 ‘월계역 문제 해결 방법’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열차 간격이 늘어 출근길이 고통스럽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7시대에는 열차가 너무 적어요.” (김기명 씨)
“6시대에 열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정말 답이 없어요.” (김보람 씨)
“인구수에 따라 열차 배차 간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출근시간대에 이렇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윤수 씨)

최나영 노원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장의 진행으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불만만 토로하는 게 아니다. 해당기관에 주민들의 문제 인식을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지 ‘주민 논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자고로 ‘열차’란, 제시간에 출발해,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그 의미는 더하다. 아무리 급행열차가 늘어도 열차가 갖는 정시성, 안정성이 무너지면 주민들에겐 큰 의미가 없게 된다.” (한윤수 씨)

“광운대역(월계역 전 역)은 수원행·인천행이 오가니까 열차가 자주 온다. 2분 늦으면 2분 후 다른 열차를 탈 수 있지만, 인천행만 오가는 월계역의 경우 2분 늦으면 10분을 기다려야 다음 열차를 탈 수 있다.” ‘시민의 발’이라는 열차의 정시성이 깨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조현준 씨가 설명했다.

열차 ‘정시성’의 문제가 대화의 꼬리를 문다.
“열차 시간이 매번 바뀌는데, 그럴 때마다 시간을 체크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촌각을 다투는 출퇴근 시간엔 광운대역에서 제 때에 환승하도록 환승열차 출발시간, 환승 플랫폼 번호 등을 미리 알려주는 방송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은가.”

직장인들에게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특히 단기 근로계약으로 일하는 주민들에게 ‘생존권의 문제’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 최나영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장이 월계역 진행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 최나영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장이 월계역 진행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주민 뜻대로 해결’할 요구안 정리

그리고 토론을 통해 주민요구안을 정리했다. 지난 50일간 이어진 주민들의 민원과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코레일의 후속 조치에 대한 추가 조치 요구, 4월 전면개편을 앞둔 요구사항, 장기적인 대책 마련 등 다양한 요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은 ▲출근시간대(7:20~7:40) 도심행 하행열차 추가 배치 및 퇴근시간대 상행열차 북부지역으로 연장 ▲월계역~광운대역(1정거장) 구간 열차 운행 시, 광운대역 환승 정보 상시 안내 ▲4월 전면개편안 마련 시 주민요구 반영(주민공청회) ▲1호선 전체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여러 선로가 통과하는 역에 대한 활용방안 마련 ▲선로 부지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역세권 투자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아 요구안을 만들었다. ▲주민들 민원에 대한 ‘기계적’ 답변이 아닌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도 추가됐다.

노원 운동본부는 이렇게 정리된 주민들의 요구안을 들고 코레일 광역철도본부장과의 재면담을 추진할 예정이다.

더 많은 주민의 참여를 독려할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법들이 제안된다.
“월계역 문제에 ‘함께 항의한다’는 의미를 담아 출퇴근시간대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을 모아 함께 사진(인증샷)을 찍자. 많은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지하철역은 물론 버스정류장 곳곳에 지금보다 더 많은 현수막을 게시하고, 온라인거점으로 연결되는 QR코드 등을 현수막에 넣자.”

“온라인 거점을 만들어 주민들을 최대한 모으자. 오픈채팅방과 페이스북을 활용하자.” 주민들의 연령대에 맞는 온라인 채널에 대해 꼼꼼히 토론한 결과 두 개의 소통창을 만들기로 했다.

‘주민회의’에 모인 이유

주민들이 ‘주민회의’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는 월계역 문제 해결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고 행동하지 않으면 주민 뜻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항의 민원전화를 많이 했는데도 기계적인 답변만 받았다.” 조현준 씨가 답변을 받은 문자를 보여줬다. “원인 파악, 해결 방안 등 구체적인 얘기는 없고, 민원이 접수됐다, 해당 부서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답변만 수차례 받았다.” 주민 민원에 대한 ‘기계적’ 답변 아닌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하라는 요구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원에서 당선된 민주당도 그렇고 주민들이 어떤 민원을 제기하면 전혀 행동 한번 없다가 선거철만 되면 다시 나타난다. 월계역 문제도 제기해 봤지만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정당)들이 지역에서 하고자 하는 문제만 얘기할 뿐”이었다.

그런데 직접 나서서 행동하니 달라졌다. “월계역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 민원에 참여하고 나서 부족하지만 즉각적으로 바뀌어 가는 걸 보고 놀랐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요구해야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스레 월계역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는 ‘민중당’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이 정당이 꾸준히 문제 해결에 함께 할 정당인지 궁금했다. 여타 다른 정당처럼 이슈가 생겼을 때 나타나 정당 이미지만 좋게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닌지….” 솔직히 말하는 주민도 있었다.

“도심 외곽에 사는 우리가 이런 배차 간격에 익숙해지길 기다리고, ‘주민들이 감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정치인·행정가들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말에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회의를 마친 주민들 속에선 ‘주민 뜻대로 해결’할 수 있는 희망과 결심들이 오갔다. “주민 모임이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위안도 생겼다. 나 자신도 더 많이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함께 해나갈 마음이 생긴다.” 월계역 문제의 고충을 함께 겪는 주민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이날 회의에서 처음 만난 주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았던 두 시간의 회의는 짧기만 했다.

▲ 주민회의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월계역 파이팅’을 외쳤다.
▲ 주민회의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월계역 파이팅’을 외쳤다.

이제 노원 지역에서 월계역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주민들이 다른 주민을 조직하는 건 익숙한 모습이다. 김보람·김기명 씨는 조현준 씨가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린 ‘주민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 참여한 주민들은 월계역 배차 문제를 주민들의 뜻대로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노원 운동본부와 다양한 의논을 이어 갈 운영진이 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수시로 소통할 온라인 채팅방도 만들었다.

최나영 노원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장은 ‘직접정치’를 위해선 “주민들이 뿜어내는 힘의 정체(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조직(모임)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노원 운동본부에게도, 참가 주민들에게도 이렇게 ‘우리가 나서야 바뀐다’, ‘우리가 직접 나서자’는 의지와 힘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주민의 고충과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안건이 상정되고, 주민들이 해결 방법을 찾아 요구안을 정리하고, 스스로 해결에 나서는 ‘주민 직접정치 회의’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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