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힘으로 주민의 뜻대로’ 주민고충해결 사례 - ② 월계역 열차 배차 문제

지난 1월3일 아침,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월계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주민들. 출근길을 재촉해도 빠듯한 시간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열차가 40여 분간 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출근길 승객들은 역무실에 문을 두드리는 등 원성이 높아졌다.

▲ 지난 1월 3일 수도권 지하철 월계역 상황. 다음 열차의 위치가 ‘10개 전 역 접근’임을 볼 수 있다. 이날 40분가량 열차가 오지 않아 많은 주민이 불만을 호소했다. [사진 : 민중당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 지난 1월 3일 수도권 지하철 월계역 상황. 다음 열차의 위치가 ‘10개 전 역 접근’임을 볼 수 있다. 이날 40분가량 열차가 오지 않아 많은 주민이 불만을 호소했다. [사진 : 민중당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월계역’ 하면 ‘민중당’이 떠오르기까지…

‘월계역’ 하면 ‘민중당’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노원 주민들. 그날부터가 시작이었다.

월계동에 사는 수많은 주민들은 출근길이 바빠졌고 일상까지 무너지기 시작했다.

“20여 명 정도 탈 수 있는 버스 한 대가 늦게 온다거나 배차가 없어지면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기 마련인데, 열차 하나에 수백, 수천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이라면… 출근 시간이 늦어지면서 일상도 꼬이고, 그야말로 ‘혼란’ 자체입니다.”

“20년 넘게 지각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처음 지각을 해서 회사에서 곤란한 상항을 겪었습니다.”

열차가 지연 문제가 불거진 아침, 노원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노원 운동본부) 최나영 본부장은 월계역에서 웅성대던 주민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노원 운동본부는 월계역 열차 지연에 따른 주민의 일상적인 불편과 고충, 그리고 이 불편이 일터로 갔을 때 관리자의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주민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 주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문제를 주민의 힘으로 해결해 보자”고 결심한 노원 운동본부의 ‘직접 정치’는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삶의 애환을 깊이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노원 운동본부는 먼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국토교통부, 철도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등에 문의해 사태의 원인을 파악했다. 지난해 말 12월 30일부터 코레일이 급행열차를 증편했고 1호선 열차(노선)를 전면 재개편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다.

1호선 급행열차 수(34→60회)는 늘었지만, 기존 완행열차 수는 줄어들었다. 완행열차만 정차하는 월계역을 기준으로 보면, 완행열차는 당연히 줄었고, 특히 인천~소요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경인선 열차가 줄었다. 열차가 소요산역까지 오지 않고 월계역 이전 역인 광운대역이 종점이 되면서 월계역을 지나는 완행열차의 배차간격이 늘었다. 월계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아침 출근시간대에 가장 심각한 구간은 배차 간격이 26분(6:34-7:00)이었다.

노원 운동본부는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주민들에게 공유했다. 저녁 퇴근길부터 피케팅을 시작했고 선전물을 배포했다. 운동본부가 파악한 열차 배차 변경과 지연 사태의 원인에 대해 알리고, 주민들에게 코레일·국토교통부, 그리고 노원 운동본부를 통한 민원 접수 방법을 안내했다.

▲ 월계역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한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는 홍보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알렸다.
▲ 월계역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한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는 홍보물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알렸다.

하루하루 주민들의 민원서가 늘어났다. 거리에 거점을 잡아 민원 접수대를 설치했다. 주민들은 노원 운동본부로 직접 전화해 자세한 원인을 물어보거나, 자신의 불만과 운동본부가 파악한 것보다 더 구체적인 문제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출근시간, 가장 심각한 배차간격이 26분이 아니라는 것, “6:35 열차는 광운대역까지만 운행돼, 더 멀리 가려면 6:24 열차 이후 다음 열차를 36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제보가 주민을 통해 들어왔다.

주민과 호흡하고, 발을 맞춘다는 것

민중당 노원 운동본부는 주민들이 털어놓은 애환에 귀 기울였다.

“20분에 1대, 30분에 1대씩 오는 지하철. 사람들이 매번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차 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숨쉬기 힘든 열차를 탈 생각에 진이 빠집니다.”

“집에서 지하철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가까이 살지만 ‘역세권’은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는 초역세권에 산다며 부러워하지만, 지하철역에서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같은 요금, 같은 세금 내는데 왜 우리는 지하철을 20~30분씩이나 기다려야 할까요. 여기도 서울 지하철이 맞나요?”

이렇게 월계역 배차, 지연 문제는 월계동 주민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게 하는 사안이었다. 주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큰 정치적 이슈가 아니고서야 ‘정치’라는 단어를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한 지역의 작은 이슈로 치부될 수 있는 월계역 문제. 그러나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깊이 알아가면서부터 노원 운동본부는 ‘주민의 힘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주민들과 힘을 모았다.

▲ 월계역에서 주민을 만나 고충을 듣고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최나영 민중당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장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 월계역에서 주민을 만나 고충을 듣고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최나영 민중당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장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예전 같았으면 우리가 먼저 ‘코레일 규탄’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바로 행동에 나섰을 거예요. 우리가 먼저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익숙했으니까요.”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주민들의 애환을 나눴고, 파악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자 ‘문제를 해결’을 바라는 주민의 요구는 ‘집단민원’ 운동으로 이어졌다.

일주일간 150여 명. 월계동 주민들은 코레일·국토교통부·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실에 문자·국민신문고·팩스·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민원을 제기하며 집단민원 운동을 벌였다. 그러자 코레일은 8일, 오전 시간 3대의 열차를 추가 배치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3대 중 2대는 월계역 전 역까지만 운행하는 광운대행으로 월계동 주민들의 불편은 여전했다. 코레일은 “광운대역에 가서 인천행으로 환승하라”는 무책임한 안내만 하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당연히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코레일의 변경된 조치를 안내하자 주민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그리고 노원 운동본부를 만나 더욱 구체적인 문제 제기와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표출했고, “어디 가서 항의(행동)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월계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당’, ‘월계역’하면 ‘민중당’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노원 운동본부는 코레일 담당부서를 확인하고 총괄책임자인 광역철도본부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끈질긴 면담 요청이 계속되는 사이, 주민들은 열차 배차 간격, 특히 아침 출근시간대의 상황과 열차 환승의 문제 등을 노원 운동본부에 전달했다. 주민들과 호흡을 맞추고 발을 맞추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코레일 광역철도본부장과의 면담이 확정된 후 면담에 참가할 주민들을 모집하고, 주민이 제시한 민원내용으로 요구안을 만들었다. 16일 최나영 노원 운동본부장이 민원인을 대표해 광역철도본부장을 만나 주민들의 요구였던 ▲출근시간 대에 열차 1대 증차 ▲광운대역을 종점으로 하는 열차를 인천~소요산행으로 변경 ▲열차 지연문제 개선 ▲배차 변경 이유와 이후 대책에 대해 주민들에게 정확히 안내할 것을 요구했다. 면담 자리에서 코레일은 열차가 지연 운행됐던 이유에 대해, “급행역 추가에 따른 열차 선로 변경을 앞두고 이에 대한 시뮬레이션(시범운영) 시간이 부족했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4월 전면 개편을 예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 서울 노원구 월계동 A아파트 온라인커뮤니티. 월계역 열차 문제 관련 게시글과 댓글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다.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 서울 노원구 월계동 A아파트 온라인커뮤니티. 월계역 열차 문제 관련 게시글과 댓글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다.

주민이 주민을 조직하다

노원 운동본부는 이날 저녁 코레일 면담 결과에 대한 ‘주민보고회’를 열었다. 주민들이 속속 보고회장에 들어섰다. “민원 접수에 동참했다는 주민부터, 민원 제기 후 꾸준히 문자로 정보를 알려주던 주민, 월계동 A아파트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소식을 접하고 왔다는 주민까지 다양했어요.”

문자와 홍보물을 통해 시시각각 공유된 정보들은 주민들을 ‘민원 접수’에 나서는 것에 멈추지 않았고, 주민 사이에서 문제 해결 방법이 논의되고, 이것이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퍼지고 있던 터였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주민의 요구대로 해결될 때까지 “민원에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민원을 넣어도 제대로 된 답변은 없었는데, 이렇게 집단적으로 해보니 변화가 있다”면서 “우리가 목소리를 더 내고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함께하자”는데에 동의가 오갔다.

이렇게 해 1월20일엔 주민들의 일상적인 불편에 대해 즉각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국토부와 코레일을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박순자 의원(상임위원장)에게 민원서와 주민들의 민원내용을 전달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코레일 광역철도본부가 말한 4월 재개편까지 3개월이 넘도록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에 30분이 넘는 배차 간격을 즉시 보완하라”는 요구, “4월 재개편 시에도 북부지역 완행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편의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으려면 주민들의 목소리를 계속 내야 한다”면서 ‘행동’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설 연휴 시작을 앞둔 지난달 22일, 월계역 앞 주민행동에 모인 주민들은 “불편에 적응하지 않고, 불편은 바꾸고 사태를 원상회복하기 위해 행동하자”, “한 명이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설 연휴가 끝난 28일, 코레일은 아침 출근시간대에 열차를 3대 증편했고, 배차가 없었던 6시30분 시간대에 구로역까지 가는 열차(06:38)를 배치했다. 퇴근시간대에 일부 열차 시간도 변경됐다.

노원 운동본부는 변경된 열차 시간표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고 홍보물을 배포하며 “더욱 힘 모아 주민의 뜻대로 완전히 해결하자”고 힘을 불어넣었다.

주민들은 이제 주황색 옷을 입고 다니는 민중당 노원 운동본부와 당원들을 만나면 “월계역 해결하는 민중당 맞죠?”, “월계역 문제 어떻게 되고 있어요?”라고 말을 건네거나, “매일 지하철 이용하는 우리 딸 아들이 너무 고마워하고 있다”면서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하는 주민도 생겼다.

‘주민의 뜻대로, 민심대로’ 주민이 주인이 되고 있는 월계역 문제 해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 지난 1월 22일, 월계역 앞에서 “주민의 힘을 모아 주민의 뜻대로 해결하자”는 월계역 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행동이 열렸다.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 지난 1월 22일, 월계역 앞에서 “주민의 힘을 모아 주민의 뜻대로 해결하자”는 월계역 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행동이 열렸다. [사진 : 노원직접정치운동본부]

뼛속까지 박힌 “주민의 힘으로, 주민 뜻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역구 의원에게도 월계역 문제 해결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건 무관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월계역에 민중당은 어쩌면 ‘혜성같이’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등장하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을, 공장, 캠퍼스 등 주민들의 생활공간, 노동현장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제안한 정책을 지방선거에서 의제화하고 정책으로 만들겠다는 ‘주민 정책제안운동’, 그리고 2019년, 7개월간 주민들의 요구안(9천 300여 개)을 받아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국회와 구의회에 제기할 1순위 요구안을 선정했던 ‘노원주민대회’. 주민들과 함께 ‘직접 정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노원에서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중이다.

노원 운동본부는 “주민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가 속된 말로 ‘뼛속까지 박혀 있는’ 듯했다.

주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본부는 이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해 정보를 제공한다. 주민들은 이 정보를 습득해 해결 방법을 찾고, 주변에 자신과 같은 고충을 겪거나 해결에 공감하는 주민을 조직하며 주민의 힘으로 집단민원을 제기해 해당 기관과 부서 등을 움직인다. ‘대리’하거나 ‘청원’하지 않고 직접 주민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갖게 하는 ‘직접정치운동’. 월계역 문제 해결 과정이 바로 그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주민의 힘으로, 주민 뜻대로 해결하자”는 주민들의 의지는 민중당이 진행하고 있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 월급 주지 말고, 국민의 명령으로 소환하고 해고’할 수 있는 ‘국민의 국회 건설 운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폐지 법안을 만드는 발안위원 모집에 노원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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