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의 육당·춘원 문학상 제정에 시민단체 “철회하라” 반발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단순한 친일파가 아니다. 한국민족정신사에서의 이완용이 주권과 국토와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 두 사람은 우리민족사의 정신을 팔아먹은 정신사의 이완용과 마찬가지다.”

▲ 지난 8월 4일 한국문인협회가 입주해 있는 대한민국예술인센터 앞에서 역사정의실천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주최하는 ‘육당·춘원 문학상 제정 철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4일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문효치. 한국문협)가 입주해 있는 대한민국예술인센터 앞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역사정의실천연대에서 주최한 ‘친일문학상 제정 철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국문협의 친일문인 문학상 제정 소식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임 소장 자신도 문인으로서 문학상 제정이 과연 1만3천여 문협 회원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지에 의문을 가지며 친일 옹호세력들조차도 친일의 흔적이 워낙 커 감히 만들지 못한 상을 한국문인 전체를 대표한다는 한국문협이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에 기막혀 했다.

임 소장은 회견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문인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민족 지도자급이었기에 그들의 친일은 더 큰 충격을 주었던 인물들이다. 세계 역사상 없는 이런 문학상을 만드는데 문인들이 침묵한다면 문인 전체가 불명예를 안게 되고 이는 재앙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하루 빨리 이번 문학상을 취소하라“고 호소했다.

465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정교과서 문제 등 현 정부의 역사퇴행 정책을 비판하면서 “역사퇴행을 막고 저항해야 할 사람들이 문인들인데 과거 역사범죄자를 기리겠다고 하면서 역사파괴 행위에 동참하고 더 나아가 찬양고무하고 있다”며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해야할 문인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앞장서서 선전하고 옹호하면서 국민들을 전쟁터에 나가게 한 전쟁범죄자들을 기리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한국문협은 문학상 제정이 지니는 의미와 파장을 냉철히 생각해 현 정부의 역사퇴행에 맞서서 싸우지는 못할 만정 그를 비호하고 앞장서서 길라잡이 역할 하는 일을 당장 중지하라”고 촉구하면서 국정화교과서 저지 활동과 맞물려 친일파 문학상 제정 철회를 위해 연대한 시민단체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 조길성 시인은 “독립운동으로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아왔는데 자신의 집안을 망친 친일파들은 경찰서장까지 하면서 호위호식을 하는 걸 보며 분노를 느낀다는 본인의 삶을 예로 들면서 프랑스 같았으면 총살당할 사람들을 기린다는 건 민족 자존심의 문제”라며 “(친일파 문학상은) 무조건 철회되고 한국문협은 백배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단순한 친일파가 아니다. 한국민족정신사에서의 이완용이 주권과 국토와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 두 사람은 우리민족사의 정신을 팔아먹은 정신사의 이완용과 마찬가지다.”라고 성토했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의해 "죽음으로써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논문을 쓴 최규동 교총 초대회장을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둔갑시키고 '이달의 스승'으로 뽑았던 사례를 소개하며, 친일파 문학상 제정도 이처럼 미래세대들에게 친일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을 희석시키고 역사의식을 장악하려는 움직임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이날 회견은 한국문협이 지난달 26일 가진 2016년도 제2차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을 가결한 데서 촉발됐으며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문협에 문학상 제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한국문협은 이렇다 할 응답이 없는 가운데 이날 회견 장소에도 나오지 않았고 전화를 통해 문학상 철회 요구에 대한 조치를 묻자 “다음 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결정할 것”이라는 답변만 전해왔다. 하지만 이사회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섭씨 36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임시정부 국무위원 동암 차리석 선생의 장남인 차영조 선생이 직접 회견장에 나와 ‘한국문인협회의 최남선·이광수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는 회견문을 직접 낭독하며 친일파 문학상 제정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2일 ‘역사 퇴행의 막장 드라마 육당, 춘원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는 논평을 내고 문효치 한국문협 이사장이 직접 제안한 두 문학상 제정과 춘원 이광수 소설 ‘무정’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 개최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로 당장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논평에는 지난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서 일제의 역사왜곡과 식민사학 수립 협력, 1938년부터 5년간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서 친일 고위관리 양성,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임전대책협의회 등 각종 친일단체의 주요 임원, 징병·징용·국방헌납 등 전쟁동원 선전 위한 시국강연과 좌담회 강사, ‘보람 있게 죽자’ 외 수많은 친일논설을 발표하는 등 하늘이 준 재능을 민족 반역의 길에 내다버린 지식인인 육당 최남선의 전력이 소개돼 있다. 

▲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해방 후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가 반민특위에 끌려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춘원 이광수의 전력도 소개됐는데,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취임 후 ‘내선일체와 조선문학’, ‘황민화와 조선문학’을 쓰는 등 조선문학을 일제의 선전도구로 만드는 데 앞장섰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자 가야마 미쓰오(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꾸고 ‘창씨와 나’를 기고하는 등 창씨제도를 적극 선전했다는 것, 1943년 징병제 실시 후에는 유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출진할 것을 권유하고, ‘지원병장행가’, ‘징병제의 감격과 용의’ 등을 기고,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등 신념으로 일제에 협력한 최고의 친일 이데올로그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문효치 이사장이 “육당과 춘원의 친일 부분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며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두 분이 작품으로써 문학사 건설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인데 친일 행적 때문에 문학적 자산까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문학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전형적인 ‘공과론’으로 친일파와 친일비호세력들의 변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문학적 자산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문 이사장의 핑계와 달리 최남선과 이광수에 대한 연구는 차고도 넘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논평을 통해 반박했다.

해방 후 두 사람은 반민특위에 제일 먼저 끌려가 단죄됐으며 ‘친일인명사전’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된 특급 친일파인데 굳이 문학상을 제정하려는 문협의 저의에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 이광수가 <매일신보> 1940년 8월 27일자에 기고한 '창씨개명은 우리집이 첫째' (사진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증조부 문종구의 친일에 대해 반성의 뜻을 밝히며 선대의 과오를 대속한 문 이사장이 육당과 춘원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을 결정한 것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라고 따져 물었다.

시대정신은 과거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에 있는 만큼 한국문협은 반역사적이며 반문학적인 이번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문학인의 시대적 책임을 다하라는 촉구와 함께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는 다산을 말을 인용하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문학인의 자세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논평은 끝을 맺었다.

한국문협은 ‘친일파 문학상 제정’이라는 시대를 역행하고 문인들의 자존심을 베어내려는 두 개의 칼을 들었다. 문 이사장은 문협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인을 흔히 최후의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양심이 시키는 대로 일하겠습니다. 양심은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이 가치를 일의 현장에 반영하겠습니다. 문협을 위하는 일에, 회원을 위하는 일에 제 양심을 바칠 것입니다.”

문 이사장이 조부의 과거를 반성하고 문인으로서 양심의 가치를 빛냈듯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육당과 춘원 두 친일파의 문학상 제정 철회’에 대한 의견을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자회견문]

한국문인협회의 최남선·이광수 문학상 제정을 규탄한다

 

밝은 대낮에 온갖 망령들이 도처에서 부활하고 있다. 친일 망령, 독재 망령, 유신 망령. 이승만 박정희 우상화도 모자라 이제 갖가지 이해관계에 얽힌 집단들이 역사의 죄인들을 위인으로 변조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문인협회는 지난 7월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문효치 이사장이 제안한 ‘육당문학상’ 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했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이광수가 쓴 소설 ‘무정’ 발표 100년을 기념해 심포지엄도 열겠다고 했다.

이는 한국문인협회가 한국 문학의 정신사적 역사적 기반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939년에 설립된 최대의 친일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를 계승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대표적인 친일문인을 기리는 상을 제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찌 감히 최남선과 이광수를 기념하려 하는가? 최남선과 이광수는 친일 행적만 모아도 따로 전집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의심의 여지없는 ‘민족의 죄인’이다.

누가 최남선을 조선 역사와 문화의 공로자라 일컫는가.

처음에는 민족사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연구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 그는 친일 반민족의 길로 나아갔다.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서 일제의 역사왜곡과 식민사학 수립에 협력했고, “조선 문화의 일본화야말로 당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역설하여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일에 앞장섰다.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을 ‘도의(道義)를 위한 것’으로 찬양한 그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에 대해 “일본제국의 용기와 총명과 정의가 마침내 오늘날의 만주국을 만들었다”고 미화하며 ‘낙토’라 찬양했다. 1938년부터 5년간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친일 고위관리를 양성했으며, 1940년 조선인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고문직을 맡아 자신의 이름을 항일세력 말살에 기꺼이 보탰다.

또한 그는 조선인들을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보내는 데 앞장선 제국의 나팔수이자, 동아시아 민중의 적이기도 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시작으로 임전대책협의회 등 각종 친일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참여했으며, 이도 모자라 조선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일에 협력했다. 여기에 도대체 무슨 문학적 공로가 있으며 문학정신이 있단 말인가.

단언컨대 이광수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괴벨스이다.

일찍부터 불안한 민족의식을 내재했던 그는 1938년부터 본격적으로 친일에 나섰다.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내선일체와 조선문학〉〈황민화와 조선문학〉을 쓰는 등 조선 문학을 일제의 선전도구로 만드는 데 복무했다. 각종 친일 단체의 주요 간부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재주인 글로써 천황제와 황국신민화 찬양, 일제의 침략전쟁 정당화와 전시동원 독려, 그리고 문학을 통한 보국 등을 적극 선전했다.

“네가 만일 민족주의자일진댄 금후의 조선의 민족운동은 황민화운동임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속히 황민화가 될수록 조선민족에게는 행복이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족주의자들에게 백기 투항을 요구했다.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자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이름을 바꾸면서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香山光郞)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라고 기염을 토한 자 또한 이광수였다.

1943년 징병제 실시가 공포되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에게 학도병으로 출진할 것을 권유했으며, 〈지원병장행가〉〈징병제의 감격과 용의〉등을 기고하여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그는 단순한 친일파를 넘어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번역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 선 파시스트이자 파시즘의 전파자였다. 히틀러와 차이가 있다면 히틀러는 조국 독일과 독일 민족을 내세웠다면 이광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을 내세운 것이다.

실로 최남선과 이광수의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은 문학만이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문필의 재능으로 각각 3·1독립선언서와 2·8독립선언서를 기초했으며, 바로 그 재능으로 일제가 요구한 문필보국(文筆報國)에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었다. 양대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사람이 친일반역의 길로 들어선 것 자체만으로도 그 죄를 엄히 추궁해야 할 것인데 어찌 그 죄악의 재주거리인 문필을 기리고자 문학상을 제정하려 하는가.

최남선과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적일 뿐 아니라, 이 제안자인 문이사장이 정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증조부로 둔 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선대의 친일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힌 적이 있는 사람이 자숙하기는커녕 앞장서서 천황에 충성한 식민지 괴벨스들을 기념하는 사업을 제안한단 말인가. 그동안 한국문인협회가 시대의 모순에 애써 눈귀를 닫고 침묵한 일에 대해 성찰하고 과오를 바로잡으려 노력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느닷없이 대표적인 친일 문인들을 기념하겠다고 나서니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한국문인협회는 제정신을 차리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참된 문인단체로 거듭나기를 강력히 촉구하며 아래와 같이 우리들의 요구를 밝힌다.

- 한국문인협회는 ‘친일 문학상’ 제정을 즉각 철회하라!

- 문협은 시대착오적 친일 미화를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 국회는 친일파 기념사업 금지법을 즉시 제정하라!

 

2016년 8월 4일

역사정의실천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월혁명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465개 시민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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