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3)]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② 일본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펼치고 있는 나라들이 경제민주화를 시도한 사례에 대해 알아본다. 사례는 미국, 일본, 이스라엘 총 3편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 ‘재벌(財閥)’의 원조는 일본이다. 일본의 재벌(자이바쓰)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해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이 일본전역에 단행한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인해 해체의 길을 맞는다. 일제시기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강제노역 시킨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재벌기업 ‘미쓰비시’의 형성과 해체의 과정, 그리고 오늘날에도 강력한 ‘기업집단’으로 남아있는 ‘미쓰비시’의 역사를 보면 일본재벌이 걸어온 역사를 알 수 있다.

▲ 사진 : 뉴시스

일본 재벌의 탄생

메이지유신 후 메이지 정부는 ‘부국강병과 산업융성’을 국시로 내걸었다. 이 시대적 흐름을 타고 부를 쌓아 일본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한 주역이 바로 ‘일본재벌’들이다.

미쓰이, 스미토모, 미쓰비시, 야스다가 일본의 4대재벌로 꼽힌다. 이들은 일본패망 이전까지 일본의 광업·공업·상업 등 주요산업 및 금융부문을 장악해왔다. 이 4대재벌이 일본 기업자본의 25%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일본재벌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특정 동족(혈족)이 지배하는 거대기업이었다. 창업자 일족들이 일본재벌의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아래 본사가 직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이들 직계회사들이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때문에 최정상의 창업자 일족에 부가 집중된다.

일본재벌은 또 ‘정치상인(정상)’이라 불린다. 정치권력과 밀착해 부를 축적한 기업을 뜻한다. ‘미쓰이’는 메이지 정부의 화폐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룹을 키웠고, ‘미쓰비시’의 경우 정부의 대만출병 당시 전쟁전략물자의 수송을 맡아 정부의 신뢰를 얻은 뒤 정부의 지원으로 해운업을 독점했다. 조선출병에서도 병력과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 메이지 정부가 만든 조선소 ‘나가사키조선소’는 미쓰비시 소유이며, 미쓰비시는 또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생산하며 성장의 토대를 만들었다. 미쓰이 광산, 미쓰비시 광업과 중공업, 스미토모 금속공업 모두 일본의 전쟁수행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업이었다.

미군정에 의한 재벌해체

정부의 침략행위에 동조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경제적 토대로 자리 잡으며 부를 축적해 온 일본재벌은 그 이유로 하여 해체의 길을 걷는다.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일본전역에 경제민주화를 위한 3대 개혁을 실시한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농지개혁, 노동조합육성, 산업민주화정책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재벌해체는 산업민주화정책의 일환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 연합군은 일본이 어떻게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는지 전쟁자금원을 추적한 결과 ‘부가 집중돼 있는 돈 많은 자산가층들이 전쟁수행에 협력했다’고 판단,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제적 측면에서 저지하기 위해 재벌해체를 시작한다. 일본의 비군사화와 더불어 일본재벌 해체의 또 하나의 목적은, 재벌의 독점을 해체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1945년 11월 유엔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GHQ)는 최고사령관 각서 ‘지주회사 해체에 관한 건’에서 재벌해체의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직접 재벌해체에 나선다. GHQ에 의한 재벌해체 작업은 ▲지주회사의 해체 ▲재벌가족의 기업지배력 배제와 경영진의 전면적 교체 ▲주식소유의 분산화 등 세 가지 특징이 있다.

GHQ는 재벌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기간 중 재벌자산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4대재벌 본사의 자산을 동결하고 ‘지주회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한다. 지주회사정리위원회는 지주회사를 지정하고, 지주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산하 회사의 주식을 접수받아 그 주식을 매각 또는 처분하며, 재벌기업과 재벌가족의 독점적 지배를 배제하기 위해 지주회사와 재벌가족이 보유한 소유재산을 양수·관리한다. 그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은 양도 및 처분하는 조치를 취한다.

또, 1948년 제정된 ‘재벌동족 지배력 배제법’에 의해 재벌가족 및 주요 재벌회사의 임원으로 중요한 업무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재벌 관계 임원 등은 임원직에서 추방된다. 이에 앞서 1947년 12월엔 ‘과도경제력 집중 배제법’을 제정, 과도집중기업을 지정하고 재벌관련 기업들을 분화해 규모를 축소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재벌해체 작업으로 인해 재벌본사가 독점했던 주식은 자본시장으로 흩어지고, 재벌본사가 산하 기업을 강력하게 지배하던 일본의 재벌구조는 붕괴된다. 미쓰비시의 경우 업종별로 분해된다.

한편, 1947년 제정된 ‘사적독점의 금지 및 공정거래의 확보에 관한 법률(독점금지법)’은 재벌해체 효과를 지속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점금지법은 사적독점 및 부당거래, 불공정 거래 등을 규제했다. 특히 이 법률 4장(주식의 보유, 임원의 겸임, 합병, 분할 및 사업의 양수) 부분엔 사업 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될 회사의 설립을 제한하거나 신고할 의무, 회사의 주식보유에 대한 제한과 신고의무, 합병의 제한과 신고의무, 탈법행위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독점금지법은 과거 재벌본사의 기능을 담당했던 지주회사를 금지함은 물론, 일반 회사들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 역시 크게 제한해 재벌의 부활을 방지하고, 사업지배력의 과도한 집중이 발생하거나 경쟁제한적인 시장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재벌의 재결합… ‘기업집단’ 형성

그러나 강력했던 재벌해체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 구재벌기업들은 ‘기업집단’ 형태를 이루며 재편되는데, 그 과정 역시 미국의 정책과 관련된다.

1950년 전후 중국이 부상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일본을 통해 아시아 전략을 꾀한다. 미국이 반공의 기지로써 일본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일본경제를 약화시키는 조치를 수정, 재벌해체 정책의 변경을 가져온다. 일본재벌 해체 관련 제법령의 폐지와 독점금지법의 개정으로 기업의 독과점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구재벌계 기업의 재통합 작업, 즉 쪼개졌던 그룹이 잇따라 합병하는 등 그룹통합도 시작된다. 해체된 구재벌기업들이 ‘기업집단’이라는 새로운 기업형태로 재편성되거나 재결합하는 것이다.

미쓰비시의 경우, 미쓰비시상사가 부활하고, 신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일본중공업·미쓰비시조선은 1964년 합병해 다시 ‘미쓰비시중공업’이 된다. 미쓰비시제강·미쓰비시강재도 같은 해에 합병돼 ‘미쓰비시제강’으로 다시 출범한다. 이 미쓰비시그룹은 현재 미쓰비시 상사, 미쓰비시 중공업 등이 속해 있는 가장 결속력이 강한 일본의 기업집단이다.

GHQ에 의한 일본재벌 해체는 일본의 경제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일본의 기업집단은 1947년에 제정된 독점금지법이 순수 지주회사를 금지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주주가 없는 상호주식보유를 통해 기업집단을 형성했다. 재벌이 수직적인 피라미드 형태의 소유·지배가 이루어졌다면, 기업집단의 형태는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형태다. 경제력과 소유까지도 특정의 개인 및 그 가족에게 집중돼 있는 한국의 재벌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은 재벌 총수가 경영까지도 장악하는 반면, 일본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임하고 있다.

기업지배 구조가 다른 일본의 재벌과 한국의 재벌. 일본에선 전쟁을 거친 후 미군정에 의해 재벌이 해체된 반면, 한국에선 일제 패망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로부터 일제가 남긴 재산(적산)을 헐값에 불하받은 자본가들, 그들은 이후 재벌을 형성하며 현재까지도 동족, 혈연관계로 계열사를 거느리며 거대기업과 자본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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