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1)

한국경제문제가 초미의 화두로 등장했다.
수출주도재벌중심경제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고, 이를 해결해보려는 문재인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이 잘 먹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뉴노말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고, 중미무역전쟁 등 세계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3대 신성장산업으로 비메모리반도체, 수소경제, 바이오산업으로 설정하고 삼성, 현대 등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재별체제개혁이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4.27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시대에 대한 기대는 높으나 이 시대적 요구에 맞는 한국경제체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논의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국경제의 출로와 방향은 어디인가?
이에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이라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중 첫째편 <경제민주화의 다양한 접근방식>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1편 경제민주화의 다양한 접근방식
1.경제민주화에 대한 4가지 접근방식
2.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
3.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
4.자주적 경제민주화 사례

 

18·19대 대선과, 19·20대 총선을 거치며 경제민주화문제가 최대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촛불혁명 이후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더 높아졌다. 촛불혁명이 폭발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박근혜정부의 독재회귀와 국정농단에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헬조선사회”, 즉 1:99로 초양극화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터진 것이다. 촛불정부라면 마땅히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촛볼혁명의 요구인 소득주도를 통한 민생안정,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혁정책이 실종되고 후퇴하는 모습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이 시점에서 촛불혁명의 과제를 다시금 되살리고 개혁정책방향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중 경제민주화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전문적인 글은 아니다. 향후 풍부한 연구를 위한 시론적 접근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경제문제 = 경제민주화문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여기서는 크게 시장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4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경제민주화 무용론,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이다.

경제민주화 무용론
경제민주화 무용론은 내용상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론이다.
고전파, 신고전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계보를 잇는 이들의 주장은 시장만능주의, 시장제일주의를 주장한다. 사적 소유, 개인의 자유,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절대화한다. 이들이 시장을 절대화하는 이유는 정치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경제영역에서의 민주주의로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개입이 없는 시장에서는 자유로운 경쟁과 약탈이 가능하다. 그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논리가 핵심이다.
한국의 경우 이들은 ‘국제화’, ‘세계화’, ‘선진화’를 앞세우며, 개혁이미지까지 분장하고 나타났다. 과거 박정희식 국가주도 재벌경제가 가지는 정경유착, 관치경제를 극복하고 민간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의 개입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규제완화’, ‘규제철폐’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짖는다. 이들이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쓸 때조차도 그 의미는 이승훈 교수의 주장대로 “한국경제의 현주소에서 필요한 경제민주화는 ‘자율화’와 적정한 사회복지 제도가 보완하는 ‘자유화’”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은 IMF이후 정치민주화에 상응하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했던 시절, 미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의 수입에 앞장섰다. 오늘날 양극화,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에 있다. 이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의 파산을 선고한 2008년 금융공황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경제민주화무용론으로 나타난다. 
경제민주화무용론의 대표적 이론집단은 한국경제연구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2년에 출간된 <경제민주화의 함정>을 통해,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부정적‧비판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같은 책에서 주장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 경제에서 다수결을 강제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 둘째, 유럽사민주의에서 썼던 경제민주화 개념은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주장, 셋째, 경제민주화 개념이 유의미하다 할지라도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 등이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의 길은 공정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철학적으로 시장을 중시한다는 입장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들과 공유하는 지점이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해치는 행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내에서 거대기업의 독점과 횡포로 인해 시장이 자율조절기능이 상실한다면 이를 시정하여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 핵심이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반독점, 재벌개혁에 대한 일관되고 강한 입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속한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취하는 정책방향은 주로 독점의 해체, 약화에 집중된다. 때문에 이들 진영내에서 재벌독점의 해체, 약화를 강력하게 하느냐 타협적으로 하느냐 하는 방법론상 쟁점이 형성된다. 독점방지의 대상과 영역이 기업인가, 자본, 금융 등 시장전체인가 문제, 그리고 그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이런 문제들은 방법론상의 문제에 불과하고, 근본지향점은 결국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있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 일본, 이스라엘이다. 미국은 강력한 반독점법을 시행하여 록펠러 등 재벌을 해체하였다. 일본은 45년 미군정이 일본재벌을 해체하였다. 이스라엘은 2011년 30만 항쟁을 겪고 나서 재벌개혁을 단행했다. 그런데 과연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가 독점자본의 시장독재를 막아냈는지는 의문이다. 재벌개혁의 경험을 했던 지금의 미국, 일본, 이스라엘 경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할 이유이다.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의 길은 조절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시장의 해방을 주장한다면,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시장을 의심한다. 시장 자체가 독과점의 온상이며, 독점발생이 필연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시장이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아예 없앨 수는 없고 시장지배자와 타협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노동, 시민사회의 힘, 정부의 역할을 높여 시장을 조절통제하고 복지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시행방안은 공동결정제, 사회적 협약, 정부의 개입 등이다. 
사실 경제민주화론의 원조는 사회민주주의이다. 경제민주화론은 1928년 독일일반노동조합연맹(ADGB) 연구소장인 프리츠 나프탈리(Fritz Naphtali)의 경제민주화 보고서를 통해 만들어졌다. 서구의 경제민주화논의는 주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등 기업·경제 운용 과정에서 노사의 대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하였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의 주창자는 정승일 새사연 연구이사, 이병천 강원대 교수 등이 있다. 정승일 교수는 재벌과의 타협을 주장한 반면, 이병천 교수는 강한 재벌개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장하준 교수의 경우에는 규제되지 않은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과 폭로에 기여하였으나 정통사민주의적 시각보다는 경제성장, 산업정책, 복지 등의 요소를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적으로 분류된다.
사회민주주의적 경제민주화는 스웨덴 노사정 모델이나 독일의 라인모델이 대표적이다.

자주적 경제민주화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과 약탈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독립과 정치민주화 이후에 진행된다. 또한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로 인한 빈곤의 높을 헤쳐나오기 위해 국가적 수준에서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강력한 대중운동을 결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나라에서 경제민주화문제는 경제자주화와 경제성장 등의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경제자주화의 핵심은 자원과 주요생산수단에 대한 국유화 조치이다. 이에 기반하여 자립경제, 수입대체산업 등의 전략을 채택했으나 제국주의의 간섭과 방해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재식민지화의 길을 걷기도 한다. 주요 남미국들이나 리비아 등의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반제혁명으로 제국주의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강력하게 자주자립의 길을 걷고자 하는 나라들은 예외없이 제국주의의 경제제재와 봉쇄를 극복해야 하는 심각한 투쟁을 동반하게 된다. 석유부국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 침략에 맞서야 하는 이란과 베네주엘라 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편 구식민지에서 벗어난 경제성장에서 성공한 경우는 오히려 한국처럼 제국주의의 하부경제에 예속되어 수출주도성장전략을 채택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는 경제주권과 경제민주화문제를 풀지 못하였다. 때문에 양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이 노동자민중의 몫으로 가지 못하고 제국주의의 경제약탈과 소수 친제국주의세력의 몫으로 돌아간다. GDP규모 세계 12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수준이 48위에 머물고 1:99의 양극화 사회로 전락한 구조적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좌충우돌하는 조건에서 경제민주화를 향한 민의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우선 경제민주화무용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해 문재인 정부안팎에서 혁신성장론을 주도하며, 재벌경제의 부활을 꿈꾸는 시도들을 차단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에서는 재벌체제개혁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많은 분석과 연구성과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재벌문제로만 국한시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기본권 강화, 을들의 연대, 민중의 참여, 민중의 대중운동 등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노동시민사회의 힘을 키우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다가오는 평화번영의 시대는 자주적 경제민주화 시각에서 경제민주화 문제를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다시금 촛불혁명의 정신으로 다양한 논의와 실천들이 모이고 민의 경제민주화동맹을 형성하여 경제적폐청산과 경제대개혁을 위한 새로운 광장의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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