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행되는 민주노총 임원[사진 : 노동과 세계 제공]

억이 막힌다. 오늘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한 민주노총 임원 8명 전원이 무참하게 연행되었다. 이유인즉, 탄력근로제 확대법안과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안을 국회가 4월 3일 고용노동소위와 환노위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4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하는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동하고, 1일 국회를 찾아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과 새로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오는 5일 본회의에서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목숨걸고 개악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홍 부총리는 홍영표 원내대표와 만나 "최저임금법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관련 법이 굉장히 절실하고 절박하다"면서 "국회에서 오는 5일까지 꼭 좀 이 법을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절실하고 절박하다는 것인가. 결국 자본가 아닌가. 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과정이 사실상 시작됐다"면서 "이번 주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이 이뤄져 내년 최저임금이 새로운 결정 방식에 의해 잘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했다는데, 누구를 위해서인가. 결국 고용노동부 관료들을 위해서 아닌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탄력근로제 확대는 우리 사회에서 52시간제 근로시간 단축 입법의 안착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안착’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일 줄은 몰랐다. 또 "최저임금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논의되도록 하는 결정체계 개편을 담아 입법이 완료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는데,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객관적인가. 고용노동부 장관이면, 한쪽에서는 위험노동으로 죽어나가도 다른 한쪽에서는 100억대의 연봉잔치를 벌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용과 노동에 아무리 편파적으로 신경써도 표시도 안날텐데, 합리, 객관, 공정은 또 무슨 말인가.

홍영표 원내대표는 "산업현장에서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나 최저임금 제도 개선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 ‘산업현장’의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재벌과 자본의 목소리인가, 노동자의 목소리인가. 노동운동가 출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입에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나 쓰던 ‘산업현장’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탄력근로제만 해도 국회에서 논의만 하면 몇 시간 만에도 다 통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수차례에 걸쳐 간곡하게 호소했지만 현재까지 전혀 진전되지 않아 정말 안타깝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급한 쪽은 자유한국당이니, 그것들이 몽니 부리면 그만두면 될 일을 왜 목숨걸고 통과시키려고 하나. 그냥 놔둬도 알아서 국회에 기어들어와 통과시키자고 애걸을 할 터인데 거꾸로 누가 구걸을 하나. 배짱도 없다.

그릇된 상식 중의 하나가 자유시장경제는 평등을 훼손하나 성장과 경쟁력에 능하고,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개혁정책은 평등을 지향하나 성장에는 잼병이라는 식의 평가이다. 자유시장경제가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공황의 주범이며,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을 만드는 근본토양으로, 성장에도, 평등과 복지에도 실패를 거듭해 ‘시장의 실패’라는 저주스러운 경제학 용어가 탄생했는데, 노동자 서민의 피와 원한이 묻어 있는 말이다.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에서 성장의 정체가 발생하는 것은 반동지배계급의 저항과 사보타쥬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복지와 평등을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2차 대전 이후의 경제의 황금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왕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해야할 일이란 경제적폐세력을 청산하는 강도 높은 개혁이지 우경화와 투항, 역주행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문재인 정부는 개혁도 놓치고, 성장도 놓칠 것이며, 결국 촛불시민의 지지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민주노총 임원[사진 : 노동과 세계 제공]

탄력근로제 개악과 최저임금법 개악은 노동자 앞에 밥상 차려놓고 솥단지를 엎는 짓이다.
차라리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는 게 나았다. 최저임금을 두 번 올려놓고, 산입범위를 개악할 때만 해도 밥상차려놓고 숟가락 뺏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의 직접참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 자체를 개악하려고 하니, 촛불정신이 밝혀준 직접정치를 완성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겠다. 그러나 이미 시행되고있는 노동자의 직접 참가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훼손하려 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정신의 근본을 건드는 짓이며, 직장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길에 역행하는 일이다. 오늘 오르지 않은 임금은 내일 올리면 되고,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살아있게 된다. 그러나 결정구조 자체에서 노동자의 직접참가를 봉쇄하는 식으로 개악해 버리면, 이제 노동자들의 투쟁의 명분까지 앗아가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솥단지를 엎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솥은 놔둬야 할 게 아닌가. 정책적 시행착오를 만회하려는 것은 필요하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고 행해야 한다.

차라리 주52시간제 노동법을 폐기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지금 왜 노동시간을 단축하자고 하는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누고,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털어내고 과로사와 위험노동을 극복하자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대통령부터 휴가를 챙겨 쓰는 액션을 취한 것이고, 주52시간제는 뭐하러 시행하자고 했는가. 사용자들이 주52시간제가 임금상승을 유발하여 문제라고 한다는데,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늘리고, 임금비용을 더 내라고 시행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전에 받던 야간수당, 연장근로수당도 못 받게 생겼다. 보완책을 찾으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증가와 임금상승분에 대해 사용자측 부담과 정부지원책의 연관성을 찾아서 해결을 해야지 탄력근로제를 늘려줘 버리면 난무하던 편법과 불법이 합법화되지, 주52시간제가 어떤 식으로 안착된다는 말인가.

민주노총과 진보진영도 부족한 것이 많으니, 촛불혁명이 만들어준 지지를 2년 만에 다 까먹은 것을 굳이 탓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정도껏 해야 한다. 최저임금구조 개악안과 탄력근로제 연장안은 그 동안의 정책적 시행착오를 만회할 회심의 한 수가 될 수 없고 역풍만 불 뿐이다. 경제성장도, 명분도, 지지도 잃게될 정책을 목숨 걸고 밀어붙여야 하겠는지 정부여당은 재고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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