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제조 2025와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

세계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천문학적 부채위기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본질적으로 달러기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경제전략이다. 당연히 이에 대항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달러국채를 팔아치우고, 제재에 저항하면서 달러결제시스템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다극화된 경제질서로의 전환기에 서있다. [필자주]

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2.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향방

3. 중국제조 2025와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

4. 윤곽을 드러내는 다극화 경제질서 

1) 미중 무역전쟁 ‘정전’ 합의는 미국의 일방적 승리인가?

지난 1일 미중 정상간 90일간의 무역전쟁 정전(停戰) 합의에 대해 대부분의 서구 및 국내 언론과 소위 전문가들은 사실상 미국의 일방적 승리라고 평가하였다. 표면적으로 미국은 중국 상품에 대한 기존 10% 관세를 25%로 올리는 추가적 관세부과를 90일간 유예한 것 외에 양보한 것이 없는 반면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축소를 위해 미국 농산물 즉시 구매 및 에너지(LNG), 산업제품 등을 구매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양국은 향후 90일 동안 미국이 제기해 온 양국경제관계의 “구조적 변화(structural changes)”를 위해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적 기술이전,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입·절도 등 문제에 대해 협상을 개시하기로 하여 중국이 상당히 양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역전쟁 정전 합의 사항을 중국의 일방적 양보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일면적이다. 

사실 무역전쟁 정전 합의를 미국의 일방적 승리라고 평가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6일 <중국이 지금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이기고 있다(China is winning the trade war with America for now)>고 정반대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FT는 미 정부 통계에 의거하여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9월에 4.3%가 더 늘어난 374억 달러로 최고에 이르고, 3/4분기 전체로 보면 대중 무역적자는 106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929억 달러보다 더 늘어났다고 보도하였다. 이같은 기조는 11월에도 이어져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355억5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였던 10월의 341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FT는 이 현상을 “적으로서의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어리석음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당혹감을 토로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중간 무역전쟁 정전 합의는 미국의 전략뿐 아니라 중국의 경제발전전략에 의거한 선택의 접점으로 봐야한다. 이를 중국의 경제악화에 따른 굴복의 결과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미국 위주의 시각이자 미국의 승리를 기대하는 주관적 희망 이상이 아니다. 

이번 미중 무역전쟁 정전 합의는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단지 양국간 무역 불균형 해소차원만이 아니라 세계경제패권 유지를 위해 위안화의 달러체제 도전 및 ‘중국제조 2025’와 같은 첨단기술분야에 도전하는 중국의 경제굴기를 억누르려는 것이다. 미국이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적 기술이전 등을 문제 삼고, 5G 기술의 선두주자인 화웨이 제품의 사용 중단을 자국은 물론 동맹국에게도 강요하고 CFO이자 창업자의 딸인 멍완저우를 체포한 배경이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이 서구의 하청공장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 미국과 대등한 경제적 지위에 올라서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합의는 중국이 미국과의 긴장고조와 확전을 피하면서 자국의 야심찬 경제굴기 전략인 ‘중국제조 2025’와 ‘일대일로’ 전략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일정한 타협을 도모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위안화를 달러와 같은 국제적 통화로서 확고히 하기 위해 요구되는 위안화 가치의 상승과 안정성 유지를 위해 무역전쟁의 격화를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위안화 가치하락을 용인하여 무역 흑자는 유지하였지만 가치의 안정성은 유지하지 못했다. 이번의 정전 합의로 위안화 가치는 단번에 상승하여 안정성 회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2) 위안화 약세와 미 국채 매각

지난 6개월여 동안 미국의 관세부과 공세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격은 ▲위안화 약세 용인과 ▲미 국채 매각이다. 위안화 약세 용인은 미국이 중국의 대미 수출품 2500억 달러에 10%의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한 직접적 대응방안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금리인상에 의한 달러강세•위안화 약세 흐름을 달러당 7위안 밑으로 하락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용인하였다. 그 결과 위안화의 대달러 환율은 지난 6월초 달러당 6.38위안에서 지난 10월 말에는 6.97위안까지 약 10%가 하락하였다. 미국이 부과한 10% 관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의 수입업자는 관세부과 이전과 거의 같은 가격에 중국제품을 들여왔던 것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지 않고 무역흑자가 유지된 원인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미국이 관세를 25%로 올리면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추가 관세에 따른 위안화의 추가 하락은 위안화 신용과 국제화 전략을 위태롭게 할 것이고, 그렇다고 위안화 가치를 유지하려 하면 실제 대미 수출에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Sputniknews)는 <중국, 무역전쟁에서 큰 총알을 피하고 체면을 지키다(China Dodged a Big Bullet, Saved Face in Trade War)>는 기사에서 “중국 무역당국이 트럼프 보다 오히려 이번 정전 합의에 더 행복해 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일반적인 국내외 언론의 평가와 달리 중국이 정전 합의를 통해 얻은 성과다.

다른 하나는 중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로 미 국채를 매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 1위의 미 국채 보유국 지위를 내준 것은 아니나 미 정부를 놀라게 한 것은 분명하다. 미 재무부가 17일 발표한 ‘미 국채 해외보유 현황’에 따르면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5개월 연속 감소하여 8월의 1조1700억 달러에서 9월 1조1510억 달러, 10월 1조1400억 달러(1280조원)로 나타났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켜 인도, 터키는 물론 친미 일변도인 일본마저 매각 대열에 동참시켰다. 그 결과 10월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는 3%이상으로 치솟고 증시는 대폭락하였다. 미 국채 매각은 가뜩이나 양적완화의 한계로 위태로운 미 금융계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이 보유한 미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수단이다. 만약 향후 미국이 관세를 추가로 올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그에 따라 중국의 미 국채 매입도 줄어든다. 미 국채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팔리는데 중국이 미 국채를 사지 않게 되면 다른 나라도 사지 않게 되어 결국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해 금융위기를 일으킨다. 미국으로서도 중국과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중국제조 2025’- 경제굴기의 정점

그럼에도 미국이, 자신이 만든 무역질서를 깨면서까지 거칠게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그간 중국은 막대한 경상이익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부를 쌓아 미 국채의 최다보유자가 되었고, 더불어 군사력을 강화하여 남중국해 일대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미국에게 태평양을 반분(半分)하자는 소위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시진핑 정부 들어서 중국은 ‘대국굴기(大國屈起)’의 기치로 중국식 패권전략인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천명하고 나아가 위안화 국제화를 내세워 역외위안화시장 개장은 물론 지난 3월 위안화 원유선물시장까지 개설하였다. 중국은 세계최대의 원유 수입국이다. 미국이 금본위를 폐기하면서도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75년 당시 세계최대 원유수입국으로서 최대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합의해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시장 개설을 시작으로 오직 달러로만 원유결제를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소위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위안화가 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미국이 경제패권 유지에 심대한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번에 부각된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통화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첨단분야에서도 선두에 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시진핑 주석이 2015년 발표한 이 전략은 중국이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산업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2025년까지 달성해야 할 제1단계 전략이다. 인공지능(AI), 우주산업,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공학과 신소재 등 10대 전략산업을 선정해 이 분야 산업기술 경쟁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막대한 자금으로 유라시아를 축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까지를 포괄하는 중국경제권 확보전략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중국은 저임금에 기반해 미국과 유럽의 하청 생산기지로 기능하는 기존 ‘세계의 공장’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처럼 첨단산업의 명맥을 쥐고(중국제조 2025), 자체의 경제권역(일대일로)을 통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한 중국식 경제패권을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사실상 미국의 세계경제패권을 허무는 전략이다. 이미 미 국방부는 지난 10월 공개한 ‘제조업·군수 분야 중국 위협 분석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로보틱스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뺏기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중국제조 2025’의 이런 성격은 중국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국 산업계를 부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국 내수시장을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소강’(小康)사회 실현 노선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 전략을 자유경쟁을 저해하는 부당한 산업정책이자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첨단기술을 도용하는 정책으로 간주해 무역전쟁을 일으킨 주요 명분으로 삼았다. 아직 ‘세계의 하청공장’으로서 미국으로 가는 수출품이 많은 중국으로서는 이 징벌관세로 당장 타격을 받지만 2025년까지 중기적 상황을 보면 이런 상황은 오히려 자신의 전략 실현을 가속화시키는 호기다. 미국의 의회전문지 더 힐(The Hill)은 “무역전쟁은 중국경제의 진화를 더 촉진하고 있다”(Trade war expediting the evolution of China's economy)고 보도하였다. 이를 위해 중국이 내건 기치가 ‘자력갱생(自力更生)’이다.

4) 자력갱생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진핑 주석은 지난 9월 건국 초기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동북3성을 방문하여 “일방주의와 무역보호주의가 증가하면서 중국을 자력갱생의 길로 몰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며 “중국은 결국 스스로 의지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또한 10월에는 제2의 남순강화라는 광동성을 방문하여 “제조업의 핵심은 혁신이고, 중요 핵심 기술을 장악하고 반드시 자력갱생에 의존해 분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첨단기술(중국제조 2025)을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이뤄내겠다는 포고다. 특히 18일 시진핑 주석의 ‘개혁개방 40주년 대회’ 연설은 과거와 달리 “당·정부·군대·민간·학계, 동·서·남·북·중,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사회주의 건설원칙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자력갱생의 의미는 더 분명해졌다.

중국이 다시 내세운 자력갱생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원칙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자력갱생은 북한(조선)의 사례에서 보듯 뿌리가 깊다. 자력갱생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당의 영도에 의거해 ▲국가에 의한 자원의 집중과 배분 ▲이에 맞는 산업체계 재편 ▲인민의 자주적 참여와 지지를 요구한다. 국진민퇴(國進民退: 민영 기업을 서서히 퇴장시키고, 국영부문<공사(公社) 혼합소유제 기업> 역할을 늘린다)와 민간기업에 당위원회 설치, 직원들의 기업운영 참여 등이 제기된 것은 이 일환이다. 사실 북한(조선)과 달리 자본주의적 민간기업과 개인영농 비중이 높은 조건에서 이같은 원칙을 실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국진민퇴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민간기업의 정부 참여(인수)를 비롯해 국영자동차 3사 합병으로 연간 1,000만대 양산능력을 갖춘 거대 국영자동차 회사 설립 준비, 국영 석탄회사와 전력회사를 합병하여 거대 에너지 국영기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이 주도하는 국가 역할 강화와 산업체계 재편을 통한 경제의 자립성(자력갱생) 강화 조치를 목적의식적으로 진행 중인 것이다.

이렇듯 미중간 무역전쟁은 본질적으로 세계경제패권을 놓고 다투는 대결이기에 이번의 정전 합의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은 경제굴기 전략실현을 위해 안정된 여건 마련을 필요로 하고, 미국 역시 지나친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증시 폭락사태에서 보듯 더 심한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에 정전 합의를 통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투데이(RT)는 “중국은 미국 경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을 공급하고, 많은 미 국채를 보유하고, 또 많은 돈을 빌려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연주하면 우리는 춤 출수밖에 없을 것이다”(After instigating trade war America will have to dance to China’s tune)라는 미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하였다. 한마디로 무역전쟁은 미국이 시작하였지만 칼자루는 중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은 미국의 거친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하여 정전을 지속하면서도(물론 언제든 깨질 수 있지만), 다른 한편 북한(조선)과 러시아 등 미국의 일방 패권에 반대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목표로 한 2025년 이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내오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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