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천문학적 부채위기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본질적으로 달러기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경제전략이다. 당연히 이에 대항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달러국채를 팔아치우고, 제재에 저항하면서 달러결제시스템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다극화된 경제질서로의 전환기에 서있다. [필자주] 

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2.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향방

3. 윤곽을 드러내는 다극화 경제질서 

1.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지난 9월말 이래 미국 국채금리가 심리적 저지선이던 3%를 넘어 3.25%로 급격히 상승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지난 10, 11일 미 증권시장이 대폭락하자 지난 수년간 제기되어 왔던 거품붕괴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 공화당 의원 론폴(Ron Paul)은 지난 7일 미국의 CNBC방송에서 지금의 미국 금융상황을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bubble)”이라고 지적하고 내년 어느 시점에 미 주식시장이 50%이상 폭락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것은 막을 수 없다”고까지 비관적 전망을 하였다. 이런 전망은 비단 론폴만이 아니다. 유로퍼시픽캐피털의 CEO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피터 쉬프(Peter Schiff)등 상당수 경제전문가들 역시 현 상황을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로 만들어진 사상최대 금융거품의 말기로 조만간 거대한 거품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이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붕괴된 채권,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연명시키기 위해 미 연준(Fed)이 주도한 양적완화(Quantity Easing. QE) 정책의 결과로 어마어마하게 부풀려진 채권과 파생상품의 거품을 말한다.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양적완화는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이 국채나 회사채 등 각종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대량 찍어내 공급해온 정책으로 현재까지 10년간 13조 달러(약 1경4천조 원)가 증쇄됐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리먼브라더스 붕괴 이후 5년간의 양적완화로 4조5천억 달러(약 5천조 원)를 증쇄하고, 제로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주입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연방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기축통화로서의 신용 상실이 우려되자 2014년 가을 미 연준은 양적완화를 중단하면서 동맹국인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에 양적완화를 위임했고,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현재까지 8조5천억 달러(약 9천조 원)를 증쇄해 공급했다. 미국이 달러의 기축성 유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는데 유럽과 일본은 달러기축체제를 떠받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한 것이다. 

이런 부채기반의 양적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자 미 정부는 경제회복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가시적 실적 호조에 집착해 시간이 걸리는 생산영역 투자보다 단기적 금융차익에 집중하여, 실물경기는 회복되지 않은 채 채권, 주식시장만 과열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연출됐다. 그 결과 이제 세계 채권의 시가 총액은 100조 달러에 이르고, 채권 관련 파생상품 총액은 그의 5배가 넘는 550조 달러(약 60경원)에 이르게 됐다. 세계 GDP 총액보다 무려 7배나 더 많은 것이다. 또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부채는 247조 달러(약 27경6천조 원)에 달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부채의 거품이자 바벨탑이다. 누구도 이 많은 부채를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달러체제는 역사상 최대의 거품, 최고의 공황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양적완화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JP모건조차 “위기가 닥치면 지난 5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주식시장 붕괴와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일 IMF도 ‘세계 부채가 2008년 이상으로 쌓이고, 은행시스템 개혁의 실패가 세계공황을 촉발할 수 있다’고 빨간불을 켰다. 이제 영미식 세계 자본주의는 마지막 지점에서 그 탐욕과 기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해 빚더미로 하늘에 닿으려는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2.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2008년 금융위기로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한 정책인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지만, 그 달콤한 열매에 중독된 금융독점자본은 반성은커녕 더욱 더 자기들만의 천국을 위한 탐욕의 질주를 계속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높아진 은행과 금융시스템 개혁요구에 허울뿐인 규제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했지만 이마저도 트럼프 정부는 폐기하려 하고 있다. 사실 무엇 하나 개선된 것은 없었다. 지난 10년간 미 연준에 모여 앉은 이들은 금융위기에 의한 유동성 부족을 명분으로 부채를 담보로 한 현금을 수혈 받아 더욱더 많은 부를 쌓아올렸고, 이로부터 소외된 일반대중의 가난은 더 심화되었다. 그 결과 세계는 슈퍼리치 8명이 세계 인구 절반의 부를 소유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불평등 세계가 됐다. 

이런 상황은 대중의 강력한 분노를 낳았고,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부채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달러체제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비롯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의 반EU 정권 등장,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 반EU 정치세력 강화 등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새로운 정치현상은 모두 누적된 불평등한 사회경제정책과 금융독점자본의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들의 달러 국채 매각, 금 보유의 확대, 석유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 내지 위안화, 유로화 결제 확대, 달러를 배제한 새 금융결제시스템 구축 시도 등은 모두 달러기축체제의 붕괴를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와 대부분 주류언론들(국내 언론 포함)은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마치 양적완화가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경제를 살린 것처럼 호도한다. 미 정부는 주식시장의 활황을 내세워 경제가 살아나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소비력이 증대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월 “미국 식료품 체인의 연속된 파산은 ‘소매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듯이 미국은 식품은 물론 백화점, 전자부품, 완구 등 대형 소매체인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있다. 132년 된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 시어스, 70년 된 장난감 회사 토이저러스, 대표적 식료품체인 톱스마케츠 등 최근 2~3년 동안 30여개의 전통적인 소매 대기업들이 문을 닫은 것은 소비력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단적인 예다. 주류언론들은 이를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란 식으로 평가하지만, 이런 평가는 마치 한국의 롯데, 현대백화점이 네이버 쇼핑몰에 밀려 무너졌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이런 분석은 미국의 실물경기 실상을 가리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양적완화는 소수의 금융독점세력과 군산복합세력들이 탐욕과 이익을 위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극한으로 남용해 세계경제를 헤어날 수 없는 부채와 금융위기의 늪으로 빠뜨린 결정적 정책이다. 이들은 이를 분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선전하고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활황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물경기가 받쳐주지 않은 조건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중단되거나 감소된다면 시장의 붕괴는 불가피하다. 양적완화가 중단된다면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 금리인상, 무역전쟁,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부채의 무한증대는 불가능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자체도 양적완화를 5년 만에 중단했듯이 유럽과 일본의 양적완화 역시 그들 경제의 건전성을 심각히 훼손하기에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연합은 적”이란 발언과 일본에게도 ‘환율협상’을 요구한 것처럼 유럽, 일본과의 관계가 더 이상 동맹이 아닌 경쟁상대로 여겨진 조건에서 EU와 일본이 계속 미국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해 헌신할 리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지난 6월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일본 역시 내년 중에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 중단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달러체제를 유지하고 자국 주식시장의 활황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제조업 육성 등을 위해 시행하는 비상한 조치가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확대다. 금리인상이 양적완화와 제로금리와 따른 달러의 신용 상실을 회복하여 기축체제를 유지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달러를 미국으로 모아 주가를 받치기 위한 직접적 수단이라면 무역전쟁과 경제제재는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신흥국과 EU까지도 저울질하고 있는 달러 배제의 새로운 국제통화체제, 다극화된 경제질서 준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들 세 정책은 각기 고유의 특성이 있지만 모두 위기에 처한 달러기축체제 유지를 공통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돼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론 미국의 패권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해당국의 반발을 불러와 달러기축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 무력을 앞세워 달러로만 석유대금을 결제케 했던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체제에선 이런 압박정책이 해당국을 순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미국의 핵무력이 압도적이지 않고 달러체제 역시 천문학적 부채로 위태로운 조건에서는 제재와 압박이 되레 해당국들의 단결을 촉진시켜 달러를 배제하는 다극화된 경제질서를 앞당기는 명분이 된다.

전후 70년을 유지해온 달러를 축으로 한 세계경제질서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정치, 군사적 측면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 겨울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준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긴 혹독한 추위로 이어질지는 향후 몇 년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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