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바로보는 키워드 1

역사적인 4.27 판문점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9월 평양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시대적 흐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말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북의 사상과 제도, 체제와 최고지도자에 대한 이해는 허위 왜곡의 악영향과 적대와 대결의식이 낳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역사상 처음으로 북의 최고지도자가 서울에 온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의 이행을 바란다면 평양 시민들의 수십만의 연도 환영과 5.1경기장 15만 군중의 열렬한 환호에 버금가는 환영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는 것 만큼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지금의 이해정도로는 이런 환영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연재는 판문점시대와 서울방문에 맞게 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필자주]

1. 병상의 긴급회동

2000년 4월 1일 일본국 총리대신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가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1998년에 일본국 85대 총리가 되었던 그는 뇌경색으로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일본 내각 장관들과 집권 자민당 유력인사들이 급히 오부치의 병실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논의를 거친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말은 차기 총리를 누구로 정할 지를 정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부치 게이조의 상태가 회복불가능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총리가 의식불명상태인 것은 국가최고결정권자의 공백이므로 이를 한시바삐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부와 집권여당의 의무인 것도 맞다.

오부치 게이조의 병상에 모인 자민당 파벌의 두목들이 나름대로 슬픈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속은 후임 총리를 누구로 해야 자기에게 유리한가를 계산하기만 바빴던 것이다. 그들은 생사를 오가는 상태에 있는 총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한 동안 총리 권한대행을 둘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일본은 총리가 쓰러진 당일에, 병석에 누워있는 그를 곁에 두고 후임자 선정을 하는 비정한 일을 벌였던 것이다. 총리직을 놓고 벌이는 파벌간의 암투속에 오부치 게이조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총리직을 떼였다.

그들의 합의에 따라 모리 요시로(森 喜朗)가 2000년 4월 5일 86대 총리대신이 되었다. 오부치 게이조가 쓰러진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부치 게이초는 모리 요시로가 총리자리에 앉은 때로부터 한달이 휠씬 지난 5월 14일에 사망하였다.

이 사례는 권력을 추구하는 서구식 정치의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서구식 민주주의가 가진 이런 성격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2. 서구식 정치의 기본 수단

‘차별화’는 그 중 대표적인 것이다. ‘차별화’는 새로 권력을 쥔 자가 자신이 전임자와 다르다는 것을 부각하는 정치 행위와 방법을 말한다.

‘차별화’는 서구식 정치에서 권력을 움켜쥐는 기본적인 수단으로 되어있다. 빌 클린턴에 이어 미합중국의 43대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는 새정부의 정책원칙을 ABC라고 공언했다. Anything But Clinton(모든 것을 클린턴과 반대로)의 머리글자를 딴 것인데 이런 행위는 ‘차별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선명한 이름을 달지는 않았지만 클린턴과 그의 전임자들도 이런 수법을 사용한데서 별반 다르지 않았고, 부시의 뒤를 이은 버락 오바마나 도널드 트럼프도 마찬가지였다.

집권자가 교체되었으니 정책이 달라지는게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권력을 물려받거나 같은 집단이 연이어 정권을 쥔 경우에도 후임자는 전임자와 차별화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박근혜가 전임 이명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가까운 예다. 전두환에게서 정권을 넘겨받은 ‘신군부 쿠데타의 공범’ 노태우도 자기가 전두환과 다르다고 억지를 부리느라 고생 꽤나 하였다.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탈린-후르시초프-브레즈네프-고르바초프로 이어지는 구소련과 마오쩌둥-화궈퍼-(등사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중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당과 정부의 연속성을 중시하며, 후임자의 결정에 전임자의 뜻이 크게 작용하는 사회주의나라의 권력승계과정에서도 ‘차별화’는 반드시 있어왔다.

이런 ‘차별화’ 수작은 ‘다름’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전임자를 ‘부정’하는데 이른다. 전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최고권력자의 지위를 제대로 누릴 수 없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강박감 때문이다.

그래서 전임자의 인기가 높을수록, 전임자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두터울수록 후임자는 차별화에 성공하기 위해 더 애를 쓴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길에 동행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3. 북의 후계자 결정과정

북의 최고지도자 후임자 결정 방식과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북에서는 ‘후계문제는 수령이 해결하는 일’로 간주된다. 물론 이 일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때가 되면 다음 세대 인물중에서 후계자로 삼을 만한 사람들을 선정하고 육성하는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필요한때가 되면 적임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을 최고지도자가 후계자로 선정하고 당과 국가기관의 선출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뒤에는 최고지도자의 당사업과 국정을 보좌한다.

북의 전임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이 과정이 있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인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2세가 되던 1964년경에 후계자로 선정되었으며 1970년경에 김일성 주석의 당사업과 국정을 보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2세였던 1974년에 후계자로 공식 결정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세 즈음에 김일성군사종합학교에 입학하여 후계자 양성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2008년경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사업과 국정보좌를 시작하였으며 20대 후반이던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후계자로 공식 결정되었다.

후계자 결정으로부터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20년넘게 결렸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우 2년 남짓한 기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지고 차이가 있다는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승계사유의 발생 시점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결정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한국사회의 일부에서 ‘3대세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세습’이라고 비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자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이념공세가 거세게 일었다.

▲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 길에 동행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4. 제도의 형식과 격

선거제도는 현시대의 보편적인 제도로 되어있다. 하지만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1인 1표의 투표에 의해 선출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천하의 사기꾼 이명박이나 유체이탈의 무능자 박근혜가 대통령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선거에 의해 국가최고권력자를 뽑는 제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은 기괴한 사례를 들지 않아도 서구식자본주의의 선거는 천문학적인 선거비용을 쏟아부어야 하고, 사실과 관계없는 이미지 만들기를 주요 수단으로 삼게 된다. 여기에 댓글조작같은 권력기관의 개입까지 벌어지면 그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이다. 멀쩡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더 어렵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북의 후계자 결정에서 집단적, 군중적 의사가 작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정과정에서 최고지도자의 의사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육성과정에 당과 국가의 주요 책임자들의 의사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보좌기간에 인민들속에서 나오는 반향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다시말해 나름대로 대중적, 국가적 의사가 반영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국가수반으로 선출되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북의 의사반영의 정도가 서구식 선거제도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김일성주석, 김정일총비서, 김정은국무위원장이 같은 혈통이라는 점을 가지고 ‘세습제도’라고 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은 주장이다.

돈과 권력을 극소수의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사회에서는 ‘금수저’ 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북에서는 혈통이 같다는 사실은 더 탁월한 능력을 가질 수 있고 더 많은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이 사후 3년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훈통치’라는 것을 하였다. 국가의 최고직위자를 김일성 주석으로 그대로 둔 것이었다.

3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국가 주석자리를 김일성 주석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 정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조선로동당 총비서, 국방위원장’이라 하며 그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지 않았다.

병석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는 현직 총리 옆에서 차기 총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벌이고, 의식불명상태인 그에게서 총리직에서 떼어내는 식의 정치와는 격이 다르다하지 않을 수 없다.

5. 동반자가 지녀야 할 자세

‘북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겠지만 백성의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7월 19일 아프리카 순방중이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빌라 로사 켐핀스키 호텔에서 개최한 동포 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낙연 총리는 ‘모처럼 마련된 평화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했겠지만 한 나라의 국무총리, 판문점시대의 행정부 책임자로서는 참으로 무지하고 경솔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4.27판문점정상회담 이후 한국의 언론 등에서는 ‘북이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사실을 따져보면 달라진 것은 북미간의 힘의 균형이고 한반도 정세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북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되고 비뚤어진 생각이 달라졌고 더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북의 변화’만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기레기습성이라 할 수 있다.

북에서는 평화와 관계개선을 향한 오늘의 역사적 격변과 눈부신 경제건설은 ‘선대수령’이 이룩해놓은 업적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은 북의 고위간부일수록 더 확고하지만 인민들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임 최고지도자와 ‘다르다’고 부각하려는 것은 북으로서는 ‘선대수령을 모독하는 일’로 여기게 된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북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통일을 향해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판문점선언 시대와 정신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북의 정치에 ‘차별화’는 없다. 북의 체제에서 차별화는 ‘최고존엄모독’일 뿐이다. 북의 인민들은 서구식 정치에나 있는 ‘차별화’를 가지고 자신의 최고지도자를 묘사하려는 사람들을 관계개선과 평화정착과정에서 손잡고 나갈 대상으로 생각할지는 모르나, 통일조국의 동반자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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