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바로보는 키워드 3

1. 북에는 없는 것

 ‘자유와 인권’, 70년대식 반공교육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올 것이다. ‘탈북자’, 좀 엉뚱하긴 하지만 기발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남에는 있는데 북에는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친일파’,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정답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에서는 친일파, 부와 권력을 쥔 친일파(또는 그 후예들)를 찾아 볼 수 없다. 해방 후 일제의 식민지배에 부역했던 자들이 권력을 쥔 남쪽과 달리 북에서는 민족반역자들을 철저히 청산했기 때문이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은 ‘식민지시절에 친일 안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핏대를 세우지만 일제에 빌붙어 산 자들은 전체 조선 사람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 1만명가량밖에 안되는 이들을 청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제 식민지배자들이 보장해준 그들이 가진 토지와 재산, 권력이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8선이남에서 미군정이 이들을 경찰과 군대, 정부에 다시 등용하자 곧바로 독립운동가들을 밀어내고 나라의 주인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북에서는 친일매국을 한 자들에게는 농민과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정도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였다. 피선거권 등을 제한하여 이들이 권력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요새말로 하자면 친일파들의 ‘인권’을 ‘탄압’한 것이었다.

이같은 민족반역자 청산을 견뎌내지 못한 친일파 중 상당수가 해방 직후 38선을 넘거나 한국전쟁때 피난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북에서는 친일파가 사회적 세력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북은 외세의 지배를 받은 나라중에서 민족반역자청산을 가장 깨끗하게 한 나라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2. 사회주의

모바일서비스로 승객과 운송 차량을 연결해 주는 우버택시가 신종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기존 택시업계에서는 자가용의 불법영업이 성행하고 있다며 반발이 크다.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얼마전 언론 토론에서 자기 나라에서 우버택시 제도가 발전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중국의 관계자는 ‘기존 업계의 반발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인민을 위한 시책인 당과 국가의 정책에 불만이 있을 리 없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사회주의냐?’

중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식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나라에 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들 나라들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은 ‘자신들이 사회주의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이 사회주의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당이 정부와 사회의 상위에 있는 일당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의 정권을 표방하는 당의 배타적 지배’는 사회주의제도의 근간이다. 물론 이는 일부 사람의 입장에서는 ‘독재’다.

북에서 친일파청산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독재체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친일파들에게 당시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힘만큼의 ‘민주적인’ 정치적 지분과 권리를 부여했다면 친일파 청산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에서는 친일파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고 힘을 박탈하였다.

3. 경제 형편과 지지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경제사정이 나빠지면 집권자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정권의 힘이 약화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해서 80%에 이르는 국정지지도를 누렸던 정부도 최근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지지도가 50%밑으로 떨어질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북에서는 경제사정이 악화된 탓에 정권에 대한 지지가 낮아졌다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식량난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90년대말의 고난의 행군시기때, 국방력을 강화하느라 경제건설을 지체시켜야 했던 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가중되는 제재 때문에 갖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민심이 정권에서 떠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붕괴론을 신앙으로 여기는 일부 사람들의 근거없는 주장과 탈북자들의 과장된 이야기를 빼면 북은 ‘어려울수록 더 단단히 뭉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북 사회가 독재제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북에서는 자신과 정권, 인민과 지도자를 구분하거나 대립시키지 않는다.

같은 이해관계와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면 ‘절대 다수 인민의 이익을 위한, 인민에 의한 독재’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본다면 수십번 넘게 정권이 붕괴되고도 남았을 텐데도 최고지도자와 당이 절대적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민들이 당과 지도자를 함께 고난을 헤쳐나가는 한 몸,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변하지 않는 인기

이렇게 말하면 북이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고, 어릴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은 때문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도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북에서 자본주의식 사상문화가 침습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사상교육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갖은 이미지조작으로 대통령자리까지 차지했던 박근혜도 언론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았음에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속내를 다 들키고 말았다.

세뇌로 70년 넘게 이어갈 수 있다면 그 ‘세뇌’에는 어떤 특출한 능력이 있거나 비범한 내용이 있다고 봐야 한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인 변화를 바라보는 마음 한켠은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이루려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적대정책에서 관계개선으로 선회하려는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들은 변화무쌍한 지지도에 늘 신경을 써야 하고 거기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5년 후, 또는 4년이나 8년 후 이어 들어설 다음 정부가 이런 변화를 이어나갈지도 알 수 없는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고 상당한 연속성이 보장되어 있는 북의 입장은 편하다고 할 수 있다.

북의 정치제도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매우 견고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 지지는 당대의 지도자뿐만아니라 이전의 지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개인숭배’라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흉내내기는 매우 어렵다.

5. 단합과 단결

70년대와 80년대에 국제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문명자씨는 김일성 주석이 ‘정치적 위엄’과 ‘대중적 친근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두 가지는 세계의 모든 정치인이 가지고 싶어하지만 함께 가지기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북에서는 다음 정권에서도 전임 최고지도자의 지지와 인기가 시들지 않는다. 게다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도 그에 못지 않은 지지와 인기를 가진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무지몽매함으로 가득 채우고, 강제적으로 이념을 주입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독재의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른다고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소한 이해관계에 따라 갈라서고, 이합집산하는 정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제는 지지자였지만 오늘은 반대자가 되어야 하는 계층과 계급간의 대립과 갈등이 있는 사회의 눈으로 보면 비정상적인 일이다.

지도자의 견고한 인기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지향과 이해관계로 뭉쳐질 때만 가능하다. 촛불혁명이 한창일때 현 정부가 누렸던 높은 지지도는 이를 증명해준다. 물론 이 사회적 단합과 단결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영원한 인기를 가질 수 있다.

영원한 인기를 누리는 정치, 여기에 북이 가진 힘의 근원이 있으며 온갖 고난을 이겨낸 비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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