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년 만에 재벌개혁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으로 전환

지난달 30일 정부가 ‘2018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내년 예산안과 연동된 개정안으로 향후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법 등 19개 법률로 8월말 국무회의의결을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세법개정안의 방향으로 ▲소득분배 개선 및 과세형평 제고 ▲경제 활력 제고와 지속가능 성장 ▲조세체계 합리화를 제시했다.

소득분배 개선과 과세형평 제고를 위해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의 대상과 지원금액 확대, 종합부동산세와 임대소득세의 강화가 주된 내용이다.

경제 활력 제고와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세법개정안은 고용증대 세제 청년중심 지원확대, 혁신성장 투자에 대한 가속상각,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비용 세액공제 확대 등의 내용이다.

조세체계 합리화는 발전용 유연탄과 LNG의 부담금 조정, 노후 경유차 소비세 감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세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며 내년의 경우 3조2810억 원의 세수가 감소하게 된다.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으로 인한 세수 감소규모가 2조9000억 원인 반면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통한 세수확대는 9000억 원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혁신성장 투자·R&D비용에 대한 세금감면 등으로 법인세 또한 줄어들게 된다.

세수가 감소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권 때 대규모 법인세인하와 종부세 무력화 등 부자감세 이후에 10년 만에 있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세수감소 정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재정정책 방향이다.

1/4분기 가계소득동향에서 1분위(하위 20%) 소득이 8% 줄어든 반면 5분위는 9.3% 늘어난 것에서 확인되듯이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하다.

문제는 저소득층 지원에 따른 세수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대기업,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주요 증세항목인 부동산보유세 증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공시지가가 실거래가의 60% 수준에 불과한 조건에서 공정시장가액을 90%만 반영하기로 했으며 별도합산토지에 대한 종부세 강화는 빠졌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도 재정특위가 권고한 1000만원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혁신성장 투자에 대한 상각기준 확대, 신성장동력 R&D비용 세액공제는 주로 대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저출산·고령화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해소,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을 외면한 것이다.

세법개정안과 함께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명백한 우클릭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공단에서 개최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지난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방문시 삼성전자 인도공장 준공식에 참가한 이후 대통령이 나서서 의료산업 규제완화, 인터넷은행 규제완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의료산업, 인터넷은행 규제완화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닥쳐 관철하지 못했으며 규제완화 반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김동연 부총리는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투자와 고용확대를 요청했으며 삼성은 180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에 통 큰 선물을 던져줬다.

대통령, 부총리와의 만남, 180조원 투자계획 발표를 통해 이재용은 국정농단의 공범, 파렴치한 노동탄압범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이 땅부자들에게 투기주의보를 해제시켜주었다면 이재용과의 만남은 변죽만 울리던 재벌개혁이 이제 끝났음을 선언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잇단 우경화 행보는 정권의 조급성과 경제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조급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정권의 조급성으로 인해 민주개혁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고 말해왔다. 3가지 과제는 분리된 과제가 아니라 재벌중심 경제체제를 청산하고 노동자, 소상인, 중소기업의 생존권과 창조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 공정경제=갑질규제, 혁신성장=규제완화로 이해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실현이 단시간 내에 성과가 나지 않고 고용과 경제지표가 나빠지자 규제완화를 통한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개혁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다.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지불능력의 차이로 인해 임금 양극화가 심화되었으며 경제력 집중에 의한 협상력의 차이가 이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스타트업 기업의 시장 진입과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혁신성장의 주된 장애는 우버택시처럼 기존 산업방식에 따른 규제, 사회적 수용성 등의 문제도 있지만 혁신기술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 탈취, 기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대자본의 시장 진입 등이다. 그런 점에서 혁신성장 또한 재벌개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산업 규제완화, 은산분리 규제완화는 혁신성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이자 재벌먹거리 마련에 다름 아니다.

50년 이상 이어져온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청산은 지배세력의 저항과 사회적 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근본변화를 바라는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1년 만에 재벌개혁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매우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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