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28) 방의경 : 불나무(1972)

▲ 사진 : 유튜브 화면캡처

최근 음반시장에서 LP 붐이 일고 있다. 사실 LP 붐이라고 해도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매니아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음반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리우는 방의경의 음반이다. 혹자는 ‘있다’, 혹자는 ‘없다’고 말이 오가면서 음반 한 장에 수백만 원의 고가에 거래되는 초희귀 음반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 희귀 음반이 새롭게 복각되어 그동안 음반을 살 수 없었던 매니아들은 그녀의 음악을 쉽게(?) 구해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포크 가수라고 하면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가수는 양희은이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곡을 받아 1971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포크 음반을 내고 이후 김민기의 도움으로 2집과 3집 등을 연이어 발매하면서 한국 포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러나 양희은의 데뷔앨범은 앞면은 김민기의 곡으로 뒷면은 외국 포크의 번안곡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양희은의 2집에 수록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이 곡의 작사가가 ‘방의경’이란 가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방의경은 대학 때부터 노래 잘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방의경의 노래를 들었던 당대 최고의 작고가였던 길옥윤, 이봉조 등이 자기들의 노래를 방의경이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방의경은 이러한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직접 부르길 희망했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방의경의 첫 독집 ‘내 노래 모음’이었다. ‘내 노래’라는 이름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만들어 불렀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음반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발매금지와 방송금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그의 최초 음악이었던 ‘불나무’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니란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신에 반대하다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는 노래 등이 앨범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금지의 이유였다. 

방의경은 자신이 대학시절 만들었던 노래들을 하나씩 발매할 예정이었다. 2집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하양나비’, ‘마른 풀’ 등은 당시 신문에 나왔던 인혁당 사형수를 보고 그들이 다시 돌아와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음악이었다. 2집 음반에 수록될 곡들은 1집과 더불어 녹음을 다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1집이 나오자마자 금지되자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자유가 억눌린 어두운 공간 대한민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갔다. 

가수가 없고 노래도 금지된 가수의 음반은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그 효용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의 음반을 제작하던 제작사도 더 이상 그녀의 음반을 만들지 않았고 그의 2집 음반으로 녹음된 마스터 테이프도 어디론가 분실되면서 그에게는 단 하나인 음반 몇장 만이 우리곁에 남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본인은 이 기념비적인 음반에 대해 “녹음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재킷 사진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찍은 사진을 레코드사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해 큰 애착이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음반에 담긴 맑고 아름다운 트랙들은 어두운 군사정권 시대의 빛이 되었다. 

 

최현진 담쟁이기자 단국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매체인 ‘코리아포커스’ 기자로 일했으며 통일부 부설 통일교육원의 교육위원을 맡기도 한 DMZ 기행 전문해설사다. 저서는 <아하 DMZ>, <한국사의 중심 DMZ>, <DMZ는 살아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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