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30) 윤선애 :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1991)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사회 전반에 억눌렸던 각계각층의 문제들이 봇물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육 현장은 정부 방침을 앵무새처럼 하달하는 것은 물론, 지옥같은 입시경쟁과 체벌이 일상이었고, 사학계는 비리마저도 당연시하는 풍토였다.
이처럼 비교육적인 각종 비리와 모순이 가득했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참교육’을 외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을 결성하기에 이르었다. 교육자가 노동자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는 권위적인 군사정권의 방침은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만들었고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은 학교에서 쫒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이런 활동은 전사회적인 호응을 얻었고 국제노동단체인 ILO조차도 한국 정부의 전교조 탄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은 전교조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채 탄압으로 일관했다.
하루아침에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집에서 혹은 거리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참교육’을 배우고 실천했다. 이런 노력 과정에서 탄생한 영화가 있는데 바로 1992년 발표된 ‘닫힌 교문을 열며’이다.
이 영화는 당시 정부의 심의 거부와 방해로 이전에 만든 ‘파업전야’ 포스터를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우 제작됐다. 그러나 영화를 걸어 줄 스크린은 없었고, 대학가에서 불법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경찰은 불법 상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어김없이 최루탄을 쏘며 학내로 진입했다. 그래서 영화를 상영하려는 대학 총학생회는 경찰을 막기 위해 교문을 걸어 잠그고 ‘사수대’를 꾸려야 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의 이런 수고 덕에 학교 강당에서 문을 잠그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단속한 영화였지만 거기에 나오는 사학비리와 입시경쟁 등의 모습은 요즘 드라마나 영화보다 그닥 센(?) 것도 아니었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을 연기한 정진영씨가 이 영화의 주인공 선생님 역을 맡았던 것도 지금 보면 하나의 재미다.
이렇게 어렵게 제작되고 상영된 영화 ‘닫힌교문을 열며’는 89년 같은 이름의 노래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90년대 초반은 사전심의제도 탓에 정부 시책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거나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노래나 영화는 판매 자체가 불허되던 때였다.
그래서 이른바 운동권 노래인 ‘민중가요’는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돼 불법으로 대학 총학생회나 대학가 앞 서점에서 판매되곤 했다. 그만큼 이 때 민중가요가 정식 음반으로 제작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당시 이 음반은 ‘큰빛기획’이란 기획사가 교육문화연구회와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마을’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 가수 정태춘씨 등과 함께 정식 제작해 국제음반을 통해 발표했다.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라는 음반 발매를 전후로 사전심의제도에 대한 가수들의 저항과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마을, 정태춘, 안치환씨 등의 음반이 LP로 보급됐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잠깐 나오던 이 LP들은 CD로 대체되면서 사라져버려 현재는 거의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