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35)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정치권력의 쟁취를 위해 대중을 상대로 경쟁해왔다. 두 사상의 공통점은 유권자에 대한 서비스다. 그 서비스는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고 경쟁 속에 진화하기도 한다.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노동운동과 복지 등의 분야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보수는 원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발상에 대해 가혹하고 복지나 소수자 보호 등에 인색했다. 그러나 유권자에 대한 서비스 경쟁이 집권의 관권이 되면서 서구의 보수와 진보 차이가 미세해지고 있는 추세다. 선거에 의해 집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경쟁적으로 유권자에게 영합하는 공약과 정책을 제시했고 그 결과 일부 국가는 정부재정이 바닥나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운데) 등이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청와대-헌법재판소 커넥션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서구의 보수 진보와 한국의 그것은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다. 우선 그 역사적 형성과정이 다르다. 한국에서 진보 보수의 뿌리는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진보, 보수는 특히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사상의 자유를 제한받는 한국사회에서 막힘없는 진보와 보수의 힘겨루기나 갈등은 존재하기 어려운 풍토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한계 속에서 한국적 진보 보수는 서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체질을 지니게 되었다.

남한의 보수는 조선의 지배층, 친일세력, 친미세력이 변신한 것이다. 조선이 망하면서 그 지배세력 대부분은 일본을 섬겼고 2차 대전 종전이 되자 미국을 혈맹의 상전으로 받들었다. 북한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다. 남한의 보수는 안보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도 북한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식으로 분단을 정략적, 정파적으로 이용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파면과 구속 이후 치러진 19 대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남한의 수구보수 대다수는 법치에도 철저치 않고 가치,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이나 양심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다. 물론 민족에 대한 의무감, 애착 등은 거의 전무하다.

한국의 진보는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 또는 대항적 의미를 지닌 세력으로 출발했다. 진보세력은 보수 세력이 지닌 부정적 속성과 반대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다. 진보는 보수의 치명적 약점인 친일, 친미 등 외세 의존적 성향에 비판적이고 북한과의 평화공존, 협력을 추구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권은 박근혜의 집권 기반이었던 정당을 보수, 거대야당을 진보로 지칭하고 있으나 그 속내를 살피면 서구의 보수 진보 정당과는 큰 차이가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제한된 사상의 공간 속에서 한국의 자칭 진보적 야당은 대부분 창당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고 보수 성향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내세우지만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국가보안법의 테두리 안에 갇히고 그 독기에 중독된 형국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의 이런 모습을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평균적인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남북 대치나 갈등이 심화되면서 유권자들은 안보불안 등에 민감한 경향을 나타내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 사회가 장기간 남한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보안법의 영향으로 사상의 영역은 제한적이고 그것이 한국적 상황으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진보정당은 더욱 위축되는 추세다.

사상의 자유는 다양한 정치 집단이 등장할 수 있는 공간의 허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럽 국가에서는 극좌에서 극우는 물론 그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사상적 차이를 지닌 다수의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과 같은 다수당이 나오기가 어려워서 선거 후 새 정부는 정당 연합을 하는 일이 흔하다. 한국에서는 합당 형식이 흔할 뿐 집권 방식으로 정당 연합의 형식을 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국에서 흔히 양당 중심제가 선호되거나 그 가치를 강조하는 것도 국가보안법의 부정적 영향과 무관치 않다.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억제하는 악법이고, 양당제도도 다양한 정치적 사상, 이념을 포용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양당제는 순환논리 적으로 한국적인 사상과 정치 제도를 고착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흑백 논리를 강조하는 단세포적 사고방식을 확산시키면서 다양한 정당의 존재를 불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가보안법을 의식하는 정당은 그 체질이 국가보안법에 맞게 변형되고 국가보안법을 부정하는 정치 집단에 대해 공동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치이념이 비슷한 정당만이 살아남게 되고 그 결과 정당간의 경쟁은 정책과 비전의 경쟁이 아닌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비리를 물고 뜯는 식이다. 19대 대선에서도 이런 모습이 반복됐다.

정치권의 경쟁이 건전한 정치와는 거리가 먼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면서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치 혐오감의 증폭은 양당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에게 이익이 된다. 신생 정당 등이 등장하거나 생존하기는 어렵고 대신 정치 기득권을 지닌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거대 정당만이 생존이 가능한 정치 풍토가 굳어지면서 낮에는 여야로 갈리지만 밤에서는 한통속이 되는 추악한 정치 풍토가 심화되고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이나 그 이전 정권에서 유사한 현상이 반복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당들이 정책과 비전 대결이 아닌 혈연, 지연, 학연에 좌우되면서 후진적 정치만이 판을 친다. 유럽 국가들처럼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 한국에서 시급히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서구와 같은 다당제 정치는 불가능해지고 민주주의 발전도 지체될 것이다.

한국에서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탄압은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1948년부터 본격화되었다. 특히 이승만, 박정희 독재 시절 진보세력에 대한 탄압이 자심했다.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전후 수년 동안 한국에서의 혁신 정치, 진보 정치 세력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승만의 죽산 조봉암 사법 살인과 박정희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불법 살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조현연은 “이승만의 조봉암 처형이 진보정치를 죽인 것이었다면,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진보정치를 꿈꿀 능력마저 죽여 버린 악마의 시대였다.”라고 썼다<진보 정당 운동사> 진보 정당'을 위한 고난의 행군, 왜 필요한가?" 조현연, 2010년 1월. http://blog.ohmynews.com/sultanyj/315489>.

‘멸공 대통령’ 이승만은 집권 후반 들어 조봉암을 최정점으로 한 혁신 세력을 두려워했고 그것은 조봉암 사법 살인으로 이어졌다. 조봉암(1899년생)은 1925년 조선공산당 중앙 검사 위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3년 일제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9년까지 복역한 후 석방되었다. 그는 1945년 해방이 되자 인천 건국준비위원회의 책임자,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인천 책임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6월 23일 “노동계급 독재·자본계급 독재·공산당 반대”를 내용으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공노선을 천명하며 전향했다. 그는 1948년 5월 10일의 남한 단독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고, 헌법 기초 위원·농림부장관을 지낸 후 1950년 제 2대 국회의원에 재선된 뒤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어 연임했다(김한성 연세대 교수의 죽산 서거 50주년 토론회 발제문 중에서).

조봉암은 1952년 2대 대통령 선거에서 혈혈단신 출마해 11%대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당시 보수야당의 조병옥 등은 조봉암을 거부하고 이승만을 지지했다. 그는 1956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진보 인사들을 ‘사민주의’라는 기치아래 규합해 진보당을 만들었지만 ‘소련의 세계 침략’을 규탄하면서 ‘자유 진영의 보루 미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대규모 기간시설의 국유화를 주장해도 중소기업의 육성을 요구했다.

조봉암은 1956년의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료제도, 국가보장교육제도,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농촌 고리채 지불 유예 등을 공약으로 내건 결과 23.8%의 표를 얻어 정계를 당황케 했다. 그는 ‘냉전적 사민주의’라는 비판 속에서도, 관료집단과 독점자본 위주의 한국 정치 패러다임 전체를 바꿀 공약을 제시해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실제 선거에서는 조봉암이 이승만을 눌렀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엄청난 부정개표 때문에 선거결과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 보수 야당 민주당은 부통령 선거의 개표를 공정하게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참관인을 모두 철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조봉암은 “투표에는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한겨레21 2004년 4월 28일).

혁신 세력과 지지 수위를 알아챈 이승만 정권은 용공 조작이라는 상투적 수법으로 1958∼59년에 진보당을 해체시키고 조봉암을 ‘법살’(法殺)했다. 당시 조봉암에게 적용된 법규는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이었다. 민주당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조봉암을 이승만이 진보당 사건을 일으켜 제거할 때 침묵했다.

한편 민족일보 사건으로 5·16 군사정권에 의해 32세 때 사형당한 조용수는 1930년 경남 진양 태생이다. 6·25전쟁 시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메이지대 정경학부에 편입한 조용수는 민단에서 일했으며 1956년에는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1959년에는 조봉암 석방운동에 앞장섰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조용수는 국내로 들어와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북 청송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조용수는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평화통일론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 발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하게 된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은, 통일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언론활동을 하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1961년 5월18일 간첩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신문을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을 고무 동조한 혐의로 체포한 뒤 같은 해 6월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소급 적용, 12월21일 처형하고 민족일보를 폐간 조치했다.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반공이 국시'임을 내세워 조용수 등에게 "조총련계의 자금을 끌어들여 창간해 이북괴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논조를 폈다"는 혐의를 씌워 재판에 회부했다. 간첩 이 영근으로 부터 조총련계 자금을 받아 신문을 만들면서 북한 괴뢰집단이 주창하는 평화통일을 선전했다는 것이 당시 혁명재판소가 내걸었던 조 사장의 죄목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용수에게 공작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이 영근은 1990년 정부에 의해 국민훈장을 받는 등 간첩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법살인'으로 드러난 것이다<한 겨 레, 2001년 2월16일, 경향신문, 2001년12월12일>. 조용수 사장의 유족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 사건 발생 47년만인 2008년 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승만 정권 말기와 박정희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은 한국의 진보세력은 80년대 이후 겨우 기지개를 켰지만 21세기 들어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하는 탄압을 당했다. 박 정권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정치공작 실상이 드러나 시민사회의 비판과 퇴진 요구가 거셌던 2013년 9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터뜨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다수의 통진당 당원 등을 구속했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피의사실을 유포하고 언론이 받아쓰는 일이 반복되면서 반역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내란음모’, ‘지하혁명조직(RO)’ 등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유일한 증거인 국정원 협조자가 불법 녹취한 녹취록 또한 변조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논란이 자심했다. 2014년 6월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는 이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적용했던 원심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정원과 검찰이 공소 제기한 이른바 ‘지혁명조직(RO)’에 대해서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법원장 양승태)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5년 1월 22일 선고 공판에서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를 인정치 않고 ‘내란음모’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렬 전 경기도 당위원장에게는 ‘내란선동’혐의를 인정했으며, 관련자 전원에게 국가보안법 관련혐의를 인정, 유죄로 판단하고 이석기 전의원에게는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 전원에게 고법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의 이런 판결은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내란음모’도 없는데 ‘내란선동’을 했다는 기이한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웃음꺼리가 되었다.

그런데 ‘내란선동’혐의에 대해서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내란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란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주요한 부분, 즉 시기, 대상, 수단 및 방법, 실행 또는 준비에 관한 역할 분담 등의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피고인 이석기, 김홍렬이 선동한 내용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내란 행위의 주요한 부분의 윤곽이 개략적으로나마 특정한 폭동이라고 볼 수 없다.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보더라도 피고인 이석기, 김홍렬이 내란을 선통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이른바 위헌정당심판청구사건 선고 공판을 열고 박한철 헌재소장이 ‘지혁명조직(RO)’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이 상실된다는 선고문을 낭독했다. 박 소장은 “통진당은 강령에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담고 있고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 등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정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사건과 비례대포 부정경선사건,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등의 활동을 감안하면 정당의 활동도 위헌적이다. 또한 정당이 해산되었는데 소속 국회의원을 남겨두는 것은 정당이 계속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문규정이 없지만 의원직도 상실된다고 봐야 한다”고 선고문을 낭독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의원 등의 세력이 정당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통진당은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 활동을 영위한 만큼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협을 가지지 않았다”면서 “정당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활동에 대한 제약은 극히 제한적으로 최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헌재의 선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로부터 2년이 되는 날, 헌법재판소가 해산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라며 ‘대한민국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사법살인’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박근혜는 헌재의 통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박은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 청구를 헌재에 재기할 때 해외에서 결재하면서 그 해산에 적극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대법원과 헌재가 지혁명조직(RO)에 대해 엇갈린 결론을 제시하면서 국민적 혼란과 함께 법체계의 미비점이 드러났다<미디어라이솔 2015년 1월 23일>.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판결에서 지혁명조직(RO)은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 반면, 헌재는 통진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지혁명조직(RO)을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적 쟁점을 놓고 두 최고 사법 기관이 다른 판단과 결정을 한 것은 박 정권이 통진당 해산 등의 결정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 것인가를 드러낸 수많은 논란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 사법 살인 사건은 민주주의와 헌법이 회복되면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속출하면서 이른바 진보는 더욱 위축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작성된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를 통해 좌편향 인사 8 천여 명, 3천여 개 단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는 박이 취임한 2013년 8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좌파 배제’를 지시했고, 비서실장 김기춘은 자신이 주재한 회의 등을 통해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뿌리 깊은 좌파 척결에 불퇴전 각오로 싸워라”고 독려한 것으로 밝혀졌다<한겨레 2017년 1월 31일>.

박근혜는 파면, 구속되었지만 박 정권하에서 자행된 전방위적인 민주주의와 헌법 파괴, 공안통치성 공작 정치의 적폐는 여전히 온존되어 있다. 촛불이 수 개월 동안 투쟁하면서 박을 물리쳤지만 황교안 등 박근혜 범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고위층이 정부 요직에 포진해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집행이 이뤄지면서 서구적 사상 경쟁이나 투쟁을 벌일 수 없다. 박근혜는 파면되고 구속되었어도 국가보안법은 살아있고 당선권의 유력 대선 주자 어느 누구도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대선 유세장에서 국가보안법은 종복 몰이의 뿌리로 여전히 독기를 뿜어내고 있다. 즉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의 다음과 같은 종북 몰이 발언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언론에 눈에 띄게 보도된 것이다 -"오늘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라는 선전 매체에서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선거에서 북한이 선택하는 후보를 우리가 밀어서야 되겠나. 문 후보는 당선되면 김정은한테 제일 먼저 간다고 하고 북한에서는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한다. 이게 한국 대통령선거냐, 북한 대통령선거냐.”<연합뉴스2017년 4월 18일>.

홍 후보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세뇌된 한국 사회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계산한 결과다. 국가보안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부당 이익에 눈이 먼 작태라 하겠다.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 등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북한을 연계시킨 종북 몰이 발언을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기울어진 선거 운동장이 여전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유권자의 최대의 정치 잔치인 대선 유세 과정에서 매카시즘이 난무하는 현실은 이 사회의 후진성, 야만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상황에서 상한선 없는 논쟁이 진보, 보수간에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국가보안법이 그것을 막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드시 괴멸시켜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규정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북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이 잘했다거나 긍정적이다. 또는 합리적이다’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 사항이고 ‘북한은 무조건 잘못하는 것’이라고 해야 안전한 것이다. 최근 한반도 사태에 대해 언론 보도도 그런 식이다. 즉 남북관련 보도는 한결같이 ‘미국의 대북 조치가 100% 타당하고 한국이 미국을 추종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한반도 위기 사태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내용이 홍수를 이룬다.

오늘날 인간의 지적 능력이 공상과학 시대의 그것과 같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면서 그에 따른 지구촌의 경쟁도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국가보안법이라는 틀에 갇힌 채 냉전시대의 정치논리를 강요받으면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려 한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과학, 기술적 상황이 전개된다. 3D 프린터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사라지거나 인공지능, 집단지성에 의한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과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사고방식과 가치 판단이 필요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새로운 문명 세계에 살아남아 지구촌의 평화,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에 갇혀 있는 가두리 고기의 신세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무한경쟁의 살벌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선진문명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후진국의 위치를 면치 못한다. 불을 보듯 뻔한 불행한 미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한반도 미래 세대에게 지구촌의 낙오자, 패배자라는 참혹한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 이는 역사와 민족, 그리고 지구촌 인류에게 엄청난 누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열면 남북 경제 공동체 추진 등을 통해 동북아에 우뚝 솟아오르면서 지구촌에 기여할 활로 모색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창조적, 생산적인 미래에 등을 돌리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멈춰야 한다. 중국이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인류 사상 최초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남북한도 한반도만의 독창적인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상상력이 보장되어야 하고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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