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3

예술가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원천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담겨져 있던 몸의 기억들이 순명의 두레박을 타고 한 가득 예술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 진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단계씩 오르고 올라 예술의 열매를 맺는다. ‘예술로 계단 오르기’는 길어 올리는 과정에서 두레박 밖으로 떨어지는 순명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은 예술가의 퍼즐 맞추기다. 그 첫 번째 계단을 조연희 작가가 오른다. <시의 사생활>로…[편집자]

 

그 여자

아버지와 같이 온 여자는 엄마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는 집에서 정해준 여자와 먼저 결혼했던 모양이다. 흔한 얘기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그래서 삼대 종손인 아버지는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뭐 그 시절 그렇고 그런 얘기.

여자는 콧날이 죽어 있어서인지 유난히 콧방울이 커 보였다. 얘기하면서 수시로 콧방울을 벌렁거렸는데 그 모습이 부정교합으로 돌출된 치아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솜 묻은 바지를 수건으로 탁탁 털며 조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앉으라고 했다. 나는 괜스레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으로 방석을 내왔다. 여기저기 찍혀 허연 속살이 드러난 삼층장, 누렇게 바랜 목단 꽃무늬 벽지, 선반 위에는 뚜껑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과산화수소수, 요오드크롬액, 물파스 따위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각진 모서리마다 위태하게 흔들리는 거미줄. 집을 나가고 싶은 심정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나가고 싶었으니까. 방 한 면을 차치하고 있는 네 짝 나무문을 밀면 안 입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고 이불이 둘둘 말려 있었다. 시큼하고 큼큼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가난의 냄새, 불행의 냄새란 바로 저런 냄새가 아닐까.

콧방울이 큰 여자는 조그만 횟집을 하며 혼자 살고 있었는데 갈 곳이 없을 때 가끔씩 아버지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엄마의 표정이 어둡긴 했지만 그렇게 적대적이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런 장면이 그 전에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았다.

늙은 동백나무 다리에 새 살이 돋던 날

아버지는 아지랑이 꽃길 따라 집을 나갔다.

라디오에선 동백 아가씨 봄이 한창이고

여기저기 붉은 피 토해내던 꽃망울들.

마당의 가슴 한 번 치고

당신 가슴도 한 번 치고

철퍼덕 마주 앉은 동백나무 두 여인

그 곁에 피어 있던 내 꽃도 덩달아 아팠지만

매일 저 혼자 회춘하는 산다목

뿌리 깊은 기다림은 밤마다 미지의 해안을 더듬고

동백꽃물 흐르고 흘러

꽃피는 동백섬 그 아랫도리를 적셔도

거리 귀신이 된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까닭 모를 햇살이 모가지를 쳐도

웃고 있는 저 미친 꽃봉오리들.

-졸시 ‘그해 봄’ 전문

문제는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였다. 엄마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세마치장단으로 길게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신세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마루에서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 치는 엄마를 잡아끌었다. 늘 그랬다. 엄마와 아버지가 몸싸움을 벌일 때, 엄마가 발작하듯 몸을 팽개치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을 때 말리고 정리하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그때 크악,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눈에 돌연 푸른빛이 돌았고 말릴 틈도 없이 성난 맹수처럼 현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서민 아파트인 우리 집은 공중화장실을 쓰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버지의 멱살을 엄마가 잡아챘던 것이다. 기습공격을 당한 아버지는 반사적으로 엄마를 밀쳐냈지만 악에 받친 엄마가 놔줄 리 만무했다. 내가 달려가 엄마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은 채 뜯어내려 했지만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아버지는 왁살스럽게 밀어냈고 그 바람에 엄마와 난 화장실 수챗구멍 옆으로 나뒹굴었다.

독한 하수구 냄새가 슬픔처럼 올라왔다. 밖에서는 그토록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가 집 안에서는 어디서 그렇게 힘이 솟는 걸까. 아버지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휘어 챘다. 그때였다. 짐승의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괴성이 들렸다. 언니였다. 어디에 있다 온 것인지 언니가 갑자기 튀어나와 아버지의 팔뚝을 물었던 것이다. 잠시 아버지는 멈칫했지만 곧 총 맞은 승냥이처럼 몸부림쳤다. 아, 익숙한…. 그동안 가시처럼 빼쪽하게 날 서있던 고요가 일시에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언니의 허리를 붙잡고 줄다리기하듯 언니를 잡아 당겼다. 하지만 언니의 힘은 괴력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거의 본능적으로 쓰레기통을 들어 언니를 내리쳤고 그제야 언니는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언니는 붉은 동백꽃물 같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남자

“우리 가족은 살쾡이들 같아. 왜 그렇게들 서로 할퀴고 헐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위안은 못 돼줄망정 남은 기력이나 빼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힘빼기의 연속일 뿐. 그래서 우리 가족은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집 안에서 지쳐버리나 봐. 의욕이나 삶의 열정 같은 걸 서로에게 모두 소진시켜 버려. 감정의 겨드랑이를 살살 긁어 악바치게 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악다구니를 토해내고, 가구를 던지고, 몸싸움을 하고, 그러다 지치면 함께 밥을 지어 먹지. 사람의 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집 안 싸움으로 모두 소진해버리니 밖에서는 제 몸 하나 추스르는 것도 힘겨울 수밖에. 집이란 게 우리에겐 끊임없는 전쟁터일 뿐이야. 차라리 밖으로 나오는 게 훨씬 편해. 그래서 우린 거리귀신이 들린 사람들 마냥 서울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나 봐.”

머리를 여섯 바늘이나 꿰맨 언니가 햇빛도 들지 않는 방에서 쥐며느리처럼 습습하고 굼뜬 동작으로 기어 다녔고, 엄마는 장판 밑에서 곰팡이들이 검게검게 썩어들어 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미싱을 돌렸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먹구름이었다. 번개나 천둥을 품은 먹구름이었다. 언제 갑자기 으르렁거릴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와도 우리는 웃음을 멈추었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아들이 없던 할아버지는 양자를 들이고 나서 줄줄이 삼 형제를 얻었는데 그 중의 첫째 아들이 아버지였다. 삼대 종손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버지. 한번은 할아버지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와중에 아버지가 벼루만 안고 뛰쳐나왔다는 얘기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성실하고 학구열이 높은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왜 변한 것일까. 엄마 때문일까? 오히려 엄마는 아버지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결혼을 한 번 했던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호적등본을 떼어 본 나도 깜짝 놀랐다. 내 엄마가 ‘윤금숙’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우리를 낳고도 엄마는 한참이나 호적의 뒷면에 숨겨진 어머니로 있었던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왜 빨리 호적정리를 하지 않은 걸까. 혹시 아버지는 그 첫 번째 아내를 잊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아버지를 엄마는 왜 떠나지 않은 걸까? 정말 엄마 말대로 우리 때문이었을까? 혹시 그런 사랑도 있는 걸까. 옆에 두고 미워하고, 옆에 두고 원망하고 때로는 옆에 두고 물어뜯는 그런 사랑. 그 모두를 마쳐야 정리할 수 있는 사랑. 창 밖에서 꽃 냄새가 한줄기 흘러들었다. 독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