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4

예술가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원천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담겨져 있던 몸의 기억들이 순명의 두레박을 타고 한 가득 예술의 영감으로 길어 올려 진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단계씩 오르고 올라 예술의 열매를 맺는다. ‘예술로 계단 오르기’는 길어 올리는 과정에서 두레박 밖으로 떨어지는 순명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은 예술가의 퍼즐 맞추기다. 그 첫 번째 계단을 조연희 작가가 오른다. <시의 사생활>로…[편집자]

가끔은 엄마가 마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의 손이 닿으면 모든 생기 있는 것들은 시들어버리고 행복도 잿빛으로 변해버리는. 그 검은 한숨을 호흡해야만 생을 연명할 수 있는 마녀. 우리 집이 이렇게 어둡게 변한 것도 어쩌면 엄마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고.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아버지가 변한 것도 어쩌면 엄마의 갈퀴손이 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마녀를 지탱시켜주는 것은 활활 타는 증오. 엄마는 종종 아버지가 아닌 우리에게도 거품을 물고 눈을 하얗게 뒤집어 보이곤 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엄마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라고. 그 발작을 묵묵히 견디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일이라고.

갑자기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화난 사람처럼 방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남편 복 없는 녀언 자식 복도 없다더니~ 길게 목청을 뽑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갑에서 담뱃값 좀 빼갔다고 저 난리야. 돈 싸질머지고 무덤까지 갈 건가?”

언니는 불량소녀가 침을 뱉듯 말을 찍 뱉었다. 여섯 바늘이나 꿰맨 머리의 실밥도 채 뽑지 않았는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언니는 담배를 허겁지겁 물더니 짜증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 그 놈의 돈 소리, 돈! 돈! 아버지까지 쫓아내더니 이번엔 내 차례야? 나보고 나가라는 거야?”

한껏 목청을 돋우던 엄마가 현관에 있던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잘한다 잘해. 말이면 다해? 이년아 내가 여지껏 왜 살았는데...이 꼴 보려고 내가 안 죽은 줄 알아? 나가 뒈져라 이년!”

엄마는 빗자루로 언니를 사정없이 내리쳤고 언니는 그 매를 피할 생각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 무서운 주술……. 언니의 말대로 우리는 엄마의 증오심에 눌려 질식할지도 몰라. 엄마는 제풀에 쓰러져 울다 뒹굴다 다시 일하러 나가겠지. 그리고 저녁이면 부은 얼굴로 마주 앉아 우걱우걱 밥을 퍼 넣겠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하면 서로가 가장 상처받는지. 어디를 공격하면 가장 아픈지… 그러면서 상처를 더 독한 상처로 소독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바람이 불자 머리를 밀어낸 부위의 하얀 반창고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언니는 가끔 손을 들어 며칠째 머리를 감지 못해 기름이 낀 정수리 부분을 꾹꾹 눌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담배 연기나 뿜어대는 언니. 나이를 알 수 없는 우울과 짙은 음영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머리라도 빗어”

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 담배를 물었다.

“니가 어릴 적 엄마와 아부지가 몸싸움을 벌일 때… 그때마다 나는 제발 이혼해요 울며 매달렸지.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부러울 정도였어. 그때마다 엄마는 우리들 때문에 산다고… 안 그랬으면 벌써 끝장났을 살림이라고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억지로 끌어온 이 생활이 우리에게도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아. 차라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있었다면 사는 게 이렇게 팍팍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움은 희망이니까... ”

가족이란 뭘까? 적어도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의 욕망쯤은 조금 양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엄마를 희생시킨 채 살아온 것 같았다. ‘엄마 배고파’하면 다리 한 짝 쭉 찢어 주고, 또 ‘배고파’하면 팔 한 짝 뚝 떼어 주고… 간 하나 꺼내 주고 쓸개 하나 꺼내주고… 텅텅 빈 가슴만 남아 있는 엄마는 그럴수록 자식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갔다. 사실 오빠가 학교를 밥 먹듯 빠지는 것도 언니가 매번 연애에 실패하는 것도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병적인 집착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랬다. 엄마의 모성은 점점 병적이 돼갔다. 엄마의 모성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언젠가 따개비에 감염된 ‘스파이더 크랩’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따개비는 부화기가 되면 그 바닷게에게 세포 물질을 주입해 수컷도 암컷으로 성전환을 시킨다. 그리고는 부화용주머니에 알을 낳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닷게는 자신의 새끼인 양 기생충 알을 정성껏 키운다는 것이다. 모성이 기생충에 감염된 현상일 수도 있다니… 숙주 조종에 의해 자신을 어미라고 생각하면서 바닷게는 따개비의 알을 키우는 데 일생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 우리는 엄마 자식이 아냐

엄마가 낳은 건 기생충이야

자궁 밖으로 생리혈처럼 쏟아져 나오는 우리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이 유충이 네 유충이니

오빠는 엄마의 앙상한 다리에서 피를 빨고

언니는 사타구니에서 배다른 알을 까고 있었다

우리를 버려줘 엄마. 엄마는 감염됐어.

(기생 따개비에 감염된 ‘바닷게’는 모성애만 남은 암컷이 됩니다.

그때부터 오로지 따개비의 새끼를 위해 존재합니다

자신이 감염됐는지도 모릅니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면서 그저 기생충 새끼를 보호할 뿐입니다)

자궁에 큰물 진 날

잠시 여자로 돌아온 엄마는 아버지의 멱살을 쥐기도 했지만

다시 밥을 짓고 이불을 꿰맸다

제발 이혼해. 엄마는 숙주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병상에 누운 엄마는 여기저기 숨겨놓은 통장을 꺼냈다

불쌍한 내 새끼

언니는 그 돈으로 살림을 차리고

오빠는 그 돈으로 새 차를 뽑았다

바닷게 한 마리, 등딱지 안에 잔뜩 기생충 알을 슬은 채 어디론가 떠나는 밤

엄마는 포동포동 독이 오른 우리를 보며

자꾸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졸시 ‘행복한 숙주/기생따개비’

언니는 정말 잠이 들은 것인지, 자는 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언니는 굼벵이처럼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산발을 하고 있는 언니를 보자 문득 슬퍼졌다.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왔는지 맨발인 발바닥엔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혀있었고 발톱 사이엔 시꺼먼 때가 끼어 있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안방에 들어가면 엄마의 속이 검게 검게 부식되는 것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이따금 습기를 머금은 허여멀건 쥐며느리가 굼뜨게 기어 다니고 한숨이 얼룩처럼 배어있는 이불. 욕설에 찌그러진 양은그릇. 왜 이렇게 모든 게 잿빛일까. 나는 부피를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집을 나섰다.

어디선가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밥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이 퍼지자 아파트 입구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로 왁자했다. 나는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길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릴 때 늘 그랬듯. 엄마는 조금이라도 청과물들을 싸게 사기 위해 도매시장을 이용하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엄마 몸보다 더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아슬아슬하게 이 길을 걸어오고는 했다. 미나리며 깻잎, 열무에 총각무까지 푸른 줄기들이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은 흡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 같기도 했다.

나는 길 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길 끝에서 엄마가 나올 것만 같아, 정수리 가득 무거운 석양을 이고 눈물처럼 흐려지는 길을 따라 출렁출렁 걸어오실 것만 같아. 푸른 줄기들이 머리 위에서 면류관처럼 자라고… 염소 눈동자에 비친 노을처럼 쓸쓸한 것은 없지만 그 길에서 홀로 걸어오는 엄마. 검은 염소 닮았네. 엄마, 우리 엄마 내 앞가림하며 살기도 힘들어 언제쯤 엄마 짐 받아줄 수 있을까. 기다림을 숨기고 있는 길은 오늘도 저 혼자 달려가고…. (다음에 계속)

 

*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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