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십여일 뒤 공항 제독 작업은 ‘코미디’

▲ 말레이시아에서 사망한 북한 남성의 시신에서 VX가 검출 됐다는 보고가 나왔다.[사진 YTN 영상 갈무리]

김정남의 암살에 대량파괴무기(WMD)인 신경성 독가스 'VX'가 사용된 것으로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표하면서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위협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VX 사용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대북 강경조치가 다각도로 취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VX가 사용됐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아직 미흡한 상황인데 이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표한 사건 수사 결과 등이 미흡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VX는 무색무취로 호흡기, 직접 섭취, 눈,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되어 수 분만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며 사린가스보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하는 유독한 신경작용제다. 청산가리보다 2만 배 이상 독한 VX는 10 mg (0.00035 oz)만 피부로 접촉하거나 30•50 mg·min/㎥만 호흡해도 사망한다.

VX의 유독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VX보다 그 독성이 1/100인 사린가스 피해에서 간접적으로 추정된다. 사린가스의 유독성을 드러낸 사례 가운데 하나가 1994년 6월27일 일본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에서 일어난 사린가스 살포사건이다. 옴진리교 교인이 마츠모토 시의 아파트 멘션 부근 공지에서 특수 개조한 화물자동차의 기계장치를 가동해 12리터의 사린을 기화시켜 살포해 7명이 사망하고 700 명 이상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방에 설치된 에어컨이나 창문으로 들어온 가스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다.

사린의 유독성은 사건 발생 이틀 뒤 살포 현장에서 반경 150m 안에서 확인됐다. 부근의 연못 속에서 죽은 고기가 발견됐고 복수의 개와 새, 다수의 곤충이 죽은 것이 확인되었다. 사린가스는 VX보다 독성이 약하지만 유독한 신경작용제로 액체상태에서 쉽게 기화되어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을 되돌아보면 VX와 관련해 의문점이 떠오른다.

우선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두 여성 용의자의 경우다. 인도네시아 여성 용의자 시티 아이샤(25)는 독극물 공격이 아닌 베이비오일로 장난치는 것으로 알았고 지금까지 신체에 독극물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말레이시아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안드레아노 어윈 부대사가 밝혔다. 또 다른 여성 용의자인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은 VX 노출에 따른 부작용으로 구토 증세를 보인다고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밝혔다.(연합뉴스 25일자 기사)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한 VX를 가스로 기화하기 전 단계 물질로 두 여성에게 각각 주고 이를 차례로 사용해 기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거나, 흡수를 돕기 위해 1명이 얼굴에 물을 뿌리고 나머지 1명이 VX를 바르는 등 2명의 용의자가 역할 분담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썼다.

그러나 사린가스보다 100배 강한 VX의 유독성을 고려하면 김정남을 공격했다는 두 여성의 상황을 볼 때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VX의 사용을 기정사실화하기 어렵다. 말레이시아 경찰이나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물질을 김정남 얼굴에 발랐을 경우 유독가스가 생겨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사건 발생 십여 일이 지났지만 공항 대합실과 김정남을 응급치료했거나 병원으로 이송한 의료진 등 어느 누구도 VX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도 VX 사용 가능성을 의심케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사건 발생 후 13일이 지나도록 현장에 경찰통제선 하나 설치하지 않았다가 25일 ‘당국이 강력한 신경성 독가스 VX가 동원된 김정남 독살사건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에 대한 제독(除毒) 작업을 26일 새벽 1시에 실시해 공항 청사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VX 성분 확인 및 제거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라는 성명을 밝힌 것은 코미디를 넘어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만약 VX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되어 김정남을 죽게 만들었다면 사린 독가스보다 100배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가 사고 현장과 주변 공항 대합실 수백 m 범위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외면한 채 VX 사용을 공식화하는 발표를 하는 말레이 당국이나 최소한도의 검증작업 없이 받아쓰는 언론은 정말 큰 문제다.

또한 한미 두 나라는 북한의 VX 사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미사일 장착이나 생화학전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취하는데, 참고로 VX는 2차 대전이후 전쟁 무기로 제작된 것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미군과 연합군이 2003년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침공했지만 VX 생산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김정남 암살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휴전선 대북 방송을 실시하고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자칫 한반도 긴장 상태를 고조시킬 위험이 크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최소한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참고하면서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해야 할 것이고 이를 근거로 대북 정책 수립이나 보도를 할 경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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