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표현의 자유 존중하면서 비판해야 -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 사진출처. 구글검색 캡처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로 표현한 풍자화 ‘더러운 잠’의 국회의원회관 전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풍자에 대한 비판은 여야 정치권에서 거의 한 목소리로 쏟아진다. 풍자 그림이 ‘여성 비하’ ‘여성 폄하’ ‘성폭력 수준’ ‘성희롱’‘ ’대한민국 국민 인격과 위상 훼손‘ ’대한민국 국격 추락‘이라며 이 전시회를 주선한 민주당 표창원 의원에게 의원직 사퇴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표 의원은 소속당과 국회 윤리위에 제소될 것으로 전해진다.

‘더러운 잠’ 논란은 박근혜 게이트 정국에서 관심을 끄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듯하다. 국민 절대 다수가 박 대통령 탄핵을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발해 탄핵 반대 세력에게 구실을 준 듯한 이번 논란의 원인이 된 풍자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풍자에 대해 위키리크스는 “종종 변화를 유발하거나 저지할 의도를 가지고, 인물, 조직, 국가 등을 조롱하는 글, 그림, 연극, 영상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사용되는 표현 기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풍자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된 형식의 하나다. 독재국가에서 정치 풍자는 탄압과 금기의 대상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이들 독재자에 대한 풍자는 중대범죄로 처벌대상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권 비판 세력에게 재갈을 물리려 했던 범죄행각이 최근 그 전모가 드러나면서 정권의 성격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풍자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등에서 등장한 것으로 밝혀지는데 이는 인간의 상상의 자유나 표현 욕구와 직결된다. 풍자는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극적인 형식으로 제시하는 창작물이라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여지가 없다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풍자의 이런 교과서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더러운 잠’은 어디까지가 예술 창작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폄하인가? 냉정히 생각한다면 두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십인십색이라는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잠’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으로 그 동안 전해진 박 대통령게이트의 내용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으로 몰린 행위는 세계적인 조롱꺼리가 되어 국격을 심각하게 손상했다. 게이트 관련자들의 거짓말을 앞세운 파렴치한 언행은 청와대가 조폭 집단과 유사하다는 질타까지 쏟아진 상황이다. 매주 주말 전국적으로 열리는 촛불 집회에서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외치지만 박 대통령은 나라가 내우외환의 위기 속으로 빠져드는데도 개의치 않는 태도로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더러운 잠’에 대한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여성이면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측면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동시에 대통령이라는 공인의 역할을 충실히 했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한심한 짓을 계속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법과 민의주주의 유린을 포함한 비선 의료 게이트는 물론 보통사람의 상식으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어느 막장 드라마보다 더 지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거부하는 것은 물론 비선 측근이나 청와대 참모 등이 박 대통령의 범법 사실을 실토하는데도 ‘사실이 아니다’ ‘모른다’는 소리만을 반복하고 있다.

‘더러운 잠’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자유다. 그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더러운 잠’에 대해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만을 주목해 비판하는 식은 곤란하다. 창작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하고 그에 대한 민형사상의 문제가 있다면 적절한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견해가 마치 전체를 아우르고 최종적인 결론인양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역행하는 비판을 자초한다.

‘더러운 잠’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여성과 성적인 측면만을 주목한 것인데 이 또한 완벽한 관점은 아니다. 예술작품은 시장에서 수많은 개인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더러운 잠’의 어떤 부분을 다수가 주목하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상식을 앞세워 작품을 매도하는가 하면 전시회를 주선한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날을 세우고 심지어 해당 작품을 파손한 행위는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더러운 잠’에 대한 비판이 여성을 강조하는데서 나온 것이지만 이 또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간은 흔히 남녀라는 두 가지 성만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즉 남녀 어느 쪽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간성(間性)이 전 세계 인구의 1.7%라는 것이 유엔 통계로 나와 있다. 또한 동성애자의 경우 출생인구의 5% 전후에 달한다. 전통적인 남녀관과 여성에 대한 관념을 고집한다면 간성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하나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미경적으로 살피면 한 가지 관점이나 결론만을 고집하는 타당성이 희박해진다.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때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타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를 기본 삼아 처신해야 한다. 70년이 넘게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일부분을 억압하는 것이 체질화 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실력 행사부터 하는 관행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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