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역사 수정주의가 공격적인 이유
3.1절 기념사에서 자학...일본에 과거사 면죄부 부여
한미일 동맹 위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공산전체주의’ 타령
홍범도 죽이고...‘한미일 정상회담 굳히기’
이승만 미화?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완성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제공)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제공)

총선이 다가오며 윤석열 정부의 역사 왜곡이 도를 넘어 섰다.

지난달 12일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비대위원장실 일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승만 미화로 논란이 된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이에 질세라 다음날 윤 대통령은 <건국전쟁>이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진실을 담아낸 작품”이라 상찬하며 참모들에게 시청을 권유했다.

일찍이 이에 앞서 설날을 전후로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건국전쟁> 관람 후기들이 쏟아졌던 사실을 돌아보면, 정부·여당이 이승만 미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기세에 올라타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로 송현 광장을 비워두겠다는 당초 약속을 뒤집어 해당 부지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역사 수정주의가 공격적인 이유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독재를 일삼던 이승만을 퇴진시킨 ‘4.19혁명의 민주이념’ 계승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미화 시도는 기존에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고치려 든다는 점에서 역사 수정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 수정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역사를 미화하는 독일 우파들을 꼽을 수 있다.

물론 강성 우파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 한국의 일제 식민지 역사를 지우려 했고,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를 우익 입맛에 맞게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이승만 미화는, 세계의 다극화 정세 속 미국 주도 집단 서방의 동맹 체제에 편입되려는 처절한 합리화 수단이라는 점에서 역대 보수정권의 수정주의와 구별된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가 역대 보수정권에 비해 훨씬 전방위하고 공격적인 양상을 띠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한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3.1절 기념사에서 자학...일본에 과거사 면죄부 부여

윤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는 단지 이승만 미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징후는 지난해 3.1절 기념식 104주년 행사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당시 윤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공언하며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자학했다.

심지어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3.1절 행사에서만큼은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강조해왔던 전례에 비춰볼 때,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충격을 가져다줬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 강제징용 문제 등 미해결된 일제 강점기의 쟁점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더해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다그치는 식의 발표를 했으니, 시민들의 반발이 극렬했음은 당연한 셈이다.

이어 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개입해 ‘제3자 변제안’을 꺼내들었다.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국내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납하게 한 것이다.

이 같은 행태에 ‘자해 외교’라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정부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미일 동맹 위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공산전체주의’ 타령

그러나 그 베일이 벗겨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게 미국 주도의 한미일 동맹을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진 것.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78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결코 공산전체주의 세력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어 한·일 관계를 두고는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광복을 위해 투신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였고, 광복절이 일제의 잔혹한 수탈으로부터 벗어난 날임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의 말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나올 발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을 3일 앞둔 날이었음을 감안 하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미국의 북중러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에서는 한일 공조가 필수적이었으나 양국의 역사문제로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돌격대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

결국 논란의 광복절 경축사로부터 3일 뒤인 8월 18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은 대중국 견제, 준 군사동맹, 공급망 협력 등을 골자로 하는 문서들을 공동 채택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노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서 일제 식민지배 역사를 지운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 미 대통령 양자회담장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 미 대통령 양자회담장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홍범도 죽이고...‘한미일 정상회담 굳히기’

명분 없이 역사문제를 헌납했던 윤 대통령은 곧바로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 철거가 바로 그것이다.

한미일 정상회담 직후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는 독립군과 광복군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흘 뒤 8월 28일 정부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 청사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을 덩달아 철거하겠다고 했다.

좌우를 떠나 광복에 대한 공로를 인정했던 정통 사관에 맞서 수정주의를 꺼내든 것이다.

이 역시 한미일 동맹 유지를 위한 역사문제 헌납의 일종이었다. 한미일 동맹을 위해서는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국에 맞섰던 좌익 독립운동가들까지도 지워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흘 뒤 9월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미화?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완성

윤 대통령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개인 명의로 500만 원을 기부한 것은 그해 11월의 일로, 현재 오세훈 시장의 이승만기념관 추진에까지 이어진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윤 정부의 이승만 미화 작업은 전방위한 역사 수정주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승만은 독재자이기 전에 지독한 반공주의자이자 북진통일론자로서 분단체제 영속화의 주역인 만큼, 북중러와 거리를 벌리고 한미일 동맹을 공고화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결국 윤 정부의 수정주의적 공격은 한미일 동맹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완성을 위한 시도로 수렴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승만 미화에 열을 올리는 정부·여당의 행태에 단순한 ‘보수결집’ 이상의 음험함이 도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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