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큐멘터리에 역사학자 부재...“여기서 한동훈이 왜 나와?”
4.19가 이승만 덕분이면 항일 운동은 일제 덕분인가
부패·비리...이승만 재산 5억 환...현재 가치로 110억
이승만 업적? 친일 관료 기용 · 반공 테러 · 분단국가 건설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분쇄...시민학살 주범
이승만 체제 본질은 ‘반공 독재 파시즘’

▲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GV 여의도에서 영화 '건국전쟁'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건국전쟁 포스터 전광판. ©뉴시스
▲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GV 여의도에서 영화 '건국전쟁'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건국전쟁 포스터 전광판. ©뉴시스

이승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에 감독 김덕영은 과거 180만을 돌파했던 영화 <노무현입니다>나 최근 360만을 돌파한 <파묘> 등을 “좌파 영화”라 규탄하며 본인의 작품이 이들 성적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00만 돌파라는 성적이 무색하게도, 극장을 찾은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건국전쟁>의 주 관객층은 대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 영화가 세대 편향된 관객층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못 만든 관변 홍보영화 같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 다큐멘터리에 역사학자 부재...“여기서 한동훈이 왜 나와?”

<건국전쟁>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자처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취해야 할 객관성의 척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는 이승만에 대한 정보를 증언하는 인터뷰이의 편파적인 선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건국전쟁’의 인터뷰이들은 이동욱, 이한우 등 조선일보 계열 언론인이나 류석춘 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 학자가 대부분이다.

그 외 인물은 안티 페미니즘에 친기독교 반공 성향을 가진 트루스포럼 인사 정도다. 놀랍게도 국내에서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영화 중간에 난데없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나와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칭송하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데, 이는 총선을 앞두고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감독의 노골적인 욕망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이다.

▲김영호(왼쪽 세번째)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코엑스 소재 영화관에서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2024.02.17.
▲김영호(왼쪽 세번째)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코엑스 소재 영화관에서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2024.02.17.

4.19가 이승만 덕분이면 항일 운동은 일제 덕분인가

그 외 인터뷰와 나레이션도 문제적이다.

‘이승만이 국민을 교육시켜 민주주의를 깨닫게 했으므로 4.19가 일어난 것도 이승만 덕’ ‘4.19는 이승만 잘못이 아니라 이기붕 등 주변 인물들 잘못’ ‘한국이 일찍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것도 이승만 덕’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미얀마같은 주변부 사회주의국이 됐을 것’ 등 상영 내내 사실관계에서 벗어난 위험한 궤변들이 쏟아진다.

애초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혁명은 반공이념과 군경을 동원한 억압으로 부정선거를 치르고 장기집권을 시도한 이승만과 자유당 일당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만큼 4.19혁명은 이승만식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교육받은 대중의 각성이라기보다는 ‘상식’을 벗어난 패악에 대한 항거의 성격이 짙다. 이는 4.19혁명과 더불어 이승만식 북진통일론이 폐지되고 평화적 남북 교류 분위기가 대중적으로 무르익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4.19혁명이 이승만 ‘때문이’ 아니라 이승만 ‘덕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항일 무장투쟁이 일제하 근대화를 통해 들어온 반제국주의 이념에 기인하기에 독립운동은 일본 ‘덕분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패·비리...이승만 재산 5억 환...현재 가치로 110억

또 영화에서는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 시절 집과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집을 비교하며 이승만의 검소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있듯 이승만은 독립자금을 횡령하여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전력이 있다.

무엇보다 정부 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 일가의 재산은 1960년 당시 각각 ‘5억 환’과 ‘15억 환’으로, 2024년 현재 가치로 계산하면 각각 110억 원과 340억 원 상당이다. 110억 원은 부패가 아니고서야 대통령의 정상적인 급여와 투자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승만 업적? 친일 관료 기용 · 반공 테러 · 분단국가 건설

‘건국전쟁’에는 역사적 사실관계의 오류도 상당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승만이 민중친화적인 인물임을 강조하며, 그의 실정을 당시 좌파들에 돌린다. 이승만 정권이 군경을 동원해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악명 높은 ‘제주 4.3과 여수·순천항쟁에서 좌익 테러가 심각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민중친화적인 지도자이기는커녕, 서구 사대적인 선민의식과 수구 우익들에 친화적인 반동적 지도자였다.

해방 후 한반도의 70% 시민들이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의 반공 테러와 학살은 벌어져선 안 됐다.

또한 해방 후 압도 대중의 여론이 친일파 청산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은 친일 군경, 관료들을 그대로 기용해선 안 됐다.

무엇보다 해방 후 모든 시민들이 통일 정부 수립을 염원했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미군정을 등에 업고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해선 안 됐다.

그가 ‘민중친화적’이라기보다 민중 정서와 요구의 정반대에 놓이는 이유다.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분쇄...시민학살 주범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은 이 같은 이승만 일당과 미군정의 반민중성에 맞선 민중항쟁이었다. 남로당의 개입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듯 이승만과 미군정은 이 항쟁들을 잔인하게 분쇄했다.

영화가 주장하듯 제주 4.3과 여순항쟁에서 좌익의 테러가 가장 큰 문제였다는 식의 서술은 명백한 거짓이다.

제주 4.3의 경우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6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미군정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만큼, 당시 전체 인명 피해의 최소 80% 이상, 많게는 90% 이상이 미군정과 군경을 포함한 우익 세력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여수순천항쟁도 마찬가지다.

제주 4.3에서 봉기한 민중들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일당의 명령에 불복한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여순항쟁 역시 무참한 진압 대상이었다.

여기서도 학살을 비롯, 인명 피해의 대다수는 군경 등 우익에 의해 이뤄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진압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626건(2,043명, 75.2%)에 달한 한편, 반란군과 좌익 등에 의한 희생은 74건(189명, 8.9%)에 불과했다.

이승만 체제 본질은 ‘반공 독재 파시즘’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 이승만 정권의 패악을 좋게 포장하는 것은 개똥에 금칠을 하는 시도에 다름없다.

이승만 정권은 자유도 아니었고,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반공 독재 파시즘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날 한국의 역사는 이승만을 격퇴한 ‘4.19민주이념 계승’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만큼은 발전했다.

‘건국전쟁’이 대중동원에 실패한 ‘노인들을 위한 영화’에 그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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