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중 갈등과 세계화의 쇠퇴
2. 탈달러 흐름
3. 브릭스의 부상

1. 미중 갈등과 세계화의 쇠퇴

1991년 소련 몰락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미국 중심 신자유주의 체제가 세계화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공적 기능을 축소하고 시장 만능주의, 자본자유화, 작은정부, 부자감세 등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강제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월가 대형은행들은 금융화, 증권화, 유동화 기법으로 세계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이윤을 극대화했다. 반면 자본회전이 느린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여 국제분업체제로 비용을 절감했다.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 미국의 패권은 달러체제와 군사력으로 유지되었다. 달러체제에서 미국은, ▲ 금으로 담보되지 않는 종이돈(달러)을 무한대로 발행하여 주변국의 상품을 무이자로 매입할 수 있었다. ▲ 석유 수입의 달러 결제 등 무역 결제에서 달러 사용을 강제하고, 주변국의 무역흑자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며 각국의 외환보유고에 달러표시자산 비중을 늘리도록 압박했다. 주변국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보유로 낮은 이자를 받았으나 미국은 해외 우량기업의 주식·채권에 투자하여 높은 이자를 받았다. ▲ 주변국이 미국 국채에 투자한 많은 부분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의 전쟁 비용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달러체제에 기반한 세계금융시장은, 규제되지 않은 자본의 탐욕으로 파국을 맞았다. 2008년 위험자산에 투자한 대형은행들의 몰락에 이어 2011년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하면서 서방국가들은 10년 이상의 대침체에 빠졌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수조 달러의 통화를 발행하여 금융기관을 지원하고, 제로금리로 경기부양에 나섰다. 세계금융위기로 금융세계화의 민낯이 드러나며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예견된 것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패권이 약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였다([그림 1] 참고).

[그림1] 국가별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 / 자료 : Worldbank, 한국은행 재인용
[그림1] 국가별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 / 자료 : Worldbank, 한국은행 재인용

미국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고 러시아처럼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중국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은행 등 주요 국유기업의 개방을 제한하였고, 민간보다는 국가주도 성장정책을 지속하였다. 국가주도 성장정책은 미국 등 선진국들도 산업화 시기 수십 년 동안 채택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일찍이 작은정부와 (민간) 자본주도 성장으로 전환된 바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금융과 기간산업을 장악하지 못했고, 중국의 기술 굴기와 일대일로 등 시장확장에 따라 경제패권 상실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 화웨이 등 일부 국유기업 제재 등으로 보호무역을 시행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냉전 이후 지속되어온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면서 미국·서구가 수립한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도전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경제기초를 재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는 사실 선진국 경제의 거대한 부채 누적,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긴축재정 등으로 인해 달러·엔·파운드로 구축된 기축통화 동맹의 위기가 세계경제 위기로 전이되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미국은 2023년 뉴 워싱턴 컨센서스(New Washington Consensus)1를 통해 기존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화의 종료를 선언하고, 비용절감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여 자국 중심으로 첨단산업 생산을 재배치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 경제블록 내에서 반도체, 전기차, 전기배터리, 의약품 등 첨단제품을 생산하고 중국, 러시아 등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에는 첨단제품 공급을 차단하여 기술 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 전략은, 바이든 시대에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바이오 행정명령’ 등으로 제도화되고 있다. 실제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와 과학법이 시행된 후 1년간 친환경 및 반도체 분야에서 110건의 투자프로젝트와 더불어 2,240억 달러(약 310조원)가 미국 제조업에 투자되었다. 이 중 한국은 555억 달러(72조원)를 투자하여, 바이든의 대선 출마 선언 때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2. 탈달러 흐름

제2차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미국 주도 세계질서가 신냉전으로 파편화되고 경제적 분리가 가속화되면서 비동맹 중립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했으나, 이에 동참한 나라는 52개국에 불과하고 다수는 러시아를 지지(12개국)하거나 중립(127개국)을 지켰다. 특히 127개국은 국익에 따른 실리적 접근을 취해 어느 편에 서는 것을 거부했다. 이렇게 실용적으로 거래하듯(transactional) 중립을 지키는 주요국을 T25(멕시코, 이스라엘, 모로코, 알제리, 튀르키예, 베트남, 카타르,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페루, 이집트, 태국, 남아공화국, 필리핀, 칠레, 나이지리아, 브라질, 싱가포르,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리비아, 아랍에미리트 등)라고 하는데 이들은 전 세계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22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21개 아랍연합 국가의 정상들과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등 8개 영역에서 공동행동을 기초로 운명공동체 구축을 합의했다. 아랍국가 정상회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쿠웨이트, 지부티, 팔레스타인, 카타르, 코모로, 모리타니아, 이라크, 모로코, 알제리, 레바논 등의 정상과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더불어 중국의 중재로 오랜 숙적인 사우디아리비아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합의한만큼 시리아, 예멘 등까지 연관된 중동분쟁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과거 중동의 패권국이었던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하고 있다.

또한 국제결제에서 탈달러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시스템(SWIFT)에서 차단하며 미국과 서방 은행에 있는 러시아 외환보유고 3,000억 달러를 동결했고, 에너지 수출을 제재했다. 이에 러시아는 중국, 인도 등에 에너지 수출을 확대하면서 위안화결제시스템(CIPS)2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2023년 3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 간 교역의 2/3 이상이 위안화와 루블화로 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가 오히려 달러패권에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더해 다른 나라들도 언젠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달러 의존을 축소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 협정을 통해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데 외환관리국은 2023년 상반기 중국의 대외 결제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48.6%로 달러화 비중 46.8%를 앞섰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동,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국제 무역에서 위안화 또는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빠르게 증가하며 달러 패권이 약화되고 있다.

3. 브릭스의 부상

최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패권적 보호무역 강화’, ‘보건·기후위기·평화·이민·불평등 문제 방치’, ‘UN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반대’ 등으로 국제 리더십이 추락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미국의 방해로 상소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IMF와 세계은행은 미국의 입장만 대변하여 방향을 잃었으며, 미국은 글로벌 공동의 번영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

반면 브릭스(BRICS)는, 남반부 국가들의 권익을 대변하며 미국의 단극 패권에 반대하고 다극 질서를 추구하면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림 2] 브릭스 11개 가입국 / 자료: brunchstory에서 발췌
[그림 2] 브릭스 11개 가입국 / 자료: brunchstory에서 발췌
[그림 3] 브릭스 5개국과 G7 간 명목 GDP 비교(%) / 자료: 통계청에서 재작성
[그림 3] 브릭스 5개국과 G7 간 명목 GDP 비교(%) / 자료: 통계청에서 재작성

2023년 제15차 정상회의에서 확장된 브릭스 11개국은 세계 인구의 47%, 세계 석유 생산량의 48%를 차지한다. 또한 세계 GDP 규모에서 29%(구매력 기준은 37%)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 명목 GDP 규모에서 기존 브릭스 5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8%에서 2020년 26%로 증가하여 G7(동기간 66%에서 46%로 하락)을 추격하고 있다. IMF는 2028년까지 브릭스(5개국)의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가 33.6%로, G7의 27.8%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브릭스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세계은행 및 IMF의 대안으로, 회원국들의 공동출자를 통해 2015년 상하이에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을 창립했다. 이는 최초로 개발도상국이 설립한, 개발도상국을 위한 은행으로 유엔 회원국까지 문호를 개방하고 있으며 곧 전체 대출의 30%를 회원국 화폐로 대출할 예정이다. 현재 브라질 전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가 총재를 맡고 있고, 자본은 1천억 달러이다.

브릭스의 부상으로 미국과 G7의 경제패권은 크게 약화되는 반면, 자주적이고 호혜평등한 관계의 다극체제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브릭스 국가들이 추진할 경제발전은 서방 주도의 모델에 비해 여러모로 건전해보인다.

첫째, 브릭스 국가들은 실물경제에 기반하고 있어, 지대추구 금융경제에 기반한 미국과 서방보다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브릭스 11개국은 러시아·중동 국가의 석유·가스·광물, 브라질·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산업기반, 중국·러시아의 자본과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G7은 금융경제에 기반하여 천문학적 정부 부채와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 등으로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

특히 11개국으로 확장하여 최대 석유 소비국인 중국에 더해 핵심 산유국들을 포괄하게 된 브릭스는 세계 석유 생산과 소비를 좌우할 수 있다. 현재 물가상승을 억제하려는 미국·서방의 증산 요구와 달리,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브릭스 회원국들은 감산으로 유가를 조절하고 있다. 또한 최대 석유 수입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어 위안화 결제가 확대되는 등 석유 시장의 주도권이 브릭스로 넘어가고 있다.

둘째, 11개국으로 확대된 브릭스는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을 포괄한 거대 시장이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있더라도 브릭스에서 교역이 보장되면 G7의 경제블록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지리적으로도 북극항로, 국제남북운송회랑, 일대일로 구상의 동서회랑, 페르시아만, 홍해, 수에즈 운하 등 주요 교통로를 포함하고 있어 무역을 주도할 수 있다.

셋째, 브릭스 경제권의 협력으로 회원국들은 경제의 내재적 발전이 가능해졌다. 대개 브릭스 국가들은 식민지로 수탈을 당했고 다국적기업의 요구에 따라 원자재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 편향된 수출로 내재적 발전이 지체되었던 국가들이다. 이제 브릭스 국가 간 협력으로 사회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1·2·3차 산업의 균형을 이루면, 그 기반 위에서 특화된 산업을 집중 발전시킬 수 있다.

그간 개도국들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요구에 따라 유가를 조절하고, 자원을 수출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그들의 기술과 자본에 종속되어 글로벌 공급사슬의 밑바닥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달러 체제 아래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에 종속되어 상시적인 환율 불안정을 겪었고, 자본자유화로 금융과 기간산업이 장악되어 신자유주의 지대추구 경제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브릭스에서 호혜평등한 무역이 보장되고 기술과 자금이 지원된다면, 국가 간 자립적인 경제발전 가능성이 열린다.3

넷째, 브릭스가 향후 새로운 공동화폐를 만들 경우, 달러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브릭스의 거대 시장과 다양한 상품·원자재 거래는 회원국들의 지역통화로 이루어질 것이고 페트로 달러는 힘을 상실할 것이다. 달러 체제를 대신할 모델은 시대적 요구인바, 러시아,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시리아, 북한 등이 금융제재를 받으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고, 중국은 위안화결제시스템(CIPS)과 디지털 화폐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통화 사용 확대와 디지털 통화 등 신기술의 발전은 브릭스를 필두로 달러에 맞선 복수의 기축통화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1)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2023년 4월 27일 워싱턴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경제 리더십 회의 중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제 중에 언급한 개념이다. 이는 작은정부를 지향하며 IMF, WTO, UN 등 국제기구를 통해 국제경제 질서를 추구하던 신자유주의와 달리, 정부가 주도하여 보조금과 중국 제재 등 보호무역 정책으로 미국에 첨단산업을 유치하여 부흥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프렌드쇼어링을 구축하고 UN이나 WTO가 아닌 미국 중심의 새로운 법과 룰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2) CIPS(위안화 결제시스템)는 2022년 말 103개 국가, 1,280개 은행이 사용하고 있다.

3)김정호. "국제 이중권력의 성립과 다극질서의 진입." 울산함성,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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