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두산중공업의 손배가압류에 저항해 분신한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의 손배 청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 열사”...

한 금속노동자가 손배가압류 폭탄에 희생된 열사의 이름을 불렀다.

“KBS 사장이 바뀌었다. 다시 과거처럼 방송국 로고를 가리고, 돌팔매 맞으며 취재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KBS 방송노동자는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에 분노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즉각 공포의 절실함이 묻어나는 단적인 예다.

▲ 노조법·방송법 즉각 공포! 거부권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대회 ⓒ뉴시스
▲ 노조법·방송법 즉각 공포! 거부권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대회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에 대한 거부권을 만지작거린다.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두 법안은 아직 공포 전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공공연히 예상된다.

지난 16일, 민주노총은 노조법 개정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1,013명 전화면접조사(CATI)를 실시했다. 노동조합법 2조 개정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했다’는 의견이 77.4%로 ‘필요하지 않았다(14.4%)’의 5배가 넘었다(모름·무응답 8.1%).

대통령의 거부권에 대해선 ‘부적절하다(63.4%)’는 의견이 ‘적절하다(28.6%)’의 2배 이상이었다.

▲ 노동조합법 2조 개정 필요성 인식 ⓒ민주노총
▲ 노동조합법 2조 개정 필요성 인식 ⓒ민주노총

20일, 광화문 세종대로엔 “노조법·방송법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재영 목사(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이곳 동화면세점 앞에서 개정 노조법의 즉각 공포를 요구하며 8일 째 단식 중이며, 릴레이 동조 단식도 이어지고 있다.

“거부권 행사 시 총파업, 퇴진투쟁”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노동자를 핍박하고 말살했던 노조법을 개정하라는 온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는 정권, KBS에 낙하산 사장을 꽂고 옳은 소리 하는 방송에 국가폭력을 일삼는 정권”이라 규탄했다.

윤 직무대행은 “1년 6개월 만에 온 나라를 거덜 낸 윤석열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국정농단 세력을 응징했던 광화문광장에 다시 모였다”면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총파업, 퇴진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손배가압류에 희생된 배달호 열사, 쌍용자동차 노동자, 그리고 ‘진짜 사장 나와라’는 택배노동자들의 절규를 기억하자”는 그의 외침에 택배노동자가 화답했다.

진짜 사장인 택배업체 사장과 직접 교섭하지 못하고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노조법의 당사자 택배노동자들이 이날 투쟁대회에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이날 하루 전면 파업을 수행 중이다.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 테이블에 진짜 사장이 나오기는커녕, 택배사들이 택배요금 인상의 수혜를 누릴 때 노동자들은 물량 감소로 70~100만 원의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단협에 있는 최저물량 기준을 지키지 않는 우체국, 잇따른 과로사에도 대책 없는 쿠팡CLS 등을 규탄하며 파업 결의대회도 열었다.

원경욱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 포항지회장)는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에 손배 폭탄을 날리며 노조의 저항력을 없애고 노조탈퇴를 종용하는 자본과 정부”를 규탄하곤 “특수고용, 비정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길은 노조법 개정뿐”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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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장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또 한 명의 노동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도 무대에 올랐다.

2021년 10월, ‘국민건강보험 소속기관 직접 운영’이라는 사회적합의 이후에도 콜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 하청노동자로 일한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20일 차 총파업 중이다.

20일 차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이은영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장은 “공단은 합의 후 2년 동안 정부 가이드라인만 읊어대다가, 결국 노동자 해고안을 들이밀었다”면서 “진짜 사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결의를 밝혔다.

대통령이 노조법 개정을 거부하는 이유는 ‘재벌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용우 변호사(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집행위원장)는 “개정된 노조법의 핵심은 ‘원청 사용자 책임’”이라며 “원청 책임을 하청업체가 마다할 이유가 없고, 노조법 개정에 반대하는 건 극소수 원청 자본”이라 꼬집곤 “법안 거부는 자본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뜻”이라고 규탄했다.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을 물어야 할 시간”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현재 9~11명, 여야 추천) 구성을 21명으로 늘리고, 늘어나는 인원에 대해서는 국회, 시청자위원회, 관련 학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이 추천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또한, 공영방송 사장은 100명의 국민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정권, 권력의 편이 아닌 시민의 편에서 언론자유를 보장받는 법”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개정 방송법에 대해 공공연히 반대하고 대통령 거부권을 요구하는 상황.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KBS 사장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하루아침에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진행자가 바뀌고,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면서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가 노골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 본부장은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야 할 시간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시간”이라며 “노조법과 방송법 즉각 공포는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변호사·노무사·교수·연구자 1,000인 기자회견 ⓒ노동과세계
▲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변호사·노무사·교수·연구자 1,000인 기자회견 ⓒ노동과세계

한편,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노동·시민·사회·법률·인권 등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매일 저녁 문화제와 노숙농성 등을 진행하며, 대통령 거부권 저지와 노조법 개정안 즉각 공포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오전엔 변호사·노무사·교수·연구자 1,000인이 대통령실 앞에서 노조법 2·3조 즉각 공포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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