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이후 노선 변경 14건, 사실과 달라
용역업체, 종점 변경 주도했다면 조사도 않고 제안한 셈
국토부 '전면 공개'한 자료엔 비용산정 비교 내역 없어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통령 부부 땅 의혹을 둘러싼 정부의 해명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의혹 해명은 “양평 고속도로 종점을 누가 왜 어떻게 변경했냐?” 만 밝히면 될 일이다. 이런 간단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이유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의 ‘타조 증후군’ 때문으로 보인다.

타조 증후군이란? 평야에서 맹수나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의 행동을 두고 생겨난 말.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대응 및 해결을 하려 하지 않고 현실부정 속에서 문제 대응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해 나중에 심각한 화를 입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왜 갑자기 변경했나?

“고속도로 종점을 왜 갑자기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땅 쪽으로 변경했을까?”

야당은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한 이후 시작점이나 종점 변경 사례는 흔치 않다”라며, ‘대통령 부부 땅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국토부는 “1999년 이후 고속도로 신설구간 총 24건 중 14개 노선의 시종점이 예타 이후 변경됐다”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해명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3일 밝힌 내용과 많이 다르다.

김 지사는 이날 입장발표에서 “경제성과 편의성이 높다는 이유로 노선을 변경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2012년 이후 노선의 1/3 이상이 변경된 최초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가 강조한 2012년은 ‘예비타당성 조사 후 노선의 1/3 이상이 변경될 경우에는 기재부와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총사업비 관리지침)는 규정이 생긴 시점이다.

김 지사는 2012년 이후로는 어렵게 통과시킨 예타를 다시 해야 할 가능성 때문에 노선을 함부로 변경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가 제시한 14건 중 2건은 아예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사업이고, 나머지 12건 중 11건은 2012년 이전 사업이다. 실제 2012년 이후에는 단 한 건만 종점이 변경되었는데, 노선 변경이 1/3 이하(5%)인 ‘계양-강화 고속도로’다.

결국 예타 이후 종점이 변경된 최초 사례이자, 지나치게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이라는 김 지사의 주장이 입증된 셈이다.

‘누가’ 변경을 주도했나?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 시절 타당성 용역을 맡은 민간회사가 ‘착수보고서’에서 변경안을 제안했다며 외압설을 부인한다. 하지만 용역업체가 노선변경을 주도했다는 국토부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타당성 조사 용역’은 이미 통과된 기재부의 예타안을 기반으로 더 정밀하게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물론 용역업체도 조사과정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안할 수 있지만, 최종보고 또는 최소한 중간보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김 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기재부가 확정한 ‘예타안’에 대해 55%나 변경하는 대안을 민간업체가 ‘착수보고서’에서 제안할 수는 없다.

‘착수보고서’는 용역업체가 조사 시작 전 단계에서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 때문에 국토부의 주장 대로면 용역업체가 조사도 하지 않고 변경안부터 제출한 셈이다.

민간 용역업체가 단독으로 1조 7천억 규모의 국가사업 변경을 주도했다는 국토부의 주장은 오히려 그 어떤 외부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떤 근거로’ 변경이 이뤄졌는가?

변경안이 원안보다 낫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만 있을 뿐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국토부가 ‘전부 공개’했다는 자료를 아무리 살펴봐도 노선의 경제성을 검토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사비, 보상비 등 세부 비용산정 자료는 없다.

비용에 대한 자료는 ‘시기별 총사업비 산출표’ 단 한 장뿐이다. 기존 ‘예타안’보다 총연장이 2km나 늘어나고, IC 1개까지 추가됐는데 사업비는 고작 140억 원만 늘었다. 그마저 산출 근거가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해 김 지사는 국토부 공개자료를 근거로 원안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원안 노선의 단점으로 전원주택, 펜션 등을 많이 통과해서 민원이 우려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런데 국토부 공개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반대다. 원안 노선은 1,744세대 3,651명이 거주하는 4개 마을을 지나가는 데 비해, 대안 노선은 8,570세대, 18,130명이 거주하는 10개 마을을 지나간다. 원안보다 다섯 배가 많다. 국토부 자료로 볼 때 더 많은 민원이 우려되는 노선은 대안 노선, 즉 변경안이다.”(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관련 입장발표 2023.08.03.)

김 지사는 이날 “과정이 불투명하고 특혜 의혹이 있는데 누가 결과를 수용하겠냐”라며 종점 변경안을 반대했다. 이어 “국민적 의혹에 휩싸인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의와 공정을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와 박탈감을 남길 것”이라며, “기재부 예타에서 비용, 수요, 편익 등이 검증된 원안(양서면) 추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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