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사가 잡으러 온다"
검찰의 순사질, 일제강점기만큼이나 악랄
독재검찰의 '법폭'을 멈추려면?

어릴 적 내가 울거나 떼를 쓰면 할머니는 곧잘 “순사가 잡으러 온다”라고 했다. 반골 기질이 넘친 나는 ‘순사’ 소리가 나오면 더 말을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할머니에겐 순사가 공포의 대상일지 몰라도, 해방 후 한 세대가 지나서 태어난 필자에겐 종이호랑이만도 못한 존재였다.

할머니는 별 효험이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순사’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할머니에게 순사라는 존재가 뼈에 사무칠 만큼 공포였던 모양이다.

순사(巡査)는 순라사찰(巡邏査察 じゅんらささつ)의 준말로 경찰 업무의 하나인 순회하면서 사찰하는 기능을 강조한 단어다. 일제강점기 경찰을 통틀어 순사라고 불렀다.

당시 순사가 저지른 만행은 잔인하고 끔찍했다.

남편을 이유 없이 끌고 가서 취조하는 동안 아내를 겁탈하는 일도 있었고, 빨갱이를 숨긴 게 아니냐며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걸핏하면 순시를 명분으로 가정집 사찰을 일삼으니, 이를 피하고자 죄가 없어도 자진해서 뇌물을 바쳐야 했다. 그러지 않아 순사에게 찍히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꼬투리를 잡아 집안을 수색하고, 마구잡이로 구속해 취조와 고문을 들이댔다.

순사의 생각이 곧 법이고, 순사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처벌이 이루어지던 세상이었다.

이렇게 일제는 순사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고, 순사에 겁먹게 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지배했다.

그런데 그 악명 높던 순사가 우리 사회에 다시 등장했다. 순사 대신 검사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 검찰의 압수수색 청구 건수는 연간 39만6671건. 하루에 1000건이 넘는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가 법원으로 향하는 셈이다. 10년 전인 2011년(9만5123건)에 비해 400%로 늘어났다.

검찰의 표적이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는 332번 압수수색이 이루어졌고, ‘건폭’으로 몰린 건설노조 조합원은 1000여 명이 줄줄이 소환조사를 당했다.

최근 검찰의 순사질은 일제강점기 때만큼이나 악랄하다.

순사가 그랬던 것처럼 우선 압수수색부터 해서 죄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한번 해서 안 나오면 범죄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을 계속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식이다.

범죄행위가 발견된 피의자를 소환조사하는 게 아니라 건설노조처럼 정권의 눈 밖에 난 표적 집단을 마구잡이로 소환해 피의자를 양산하는 체계이다. 피의자가 되기 싫으면 입 다물고 정권에 고분고분해지라는 압력 행사나 다름없다.

특히 피의사실을 먼저 언론에 유출해 수사 전 단계에서 미리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해 놓고 시작한다.

‘송영길 돈 봉투 사건’이 전형적이다. 프랑스에 머물던 송영길 전 대표는 이미 한 달 반 전에 '대표가 되기 위해 돈 봉투를 돌린 비리 정치인'으로 낙인됐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소환조사 따위는 뒤로 미뤄도 된다. 비리 정치인으로의 낙인만으로 검찰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검찰은 송 전 대표에 대한 언론의 마녀사냥을 더 즐긴 후에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더 황당한 현실은 이 모든 것이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꾸며진다는 사실이다.

‘법대로 한다’는데 뭐라 항변할 수도 없다. 저항했다간 법치에 대한 도전이라고 역풍 맞기 십상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말살한 순사는 해방이 되어 조선 총독을 끄집어 내리고서야 사라졌다. 그 직전까지 순사는 생존을 위해 더욱 지독하게 날뛰었다. 마찬가지로 나날이 포악해지는 독재검찰의 ‘법폭’도 윤석열 정권이 퇴진해야 끝장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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