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질서 변화와 미국 패권 몰락에 대한 지정학의 무지
2. 미국의 지배전략과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에 대한 무지
3. 검찰독재의 맹신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
4. 한국 민중의 항쟁 전통에 대한 무지

윤석열 정권은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판단하는 것 같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하는 신냉전 체제가 냉전 때처럼 미국의 승리로 결론 날 것이다.

둘째, 미국이 하라는 대로 일본과 손잡고 러시아를 공격하고, 탈중국을 실현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무너트리고 윤 정권을 지켜줄 것이다.

셋째, 검찰독재를 앞세워 행정부를 장악하고, 임기 내 14명 중 13명의 대법관을 교체해 사법부를 통제하고, 내년 총선에서 야권 분열을 통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영구집권이 가능할 것이다.

넷째, 건설노조 탄압을 필두로 민주노총의 투쟁력을 무너트리고 시민사회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등 공포정치를 가하면 민중이 겁에 질려 ‘정권 퇴진 투쟁’을 중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류다. 그리고 이는 윤석열 정권의 치명적 실수로 남을 게 분명하다. 이런 오류로 인해 윤 정권은 국내외 지지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고 저들의 소원인 총선 과반의석 확보도 결국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국제질서 변화와 미국 패권 몰락에 대한 지정학의 무지

지난달 20일 G7 정상이 히로시마에 모여 ‘경제적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을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한 대응이다. 이에 중국은 다음날 곧바로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을 제재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미국 백악관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동맹국들과 함께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는 탈중국화(중국과의 탈동조화)에 동참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유럽연합 장관 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목표는 중국과의 탈동조화가 아니라 단지 위험 해소(디리스킹)일뿐”이라고 명확히 했다.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인도, 브라질 등 브릭스 국가는 물론이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 나토 국가들조차 지난 1년 러시아와의 교역량이 전쟁 전보다 더 늘어났다. 미국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고 자랑하던 일본도 미국의 대러 제재 이후 교역량이 오히려 늘었다.

국제질서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또 다른 사례는 전통적인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탈미’ 행보를 들 수 있다.

사우디는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앙숙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고,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도 가입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유 증산을 요청했으나 사우디는 이를 계속 거부했고,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4월 오히려 감산을 결정해 미국에 반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G7은 구매력 기준 GDP 총합에서 브릭스에 역전당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 플러스는 24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세계인구 50%를 훌쩍 넘는 수치다. 특히 이들 브릭스 국가 간 중앙은행을 통한 무역 거래를 시도하고 있어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 지위를 흔들고 있다.

이처럼 국제 사회가 ‘탈동맹, 국익우선’에 맞춰지면서, 바이든 미 행정부가 강조하는 ‘자유 가치동맹’은 힘을 잃었다. 자연히 100여 년을 유지하던 미국의 세계 패권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지정학을 읽지 못하면 결국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2. 미국의 지배전략과 핵무력을 완성한 북에 대한 무지

미국이 겉으로는 ‘자유’라는 이름의 가치동맹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동맹국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만 살겠다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한 미국. 미국의 IRA 발효로 현대차 가격은 최대 400만 원까지 비싸졌다.

또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중국은 ‘우려 대상국’에 지정됐다. 이로써 삼성과 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은 중국과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 이상 거래가 금지된다.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지 말라는 소리다.

지난 5월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회사를 제재했을 때도, 미국은 한국 반도체 업체가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강박했다. 미국은 한국 반도체가 마이크론을 대신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정간섭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원자력 기술 수출도 마찬가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제기한 지적재산권 소송에서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수출할 때 앞으로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수출이 확실하던 폴란드 원전 4기를 웨스팅하우스가 가로챘고, 체코에는 아예 수주조차 넣지 못했다. 나아가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을 통제했고, 이집트 수출길에도 장애를 조성했다.

한편 북한의 핵무력 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는다.

‘전쟁 그 자체가 적’이라며 전쟁을 막는 데 집중하던 북이 최근 미 본토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언급하자, 미국은 겁에 질린 모양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온통 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 본토를 지키는 데 맞춰졌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한 몸처럼 만들어 미 본토 방위를 위한 전초기지로 이용하려 든다. 미국이 한일 관계 개선을 그토록 종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핵무력을 완성한 북은 끊임없이 전장을 미 본토로 옮기려 하고, 미국은 한국을 MD체계에 편입해 ‘대포밥’으로 삼으려 한다.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핵 공유’를 애원했지만, 미국은 본토 방위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동맹국의 안보 요청 따위가 다급해진 미국의 고려 사항일 리 없다.

오히려 동맹국의 안보를 걱정하는 척하며, 이를 핑계로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게 미국 외교의 민낯이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미국 무기’만 18조 원어치를 구매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의 7배에 달한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면에서도 국익이 아니다. 미국을 맹신하다가 핵무력을 완성한 북의 변화된 위상을 못 보는 청맹과니가 돼버린 윤 정권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3. 검찰독재의 맹신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에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했다. ‘3개월 동안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경질 사유라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제청하고 윤 대통령이 직접 재가한 국정원 1급 보직 인사 8명이 일주일 사이에 번복됐다. 국정원 역사상 초유의 사태다. 사태의 발단은 ‘보직 인사들의 신상’이 담긴 투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다. 인사에서 공식 체계보다 핫라인을 더 중시하는 행태를 그대로 보여 준다.

6월 말 국세청도 고위공무원 인사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6월에만 1급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 줄을 잇는다. 행정부 내에 1급 공무원은 300명가량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인사 검증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운영되는 인사정보관리단이다. 인사정보1담당관에 이동균 부장검사가 임명됐고, 부부장급 검사 2명도 배치됐다.

검찰 조직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는 인사권 전횡을 통해 행정부를 장악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에 의한 사법부 통제 논란은 윤 대통령이 최근 대법관 2명을 임명하는 과정에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8명의 후보 중 특정 성향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겁박함으로써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임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 대통령 임기 내에 14명 대법관 중에서 13명이 교체된다는 사실이다. 대법관이 교체될 때마다 이런 전횡을 부리지 말란 법 없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고 나면 윤석열 정권의 다음 목표는 입법부다. 윤 정권은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선관위 길들이기에 들어갔다.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하며 선관위원 전원 사퇴와 감사원 감사 수용을 촉구했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해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녀 특채 의혹만으로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공포정치다.

정권 편에 줄 서지 않으면 언제든, 누구든, 어떻게든 처벌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는 총으로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장악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검찰독재는 법치를 앞세워 국가권력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 하지만 검찰독재도 과거 군사독재의 운명과 다를 수 없다. 단지 독재 권력만이 자신의 운명을 모를 뿐이다.

4. 한국 민중의 항쟁 전통에 대한 무지

한국 민중은 반동적 민주주의 퇴행을 결코 두고 보지 않는다. 독재정권의 공포정치에 주눅들지도 않는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통이다.

윤석열 검찰독재는 언론을 통제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싶어 한다.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 거부가 그 시작이었다. 148개 언론사가 똑같이 '이 XX 바이든' 표기를 달아 보도했지만, MBC만 콕 찍어 왜곡·편파 보도를 했다며 취재를 제한했다.

한동훈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며 MBC 기자의 아파트를 압수수색 한 데 이어 언론사의 모든 정보가 든 뉴스룸까지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댔다. 한 마디로 “쫄리면 뒈지시던지?”(영화 ‘타짜’의 대사)다.

MBC에 이어 KBS도 ‘시청료 분리 징수’로 겁박해 길들이기에 들어갔다. 방통위를 언론 통제 기구로 전락시킬 계책을 꾸미는 중이다. 임기가 남은 방통위원장을 파면하고,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를 그 자리에 앉히는 절차가 언론장악의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재는 정치가 아니다. 그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일 뿐이다. 윤석열 검찰독재는 아예 정치를 포기했다. 오로지 법치를 앞세운 압수수색만 난무한다.

야당 대표의 신상을 300번 넘게 압수수색하고, 야당 중앙당사와 시도당 사무실, 그리고 국회 야당 의원실까지 수시로 압수수색 하는 정부가 야당과 협치를 논하기엔 스스로 민망할 것이다.

그 때문일까.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넘도록 과반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을 통틀어 역대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야당을 범죄집단으로 여기는 윤 대통령이고 보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취임 초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는 나의 신념이다. 국정 운영의 중심은 의회다. 나는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긴밀히 논의하겠다.”라고 한 헛된 말을 믿은 게 잘못이다.

압수수색을 앞세운 검찰독재의 공포정치는 노동계 탄압에서 정점을 찍었다.

화물연대에 이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최근 건설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탄압은 끝없이 이어진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의 제1권리인 노조를 완전히 악마로 치부한다.

급기야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마저 통제하기 시작한다. 야간 집회를 불법으로 몰아 ‘퇴진 촛불’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을 보증하는 전도사 노릇에 열심이다. 핵 방사능 피폭을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괴담으로 몰아 관련자를 압수수색 할 판이다.

윤석열 정부는 거대한 검찰 조직으로 변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압수수색 공화국이 되었다. 역대 수많은 독재정권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지독한 독재는 처음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국민이다. 마치 독재정권을 관망하는 듯 보이지만 거대한 파도가 되어 삽시간에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이것이 한국 민중의 항쟁 전통이다.

미군정에 맞서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봉기한 제주4.3을 시작으로 이승만 경찰독재는 4.19혁명으로 물리쳤고, 박정희 군사독재는 부마항쟁으로 끝장을 보았다. 5.18광주에선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총을 들었고, 87년 6월항쟁 때는 군사독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한 박근혜 국정원 독재를 촛불로 탄핵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빛을 발하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았음이니, 장담컨대 곧이어 독재자 앞에 독배가 놓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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