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밖에 안 된 정부에 퇴진은 가혹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이미 싹수가 노랗다. 정권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6개월이면 충분하다. 더 기다려 봐야 민중의 고통만 더할 뿐이다.

윤석열을 반대하지만 섣불리 퇴진 구호를 들었다가 일이 성사되기도 전에 역풍을 만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미 생사존망을 건 싸움은 시작돼 버렸다. 판갈이 싸움에 어물쩍대다간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지기 십상이다.

윤석열 퇴진투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 중엔 ‘죽 쒀서 개 주는 꼴’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죽을 쑤는 주체가 다름 아닌 민중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민중과 함께하는 투쟁을 주저하는 순간 헤게모니를 잃게 된다.

돈이 권력이 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인의 호불호가 갈린다. 우리 사회는 이미 친윤 30%, 반윤 60%로 양분되었다. 반윤 세력이 총결집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각개약진하면 각개격파 되고 만다. 각개약진을 경계하는 이유다.

윤석열에 퇴진을 명령한 이유

윤석열에 퇴진을 명령한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정치는 군부독재에 버금가는 검찰독재를, 경제는 위기를 넘어 민생파탄을, 외교는 미국에 굴종도 모자라 일본에 굴욕을, 군사는 외세에 빌붙어 전쟁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만 해당해도 탄핵감이다. 물론 특별히 잘하는 분야가 있다면 나머지 잘못을 상쇄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모든 것을 빠짐없이 최악으로 만들었다.

윤석열의 검찰은 ‘법 만능주의’를 앞세워 정적을 제거하는 독재의 수단이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퇴임하자, 검찰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룰라를 흠집 냄으로써 독재 정권을 유지한 것과 같은 행태다.

‘누구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는 명분을 앞세워 야당을 탄압하고,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유포해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런 윤석열식 검찰독재는 군부독재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윤석열의 경제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매판적이다.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 고금리로 인한 부채 위기 등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지만, 윤석열 정부는 세계 경기를 탓하며 어쩔 수 없단다. 미국이 조장한 공급망 파괴와 고환율로 인해 무역적자가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자국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동맹국을 착취하는 미국의 횡포에 그저 눈만 끔벅일 뿐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사태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대 정부가 미국에 굴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몰락기에 접어든 미국의 패권 연장을 위한 국제질서 재편에 집행 담당자를 자임한 정부는 윤석열이 유일하다. 윤석열의 외교는 국익은 고사하고 일본에까지 굴욕 외교를 펼쳐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길을 터주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말로라도 ‘전작권 환수’를 언급조차 않는다. 자기 나라 군대를 지휘할 권한도 없으면서 대북 선제타격을 운운하며 전쟁위기를 고조해 일본의 재무장을 돕는다. 미국의 대중국 군사 압박에 편승함으로써 대만을 비롯한 동북아 분쟁에 한반도는 타격 과녁이 되고 말았다.

이밖에 윤석열 정부가 지난 6개월간 보여준 퇴물·검사·비리 내각으로 인한 인사 참사, 꽃다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태원 참사, 욕설과 굴욕 언론 배제로 점철된 외교 참사, 박물관에서 부활한 공안몰이, 유신 시절에도 못 했던 제1야당 당사 압수수색, 화물연대 파업에 계엄선포에 가까운 ‘업무개시명령’ 등 윤석열의 퇴진 사유는 차고 넘친다.

윤석열 퇴진은 체제전환 투쟁

임기 말 박근혜 정부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였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백남기 농민의 물대포 피격 사건, 최순실의 국정농단 등 이명박근혜 10년 동안 쌓이고 쌓인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었다. 게다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도 일찌감치 분열했다. 박근혜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렇지 않다.

분단체제와 미국의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가 흔들리면서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태동했다. 그 시점에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것을 제1 사명으로 삼는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현재를 지키려는 보수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동에 가깝다.

요컨대 박근혜 퇴진이 대통령을 바꾸는 정권교체 투쟁이었다면, 윤석열 퇴진은 분단 지배 질서와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제전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반윤투쟁을 조직하자

‘윤석열 심판이 맞냐, 윤석열 퇴진이 맞냐?’ 하는 구호 논쟁을 할 새가 없다. 촛불행동이 제안한 ‘윤석열퇴진범국민운동본부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층 논의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지역과 현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분노를 모아 아래로부터 반윤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렇게 기층이 발동된 투쟁만이 70년 분단지배체제를 끝장내는 강고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어쩌면 2024년 총선 준비를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의 검찰 독재를 그대로 둔 채 결코 야당의 총선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설사 당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선거법을 손에 쥔 정치 검찰에 의해 줄줄이 낙마할 수 있다. 저들은 그러고도 남는다. 검찰 독재가 무서워 여당에 편입하는 일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분명한 것은 반윤 투쟁 없이 총선승리는 없고, 반윤 투쟁 전면화만이 체제전환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