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장, 재산권·평등권·재판청구권 침해? “틀렸다”

8일,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을 달성했다.

지난 여름 0.3평도 안 되는 쇠창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며 투쟁했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부지회장(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 대표 청원인이 된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국민동의청원. 지난 1일 오전 9시에 시작된 청원은 노동자 시민의 폭풍 지지를 받으며 7일 만에 5만 청원 목표를 이뤘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9일 “법 개정 청원이 성사됐음”을 밝히며 향후 입법계획을 발표했다.

▲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5만 명 달성 보고 및 운동본부 향후 입법계획 발표’ 기자회견. [사진 : 노동과세계]
▲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5만 명 달성 보고 및 운동본부 향후 입법계획 발표’ 기자회견. [사진 : 노동과세계]

운동본부는 법 개정안을 마련한 이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여는 등 ‘진짜 사장 책임’과 ‘손배 폭탄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조법 개정 여론을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토론회 자리에 나온 경총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에 동의하는 국민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용자들의 기존 논리를 읊조리고 갔다.

“운동본부의 노조법 3조 개정안은 헌법상 재산권, 평등권,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규정의 기본원리에 위배된다”, “불법행위에 대한 해외 입법례가 없으며,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등을 주장했다.

▲ 1일 국회에서 열린 노조법 3조 개정 토론회. [사진 : 노동과세계]
▲ 1일 국회에서 열린 노조법 3조 개정 토론회. [사진 : 노동과세계]

정부와 경영계, 보수언론이 주창하는 노조법 개정 반대 이유를 운동본부 정책법률팀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손배가압류는 기업의 경영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정부와 재계는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가압류 신청이 기업의 경영경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운동본부는 “차별적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신청은, 사용자의 재산권을 보전하는 수단이라는 기존의 목적과 달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고 꼬집는다. 이미 여러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고 와해시킬 목적,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위협과 회유 목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신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도 짚어냈다.

사내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작성되어 사회적 비난을 샀던 삼성그룹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 유성기업의 2011년 “유성노조 가입확대전력 문건” 및 “향후 징계절차 진행 및 유성기업노동조합 조합원 확보방안 문건” 등에는 고액의 손해배상 청구 등을 계획하고 이를 노동조합 탄압의 공식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

위 문건들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노동조합의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로 만든 뒤 노조해산을 유도하고, 주동자에 대한 선별적인 고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노조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고 손해배상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에게 압박감을 줌으로써, 조합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결국, 노동조합을 와해하고 헌법을 통해 근로자의 최소한의 권리로 명시된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빼앗는 무기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용자의 재산권 보호에 치우쳐, 근로자가 노동3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본부는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3권의 행사를 제한하지 않되 사용자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하는 새로운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 제한 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재산권과 손해배상청구권(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정부와 재계는 노란봉투법은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원칙과 배치되며,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운동본부는 현행 노조법 2·3조에 근거를 들었다. 현행 노조법 제2조는 ‘쟁의행위’라 함은 “파업·태업·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하여, 쟁의행위가 기본적으로 기업에 손해를 끼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현행 노조법 제3조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해 기업의 재산권이 절대적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

운동본부는 “노조법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용인하는 이유는, 헌법상 노동3권을 구체적인 권리로 선언했기 때문이며, 이는 노동 영역에서는 민법의 손해배상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며, “여당과 보수진영의 논리대로라면 노란봉투법 이전에 현행 노조법도 기업의 재산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평등원칙에 반한다?

정부와 재계는 “법은 노동자의 편도, 사용자의 편도 아니어야 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평등을 통한 정의 실현이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음을 전제로 노동3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운동본부는 2010년 4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그 예시로 들며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0.4.29. 헌법재판소(2009헌바168 결정)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고, 단체행동권에 대한 어떠한 개별적 법률유보조항도 두고 있지 않으며, 단체행동권에 있어서 쟁의행위는 핵심적인 것인데,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업무의 지장 초래가 당연히 업무방해에 해당하여 원칙적으로 불법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중략)”

쟁의행위는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는 것?

정부와 재계는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법률관계라기보다는 기본원칙에 벗어나 예외로 특별하게 보호되는 권리”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운동본부는 “어디까지나 민법 중심적인 사고에서 접근하는 공론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도 이미 변경된지 오래”라는 것.

대법원은 2011년 3월 전원합의체는 종래 대법원 판결을 변경했는데, 대법원은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야,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했다(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운동본부는 “대법원의 변경된 판례에 따라,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적법행위이므로, 손해배상에 대하여도 불법행위임을 전제로 한 기존의 쟁의행위 정당성 요건은 변경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스탠다드? 해외 입법례가 없다?

2017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이사회 보고서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적시하며 노동자 파업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권고했다.

2017년 10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손해배상 청구는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를 상대로 한 보복 조치라며, 파업권이 효과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파업권 침해에 이르게 되는 행위를 자제하고,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에 대해 이루어진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쟁의행위에 일부 폭력이 개입된 경우, 전체의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보고, 관련된 모든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독일연방노동법원은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있어 생산손실 그 자체를 손해로 보지 않는다. 쟁의행위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업으로 인한 영업 손실은 배상해야 할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 파기원(대법원)은 조합원의 책임과 노동조합 자체의 책임을 분리하여 보고 있다. 즉 프랑스 파기원은 파업 등의 단체행동에서 노동조합의 임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한 행위의 개별적인 책임만을 부담할 뿐 노동조합의 책임까지 질 필요는 없다고 하였고, 역으로 노동조합도 조합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했다.

▲ 민주노총이 ‘노조법 2·3조 개정’ 등을 요구하며 12일 전국노동자대회 10만 결집 성사를 위한 240시간 집중행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지역 순회 모습. [사진 : 노동과세계]
▲ 민주노총이 ‘노조법 2·3조 개정’ 등을 요구하며 12일 전국노동자대회 10만 결집 성사를 위한 240시간 집중행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지역 순회 모습. [사진 : 노동과세계]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끝나고 법안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노조법 개정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노조법 개정을 정기국회 7대 입법과제로 선정한 반면 정부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야당이 통과시키려는 노조법 등 일부 법안은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거부권을 행사 의도를 대놓고 드러냈다.

지난 9월 여당 원내대표였던 권성동 의원이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보호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공산주의”를 운운하는 등 정부 여당의 입장이 알만하다.

그러나 운동본부는 연내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고삐를 당기고 있다. 국민동의청원이 달성되자마자 국회대응 사업을 더욱 본격화했다. 10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박주민 의원과 함께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공동회견을 여는가 하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청회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

국민동의청원 입법안은 국회 해당 상임위(환노위)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본회의에 회부된다. 23일 쟁점법안이 논의될 환노위 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노조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압박하는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되며, 또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각 광역시도당 앞에서의 투쟁 등 전국적 투쟁도 벌일 예정이다. 노조법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은 이미 지난달 19일 국회 앞 농성투쟁에 돌입한 바 있다.

이미 헌법이 판결했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노조법 2·3조 개정, ‘불법파업’ 운운하며 헌법보다 민법, 재산권을 앞세운 재계와 사용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 여당과의 입법 싸움.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외치는 뿔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국회 앞이 후끈 달아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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