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 주장의 오류와 한계 ②

범민련 남측본부에서 평화군축 주장이 갖고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본지에 보내와 두 편에 나누어 게재한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당면한 정세에서 한반도 군축으로 민생과 복지, 평화를 해결하자는 것은 반제자주화에 앞장서야 할 민중운동의 역할을 왜곡하고,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 운동을 가로막는 잘못된 주장”이며 “반미자주없이는 민생도, 평화도, 통일도 없다”고 강조한다.<편집자주>
①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
② 평화군축 주장이 담고 있는 몇 가지 오류에 대해

▲ 2018년 이후부터 범민련 남측본부는 각계와 함께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촉진대회'를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 2018년 이후부터 범민련 남측본부는 각계와 함께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촉진대회'를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사진-범민련 남측본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경제주의적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6.15공동선언은 교류협력의 중흥기요, 연대연합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이 시기에도 미국의 통일방해와 간섭이 여전하였으나, 남북교류협력이 전면화되면 통일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때였다. 이남 정권은 남북의 군사정치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부차시하면서 민족공조와 외세공조의 위험한 양줄타기를 반복하였다.

연북대단결에 대한 민심과 여론이 높아진 반면, 미국은 남북대화와 협력을 가로 막고 대결과 불신을 재연시킬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2002년 10월 켈리 대북특사의 방북으로 조일평양선언이행도 물거품이 되고 또다시 한반도는 핵시비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더구나 민족자주와 남북공조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이남정권의 예속적 한계는 중요 국면마다 미국의 ‘개입과 관여 전략’과 ‘비핵화와 남북관계 속도조절’에 편승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결국 정치군사문제해결을 위한 진입로에서 번번히 좌절해야 했다.

남북공동선언이 열어 준 남북연대연합의 기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거족적 통일운동, 연북대단결운동이 일정한 한계를 가지게 된 것은 통일문제해결에 대한 경제주의적 관점때문이었다. 경제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첫째는, 자주통일운동진영이 통일의 걸림돌인 외세개입과 남북의 정치군사 등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교류협력사업에 치중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둘째는, 통일문제를 민족자주에 기초한 연북대단결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해야 한다는 근본관점을 모든 계기에서 철저히 구현해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자주통일운동의 역사적 지위와 역할이 약화되고 민간통일운동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양상을 낳고 말았다. 세째는, 통일문제를 일관되게 거족적 운동의 관점과 방식으로 발전시켜 내지 못하고 이남의 요구와 실정을 앞세우며 심지어는 관변화의 경향까지 나타나 민족대단결운동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서 미국지배전략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아울러 어떤 난관과 장애가 있더라도 연북대단결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완강한 자세없이는 통일문제는 결코 진전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경험이다. 교류협력사업을 반통일요소들과의 투쟁에 결합하지 않는 것, 반미투쟁과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분리하는 것, 미군철수투쟁이 통일운동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간주하는 것 등의 경제주의적 관점은 여전히 진행중인 문제다.

평화군축 주장도 경제주의적 관점이다

반미에 기초한 평화를 내세우지 않고, 미국의 한반도지배전략의 근본 전환을 전제하지 않는 군축 주장은 당면한 한반도 대결정세의 성격과 장기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9.8)인 ‘현 단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공화국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하여'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의 핵 그 자체를 제거해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렬세하게 만들어 우리 정권을 어느때든 붕괴시켜 버리자는 것입니다,,, 미국이 조성해 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하에서, 더우기 핵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만약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환경이 변해야 합니다...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 지구상에 핵무기가 존재하고 제국주의가 남아 있으며 미국과 그 추종무리들의 반공화국책동이 끝장나지 않는 한 우리의 핵무력강화로정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라고 천명하였다.

압축하자면, 핵정책이 바뀌려면 조선(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하고, 핵무기와 제국주의 그리고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책동이 끝나지 않는 한 핵무력강화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자주통일진영의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평화군축주장을 노동과 민생을 살려야 한다는 현실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외세의 지배간섭과 적대정책이 극단적으로 지속되고 있고,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과 민생복지문제 해결을 군축과 결부시키는 것은 본질적 초점에서 벗어난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가 노동자 서민의 생존권투쟁을 절박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임단협 위주의 노동투쟁, 고용보장을 요구하면서 외세종속 재벌체제해체에 도전하지 않는 투쟁,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자고 하면서 정규직 전환에만 치중하는 투쟁, 기후정의와 4차산업혁명을 말하면서 제국주의의 수탈과 강제적 산업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저항하지 않는 경제주의적 관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결코 노동자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미군철수는 제쳐 놓고 평화군축을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은 미국의 나토동진과 우크라이나에서의 극우화 및 신나치화 그리고 오렌지혁명으로 포장된 연이은 친미쿠데타가 촉발시켰다. 그리고 G2를 넘어 세계제1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포위견제하기 위해 벌인 복합전쟁인 미국발 신냉전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파괴를 가속화시켰고, 미국우선보호주의로 무장한 제국의 자본은 달러패권의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서양동맹은 균열하고 있는 반면,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 BRICS+, 탈(脫)달러를 위한 SCO(상하이협력기구)에 사우디와 이란 등 적극 참여 등은 미국패권 쇠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세계 각국은 실리외교를 내세우며 다극화와 주권존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종식을 원하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 할수록 민생파탄과 퍼팩트 스톰의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유럽이 사는 길은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종결이 아니라 미국의 단극지배질서를 반대하고 나토의 팽창과 미국 주도의 대중대러제재를 거부하는 것이며,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익과 주권존중의 정치로 돌아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토확장전략과 인도태평양전략에 묶여 미국의 안보파트너로 묶여 버린 유럽과 대만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희생양으로 되고 말 것이다.

이남은 어떠한가. 이남경제를 덮치고 있는 3고(高) 쓰나미는 미국발 세계재앙의 하나이다. 이남사회가 겪어야 할 피해와 고통은 정치예속·달러종속·한미동맹·대기업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금융자유화·자원과 기술의 대외의존경제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결과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파괴하면서까지 미국중심의 공급망재편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다극화를 추진하면서 달러패권에서 벗어 나고, 국익이 보호되는 경제영역을 구축해 나가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게 된다.

미국주도의 대러제재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나라가 150여개국에 달하며, BRICS+와 SCO(상하이협력기구)의 부상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감산,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 등 일련의 변화되는 정세를 볼 때 세계는 이미 반미반제다극화·실리중립외교라는 새로운 질서구축에 들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남에서 노동과 민생을 구하는 방법은 진정한 민주정부수립과 자주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반미를 우회해서는 방법이 없다. 결국, 노동과 민생문제를 한미동맹을 목숨처럼 여기는 윤석열정권하에서 군축으로 풀자는 것은 현실불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의한 지배간섭을 영구화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평화 군축 주장의 몇가지 오류

첫째, 평화군축 주장은 상호자제와 양비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유지동맹이자 흡수통일동맹인 한미동맹의 실체는 주한미군이며 핵우산이다. 이것을 근원적으로 제거하자는 것이 우리민족대 미국의 대결이 향하는 종착점이다. 분단된 나라에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 나는 지름길은 우리민족대 미국의 대결구도에 따라 각계의 힘을 반미로 모으는 것이다.

핵담판에 기초한 북미간의 최종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때에 나온 평화군축주장은 사실상 적대적 평화공존론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공존이란 결국 핵대결의 당사자인 북미간에 상호자제와 협상절충을 요구하게 된다. 적대정책과 지배간섭정책에 아무런 근본적인 변화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둘째, 평화군축 주장은 민족대단결 노선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6.15공동선언이후 한반도에서의 대결구도는 우리민족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전환되었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종식시키는 가장 큰 힘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는, 즉 민족자주에 기초한 민족대단결에 있다. 민족대단결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배척하는데서 힘있는 자는 힘으로, 지식있는 자는 지식으로, 돈있는 자는 돈으로 자주통일위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자주권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평화군축 주장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하고 자주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평화공존으로 귀결된다. 결국, 평화군축주장은 민족대단결의 원칙과 목적에서 이탈한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평화군축 주장은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 구도 관점과 실천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평화군축 주장은 우리민족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희석화하게 된다. 반미없는 평화군축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다. 평화군축은 우리민족대 미국의 대결의 마지막 단계 또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우리민족의 과제는 미국을 이 땅에서 몰아 내고, 민족내정간섭을 영구적으로 중단시키고, 일체의 민족적대 민족분열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군사비를 복지로”,“전쟁비용을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전환하자”는 등의 주장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세계사적 대격동의 정세 본질에서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

▲ 2002년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며 경향각지에서 반미촛불집회를 열었다. 미국에 대한 분노가 30만 촛불을 밝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진 - 범민련 남측본부]
▲ 2002년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며 경향각지에서 반미촛불집회를 열었다. 미국에 대한 분노가 30만 촛불을 밝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진 - 범민련 남측본부]

반미자주 없이 민생도 평화도 통일도 없다

외세의 지배간섭과 적대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분단된 나라의 친미예속정권하에서 노동·민생·평화 등의 문제해결은 민족적이며 역사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일제하 노동운동이 반일민족해방의 궤도위에서 처절하게 전개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일제하 소작료인하투쟁이 반일자주독립국가건설투쟁과 함께 진행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정치경제군사주권이 예속된 나라에서 민중들의 운명 변화는 근본적으로 자주화투쟁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투쟁은 민생민권쟁취투쟁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발전된다.

미국은 현상변경세력이라 규정해 놓은 전략적 경쟁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진격작전, 참수작전, 유사시계획, 도발원점타격, 대량응징보복전략 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중국정권 붕괴전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북에 대해서는 이 모든 것을 입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막대한 자금지원으로 대북삐라살포까지 강행하고 있다.

이남경제의 기형화 예속화를 통해 온갖 차별과 억압을 만든 것은 미국의 신식민지정책이다. 이는 분단을 영구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흡수통일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위해 민족분열정책을 시도하고, 북에 대해서는 적대정책을 강압하고 있다.

미국은 독일통일을 러시아가 수용한다면 나토를 단 1인치도 동진시키지 않겠다고 속임수를 썼고, 러시아는 순진하게도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하면 나토도 해체할 것이라고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2차세계대전이후 사회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미국의 세계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트루먼 독트린과 마샬플랜으로 세계를 양분화한 이후 이 정책의 근간은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미국의 목표는 그 어떤 나라도, 어떤 지역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단극지배주의와 미국 금융자본의 영구적인 세계지배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하고 가장 많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아직도 평화수호세력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들은 여지없이 ‘악의 축’으로 취급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미국의 북비핵화는 실패했다. 북의 핵무기를 받아 들일 때가 되었고, 미국은 한반도 전쟁위험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조국통일과 한반도 평화실현은 반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자주와 대단결로 힘을 합쳐 나갈 때 비로소 실현된다.

노동자와 민족의 운명은 하나이며 반미없이 민생없고, 반미없이 정치경제군사의 자주화는 있을 수 없다.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반미를 놓지 말아야 하며, 목표가 무엇이든 이 땅에서 진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여하자면 모든 것을 반미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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