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 노조법 개정 방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90여 개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발족한 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노동조합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여론을 확산하며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목표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8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운동본부가 28일,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원청과는 교섭할 수 없으며, 파업을 하면 불법으로 낙인찍혀 수십,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가압류에 내몰리는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며 법안 개정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운동본부 정책법률팀 권두섭 변호사는 “새로운 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닌, 국회보다 앞서 판결을 내놓은 대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법안을 개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28일 노조법 개정 방안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28일 노조법 개정 방안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대법원판결 법안에 반영하자는 것”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수입으로 생활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자영업자)로 등록돼 근로계약 대신 위탁, 도급 등의 방식으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 이들은 수십 년간 자신이 노동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지난 2018년 6월 대법원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재능교육 노조)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노무제공자(학습지교사) 소득이 특정 사업자(재능교육)에게 의존하고 ▲보수를 비롯해 계약 내용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며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등을 놓고 판단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실질적인 노무제공 관계에 비추어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면서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권 변호사는 “판례가 이미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 입법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음에도 대법원까지 가서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판결을 받아와야만 하는 현실”이라며 “결국 일일이 판결을 받기까지 수년간 노조활동을 부정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고 꼬집었다. 재능교육 노조는 1999년 노조를 설립했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법원의 판결이 있기까지 9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운동본부는 노조법 2조 ‘근로자’ 정의에 “가.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나.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본다는 내용으로 개정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14일 국회 앞에서 출범식을 연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사진 : 뉴시스]
▲ 14일 국회 앞에서 출범식을 연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사진 : 뉴시스]

노조법 2조 개정… ‘진짜 사장 책임법’

노조법 2조 ‘사용자’에 대한 정의를 개정하는 것 역시 대법원 판례는 이미 존재한다.

현행 노조법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용과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결정하는 데 있어 큰 영향력을 갖는 ‘진짜 사장’을 상대로 교섭과 단체행동,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 그러나 2010년 3월,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또,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들의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택배 노동자들도 대법원으로부터 원청이 사용자 지위에 있음을 인정받아야 하는 현실이다.

권 변호사는 “노동법엔 ‘노동자’와 ‘사용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용자’가 사용자 측의 의사에 따라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돼 있다. 권한도 행사하고 노동의 이익과 결과도 그대로 향유하면서 노동법이 원래부터 부여하는 책임은 지지 않겠다? 그 책임은 권한도 없는 하청업체에 끼워 넣어서 떠넘기겠다? 이것이 불공정”이라며 “원래 지던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일부라도 우선 법에 명시해 이를 명확히 하겠다는 게 개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역시 “대법원 판례가 이미 있으므로 입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노조법 2조 ‘사용자’ 정의에 “가. 근로자의 노동조건 또는 수행업무,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이나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나. 노동조합에 대하여 노동관계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 등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으로 개정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만 노동할 수 있고, 사업주에 통제돼 일하며, 노동의 대가로 생활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분명함에도, 노조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 수는 221만 명에 달한다. 택배 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이 이들이다.

1998년 파견법 제정 후, 기업이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자신이 고용한 것처럼 사용하는 ‘간접고용’이 허용된 이후, 현재 간접고용노동자는 346만 명에 달한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 등이다.

택배노동자 20억, 하이트진로 27억, 현대제철 246억, 대우조선 470억... 이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은 불법으로 내몰려 수십, 수백억의 손해배상 가압류로 이어졌다. 노동3권을 행사한 것임에도 노조법 등 법률에 의해 불법으로 낙인찍혀 손해배상과 가압류 폭탄을 맞았다.

▲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노조법 3조 개정… ‘손배폭탄 금지법’

운동본부 정책법률팀 윤애림 연구원은 “헌법은 파업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합법 파업으로 인정받는 파업을 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파업의 ‘목적’이다. ‘정리해고 반대’가 목적인 경우,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관련한 핵심적인 노동조건 문제임에도 이를 쟁의행위의 목적으로 하면 위법이 돼 수십, 수백억의 손해배상 대상이 된다. 쌍용자동차 사례(90억 손해배상)가 그 예다.

“노조가 파업을 할 수 있어야 사측과 교섭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교섭 과정에서 해고 규모를 줄이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등 서로 조정이 되는 것인데, 정리해고 반대를 목적으로 한 파업을 위법으로 보면 교섭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게 문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처우, 지위와 관련된 사안으로 파업을 해도 그것이 ‘경영권’ 사항이라면 위법한 쟁의행위로 판단되는 현실이다. 일본 외투자본 자회사인 한국와이퍼는 지난해 10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지만 불과 아홉 달 만에 갑작스런 청산으로 노동자들은 실직 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청산은 ‘경영권 사항’에 해당하므로 노조가 파업을 하면 위법한 쟁의행위로 판단되는 현실이다.

사용자 측은 ▲노조가 파업을 할 만한 대부분의 사항들(목적)은 불법행위로 만들고 ▲업무방해죄나 노조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하며 ▲노조간부, 참가조합원 해고 등 징계 ▲가처분으로 이후 활동 봉쇄 ▲무노동 무임금(노동자들 파업기간 무임금)에 이것도 모자라 ▲영업손실, 고정비 등 수십억, 수백억 손해배상, 가압류, 그리고 노조 탈퇴자는 손해배상에서 제외시켜 주는 방법을 활용해 노조 탈퇴 등 노조 무력화를 시도한다.

운동본부는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 청구가 헌법이 명시한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노조법을 개정해 노동3권이 하위 법률로 인해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9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동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보아야 한다”면서 노동관계법령을 입법할 땐 노동3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운동본부는 “파업의 절차, 목적 등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판단이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고, 손해배상 청구가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것이 아닌, 노동3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온 현실” 등을 지적하며 ▲평화적인 파업에 대하여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차별적인 의사로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원칙 명시 ▲노동조합의 집단적 결정에 의해 계획된 경우,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 제한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의 조합원 수를 고려한 손해배상액의 상한제 도입 검토 등을 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한편, 운동본부는 2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노조법 2·3조 개정과 관련한 공개 토론회를 제안서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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