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의 탄생
노동절의 변천사
노동절의 현재적 의미

▲ 메이데이를 촉발한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을 다룬 삽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 메이데이를 촉발한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을 다룬 삽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노동절의 탄생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파업 집회를 열었다. 당시는 하루 10시간, 주 7일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시위대를 공산 폭도로 규정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 총기를 발포하며 유혈 진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위는 시카고에서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궐기하는 촉매가 되었다. 결국 자본가와 정부는 노동자의 단결투쟁에 무릎을 꿇고 8시간 노동을 보장할 수밖에 없었다.

1889년에 제2인터내셔널이 5월 1일을 시카고 노동자 투쟁의 날로 정했고, 이후 노동절 May Day(메이 데이)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다. 1894년 미국은 사회주의권과 차별을 두기 위해 9월 첫 째주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해 노동절 날짜를 바꿔 버렸다.

미국 정권에 맞서 노동자가 투쟁한 날을 미 연방 정부가 스스로 공휴일로 지정하기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절 변천사

일제강점기 조선의 노동자들은 1923년부터 조선노동총동맹 주도로 5월 1일, 노동절 행사를 진행했다.

독립 직후에는 1945년 11월에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해 5.1절을 기념했다.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 우두머리가 된 미국이 점령한 미군정 하의 38선 이남에서 전평은 미군정청의 눈엣가시였다.

결국 분단지배를 반대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전평은 미군정의 무력 탄압으로 와해 되고, 이후 노동절은 형식적 행사만 치러졌다.

1961년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그 명칭마저도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다. 이는 5·16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노동법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 이루어졌다.

1963년 4월 17일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등의 개악을 통해 노조 무력화와 노동자 통제 기반을 마련한다. 이와 동시에 ‘노동’,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는데 이때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도 공포되었다.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계급의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대한노총이 주도하는 종전의 근로자의 날(3.10) 행사와 의미는 형식화되고, 민주노총의 전신 전노협이 5월 1일 메이데이를 복원했다.

민주노총 출범을 앞둔 1994년 정부는 전노협의 오랜 요청을 받아들여 노동절을 5월 1일로 변경하고 유급휴일로 지정한다. 그러나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그대로 두었다.

현재 국회에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바꾸자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 이름을 노동절로 바꾸고 모든 국민이 쉬는 휴일로 하자는 법안,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은 유지하되 적용 범위에 공무원도 포함시키자는 법안 등 총 3건이다.

노동절의 현재적 의미

자본과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이다. 단결한 노동자의 투쟁을 당할 자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과거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의 생일마저 날짜를 바꾸고, 이름을 왜곡하는 등 가진 수를 써서 노동자의 분열을 획책했다.

‘8시간 노동제’가 단지 1986년 시카고 노동자에만 필요한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투쟁은 전세계로 퍼져 5.1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 ‘8시간 노동만으로 인간다운 삶 보장’, ‘다치거나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미국 노동자든 한국 노동자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청이든 하청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1986년 노동자든 2022년 노동자든 예외일 수 없다.

지금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의 단결투쟁을 막기 위해 노동자를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로 갈라 놓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게 만든다.

노동자가 ‘단결’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잃어버리면 노동자의 집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자기 운명조차 개척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자본가 정권의 우두머리인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사라지고, 차별과 양극화가 최절정에 달한 오늘의 현실은 이런 이치를 깨닫기에 충분하다.

2022년 노동절,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회사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던 120년 전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가진 힘으로 싸웁시다.

내가 남성이면 여성을 위해 싸웁시다.

내가 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을 위해 노력합시다.

내가 큰 회사에 다니면 작은사업장을 위해 외칩시다.

내가 비장애인이면 장애인을 위해 나섭시다.

우리가 가진 노동조합의 힘으로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합시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