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20대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1%에도 못 미치는 0.8%의 근소한 표차지만 어차피 당선은 당선이다. 구정 연휴가 끝난 후에 예상을 뒤엎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오차 범위’를 벗어나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앞서기 시작했다. 그간 본인, 장모, 처와 관련된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가 승리를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 후 정국 전망을 위해서도 먼저 이 원인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 3가지 이유

첫째, 이번 선거는 부르주아 선거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비리 폭로전’이었다는 점이다. 마치 누가 더 나쁜 놈이고, 누가 상대적으로 덜 나쁜 놈인가를 둘러싼 대결 같았다. 이 속에서 윤석열 후보의 비리와 약점은 이재명 후보의 비리와 약점에 의해 상쇄되고, 덮어졌다. 물론 막강한 보수언론의 화력이 총 동원되어 집중 지원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 역시도 한겨레, 경향 등 진보성향의 언론과 KBS, MBC 공영방송의 우호적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재명 후보 선거 전략의 한계가 더욱 결정적이었다. 그의 대표적 공약이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론이 초반 집중 공격을 받아 무력화 된 것이 치명적이었다. 본격적 공방에 들어갈수록 이 공약의 비과학성과 공상성이 드러나서 ‘좌파 포퓰리즘’으로 매도되었다. 이 때문에 그간 경기도지사 때 쌓아 올린 이재명 후보의 실천성에 금이 갔다. 이렇듯 대표적인 공약이 무력화되자 이재명 후보의 나머지 공약들은 별로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중심이 사라진 채 그때그때 내놓는 공약들은 그냥 ‘선심용’으로만 비춰졌다. 그런 정도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재명 후보 자신도 이때부터는 ‘개인’을 더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믿어주세요, 이재명은 한번 한다면 합니다” 등. 그러나 비록 약점 투성이인 윤석열 후보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재명 후보의 개인적 신뢰성 역시 적지 않은 허점이 노출되어 금이 갔다. 형수 욕설, 부인 특혜, 특히 대장동 관련한 것들이 그러하였다. 이재명은 자신의 청렴성과 도덕성으로 윤석열을 압도하려 했던 만큼, 자신의 약간의 ‘티’도 대중들에게는 더욱 크게 보였으며 그 도덕성이 ‘기만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셋째,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집값 폭등, 가계부채, 물가인상 등 ‘경제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코로나 방역 실패도 한몫 했다. 어느 언론사 분석에 따르면 구정 연휴가 끝난 후 갑자기 오차범위 내에 있던 두 후보 간의 박빙의 격차가 깨진 것은 최근 오미크론으로 인해서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애써 쌓아 놓은 탑이 무너지거나 빛이 바랜 셈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가 40%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소위 ‘K-방역’ 덕택이었다. 그런데 이 받침대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 방역이 실패한 것 역시도 근본적으로는 경제문제에 속한다. 자영업자 층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제 때 하지 못한 탓에, 더 이상 이들로부터의 압력을 현 정부가 견딜 수 없어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후퇴했다.

이렇게 보자면 위의 경제문제라는 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 5년의 총 결산인 셈이다. 집값 폭등, 가계부채 문제 등이 그러하다. 야당인 국민의 힘도 ‘정권 심판론’을 앞세웠지 약점이 많은 윤석열 후보의 ‘개인적’ 매력을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다만 부분적으로 강직성, 윗사람(대통령)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소신과 패기, 이런 것들을 ‘원칙의 견지’로 포장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집값폭등이나 가계부채 문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잘못이긴 해도, 그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사실은 더 주요한 측면이다. 그런 문제들은 또한 한국만이 아니라 코로나사태 하에서, 그리고 이전 금융위기 때부터 누적돼 온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30대~40대 층이 현 정권으로부터 이반한 가장 큰 불만은 부동산 문제인데, 이는 코로나 경제위기를 넘기기 위해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양화 정책’에 의존한 결과 생겨난 문제였다. 즉 세계적인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위기의 반영인 것인데, 그 책임을 현 정권이 뒤집어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누굴 원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선거는 원래 자본주의 체제의 ‘합법성’을 주기적으로 재생산 해내는 사명을 띠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너무 많은 모순들이 누적됨으로써 체제 전체가 한꺼번에 붕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쌓인 모순을 그때그때 털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그 주기에 걸렸을 뿐이다.

예상되는 대선 후 정국 – ‘경제 폭풍’이 몰아 친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을 지라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코로나 정국 하에서 억눌렸던 모든 문제들이 앞으로 폭발해 나올 것이다. 끝까지 버텼던 한국도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바이러스 앞에선 마침내 손을 들었다. 이제 중국과 일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백기를 든 셈이다. 한국도 이제부턴 어느 정도 인명의 희생을 감수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며, 경제활동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다. 주관 상으론 코로나19를 마치 ‘독감’처럼 취급하겠다는 것인데, 진실을 말하자면 아직까진 전혀 독감으로 취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독성을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까지 통제할 수 있는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성급히 방역을 푸는 것은 냉혹한 ‘사회적 다윈이즘’을 채택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코로나사태의 잔영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부분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제 정상화를 결심한 한국과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러한 희생을 무시한 채 앞으로 계속해서 나갈 것이다.

이렇게 경제활동이 일상 수준으로 회복되게 되면 그동안 억눌려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하게 된다. 우선 그동안 풀린 엄청난 돈들, 그리고 그 때문에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부동산 등 자산거품, 이에 비해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공급’ 쪽 상황과 더욱 확대된 빈부격차는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되었던 금융위기 보다도 더 큰 세계 경제공황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국이 펼치는 대중국 ‘탈동조화’ 정책은 세계 산업사슬을 더욱 교란시켜 이 같은 공급부족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970년대 출현해 자본주의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괴물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얼마 전 3월초에 발표한 미국의 7%대 소비자물가 인상폭은 이미 그 징후가 농후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위드 코로나’에 따른 경제활동의 전면 재개는 동시에 ‘정치활동’의 전면재개 또한 의미한다. 그동안 금지됐던 옥외 집회와 시위는 허용될 수밖에 없고, 각종 정치행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벌어질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 당하고, 산더미 같은 가계부채에 짓눌린 노동자들과 자영업자 그리고 서민대중들은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 외에는 달리 활로가 없다. 이에 따라 물가상승을 뒤쫓는 임금인상은 불가피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은 전면화되고 장기화 된다.

금년 하반기부터는 경제위기가 가시화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늦어도 내년 중반기부터는 지난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것을 초월하는 경제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지속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며, 그 여파는 한국경제를 강타하게 된다. 그리하여 잔뜩 팽창한 자산거품은 급속도로 꺼지고, 가계와 기업들의 부채문제가 전면화 되며, 이에 따라 금융 부실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정치권은 비상사태에 들어가 특단의 조치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정권을 되찾은 반동 부르주아지의 노동운동에 대한 전면 공세 속에서, 지난 IMF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새로운 계급관계의 정립은 불가피해진다. 현 재벌체제 하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아직까지 별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국 자본가계급은, 필연적으로 지금보다도 한 단계 ‘하향 평준화’된 노-자 관계를 지향할 것이 뻔하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는 선진국 자본에 대해 ‘하청화’와 ’비정규직 전면화‘를 통해서 자신의 활로를 모색할 것이다.

반동 보수세력의 이런 전면 공세에 대해,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세력은 국회 다수의석을 장악하고 있기에 충분히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다.(차기 총선은 2024년 4월에나 있음을 상기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지난 ‘촛불항쟁’ 때와는 달리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이번에 예견되는 경제위기는 자칫 한국 자본주의 전체의 ‘체제’ 위기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에 대해 자유주의세력 스스로도 다른 마땅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동 보수세력이 자신을 대신해서 강경탄압을 통해 대중운동을 일차 정리 해주는 것은 내심 반길 일이다. 욕은 저들이 먹고, 그 대신 차기 선거에서 그 성과를 자신들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그간 위기 때마다 항상 보여 왔던 태도이다.

여기서 만약 이재명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어 민주당 정권의 집권 기간이 다소 연장됐을지라도, 노동자계급 입장에서는 상황은 하등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다만 경사노위 등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면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배신자들을 앞세워 비상 시기인 만큼 ‘대화와 양보’를 통해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며 자진 무장해제를 권고했을 것이다.

이들 간의 차이는 이런 순서를 밟느냐 밟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 자본주의 축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데 있어서 자유주의세력과 반동 부르주아세력 간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이 점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조금도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자유주의세력의 배신이며, 이들 두 세력의 동맹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