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방역과 자본주의 방역 (6)

행정부와 대통령이 미국 사회의 권력 중심에 있긴 하지만, 미국은 정부 부처들이 고도로 전문화 되고 3권 분립 속에 의회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 매스컴 역시 잘 발달되어 있어 여론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만약 이런 것들이 각 분야에서 제대로 작동되었더라면, 트럼프도 그처럼 늦장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견제 장치들은 작동되지 못했던 것일까? 워싱턴포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내분, 지반 싸움과 지도부의 갑작스러운 변동이 코로나 바이러스 작업팀의 사업을 가로막았다. 지도부 내 국무부와 보건위생부와의 의견차이, 백악관과 공중위생기관 사이에 돈에 관한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었다.”

여기서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짚어 보기로 하자.

가. 내부 의견대립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는 미국의 전략을 재조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전염병이 폭발할 때 병원들이 마스크와 호흡기 등 기본 장비를 포함한 필요한 자원을 갖출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임박한 전염병 발생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의 총동원보다도, 전염지역에서 미국인을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지와 같은 후방업무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런 정책은 미국 정부가 자국민 보호에 앞장선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실행 역시 비교적 간단하다. 또 당시 전염병 확산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중국을 욕보일 수 있는 조처이기도 하였는데, 미국 행정부는 2020.1.25. 중국 내 자국 우한영사관 폐쇄 선언과 인원의 철수, 2월 2일 모든 중국 공민 및 지난 14일간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 대한 입국을 거부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비교적 간단한 조처 외에, 보다 과감한 결단을 요하고 또 자칫 표를 잃을 수도 있는 인기 없는 정책(예컨대 '도시봉쇄')은 별반 검토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워싱턴에선 당시 비서실장 대리인 미크 마르와니와 매트 포팅어가 보건복지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무부 고위관리들을 불러 회의를 시작했다. 이 팀은 나중에 아자르와 파우치, 행정부처의 나머지 9명을 포함한 미국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태스크포스의 핵심이 된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외국 감염자의 미국행을 어떻게 막느냐, 수천 명의 해외 미국 시민을 어떻게 대피시키느냐에 두어졌다. 회의는 감염 검사나 의료장비 공급에는 별반 중점을 두지 않았는데, 사후적으로 증명된 바는 이런 것이야말로 긴급히 준비해야 할 방역의 관건적인 것들이었다.

어쨌거나 태스크포스는 2020.1.29. 정식 성립하였으며, 이는 1월 3일 코로나19 관련 보고가 있은 지 26일만이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국무부의 의사일정이 초기 논의를 주도했다. 행정부 관리들은 6000명의 미국인들을 철수시키기 위한 전세기 계획을 세우는데 몰두했다. 그들은 또 앞으로 정부가 발표할지 모르는 '여행제한' 조치에 대해 논의했는데, 1월 29일 멀바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관리들은 여행제한을 '4급'으로 격상하는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이는 국무부가 '여행금지' 경고를 할 것임을 의미했는데, 1월 31일 실제 보건장관 아자르는 지난 2주 동안 전염병 발생 지역에 있었던 비(非)미국 시민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는 나중에 행정부의 이 같은 규제조치야 말로 자신이 전염병 폭발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명했다. 사실 이것은 전체 위기 기간 중 트럼프가 취한 몇 안 되는 조치 중 하나였다.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이러한 조치가 트럼프의 ‘본능’에 맞았다고 비꼬았다. (이는 트럼프가 평소 이민과 난민을 배척하기 위해 ‘외국인을 국경선 밖에서 막는 정책’에 열중했음을 빚댄 것이다.)

하지만 사태 발발 후 한 달이 지나는 사이에 이미 30만 명이나 미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비록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20년 1월 말경 전 세계적으로는 7818명의 코로나19 감염 확진 사례가 있었을 뿐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미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파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특성상 일정한 잠복기를 갖고 발병하기 때문이다. 포팅어(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는 이에 따라 또 다른 여행금지령을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에서 온 여행자를 포함하는 제한 조치가 검토되었다. 이들 국가들도 빠르게 전염병의 새로운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포팅어의 이 같은 제안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포함한 주요 위생보건 관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폐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계획이 스티븐 누친 재무장관 등에 의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했다. 이 같은 현상은 행정부 내 갈등의 초기적 징후로써, 공중위생을 우선시하는 사람과 선거철에 경제와 성장에 어떤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 간의 분열을 초래했다. 여기서 경제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우위를 점하였다. 이리하여 다시 한 달여가 지난 3월 13일이 되서야 미국 행정부는 유럽 발 미국행을 30일간 중단한다는 금지령을 내렸다. 그것도 처음엔 영국이 제외되었으며, 이런 사이 다시 수만 명이 대서양을 건너 왔다.

나. 예산배정을 둘러싼 갈등

여행금지령에 관한 논쟁이 백악관에서 상연되고 있을 때, 공중위생 관리들은 정작 방역에 긴요한 의료장비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의 보호마스크, 그리고 그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자금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2월 초까지 전염병 발발에 대비한 1억500만 달러의 국회 기금이 신속히 소진되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은 완전히 허구는 아닐지라도 아직은 먼 나라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물자 비축을 담당해야 하는 위생 관리들에겐 재앙이 점점 불가피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당시 미국이 비축한 N95 방호마스크, 방호복, 장갑, 기타 물자는 여러 해 동안 자금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부족 상태에 있었다. 부자나라인 미국도 공공부문 자산이 형편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해 해외 공급망이 교란되자, 미국 상점들이 이들 기본 방역물품을 보충하는 일이 위협 받게 되었다. 그것들을 생산하는 설비와 기업들은 대부분 국외로 이전된 상태였고, 해외 공장들 역시도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인해 폐쇄된 곳이 많았다. 각국은 자국의 코로나19 폭발에 대비해 앞 다투어 마스크와 기타 의료장비를 구입하는데 혈안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관련 제품비용은 천정부지로 솟고 공급 독점이 기승을 부렸다.

미국의 보건복지부 지도자들은 1월 말과 2월 초 백악관예산관리처(OMB)에 1억3600만 달러의 자금을 코로나19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금으로 이관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장관 아자르와 그의 조수들도 국회에 수십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매파'들은, 아직 미국에서 감염 사례가 몇 안 되는 상황에서 그렇듯 한꺼번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위험을 과장한 행위로 간주했다.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 위원장인 조 그로건(코로나19 태스크포스 일원)과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이 때문에 충돌했다. 그로건은 이 돈이 올바르게 사용될 것으로 믿지 않았으며, 보건복지부 관리들이 기존 재난 대비자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아자르는 2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두교서 연설을 할 때, 러셀 워터 백악관예산관리처 권한대행과 한켠에서 얘기를 나눴다. 워터는 흔쾌히 동의한 듯 보였지만, 아자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다음날 아자르는 그의 말에 따라 4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자금 신청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는데, 예산관리처 사람들과 백악관 참모들은 이처럼 큰돈을 달라는 요구는 일부러 자신들을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자르는 이날 백악관에 도착해 이들과 긴장된 만남 끝에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아자르가 2020년 1월 31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아자르가 2020년 1월 31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

예산실의 한 대표는 아자르가 의회에 로비 한 후 백악관 관리들이 승인할 수 없는 거액을 요구했다고 비난했다. 아자르는 이러한 비난에 분노하며 긴급 조달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본격 시작되기 전에 백악관 관리들의 마음속에서 그의 지위는 크게 흔들렸다. 이번 입씨름으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더욱 손상을 입었다.

몇 주 후 미국에서도 우려했던 코로나19 전파 사태가 발생하자 백악관 관리들의 태도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예산실을 관리하고 집행하던 팀은 아자르의 요구에 응해 애초 40억 달러를 25억 달러로 삭감한 후, 올 회계연도 내에서만 이 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을 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국회가 오히려 이를 무시하고 예산을 대폭 증폭해 80억 달러의 보완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3월 7일 이 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연의 대가는 매우 컸다.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호흡기와 마스크 및 다른 방호 장비를 비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예산이 통과되었을 때는 이미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다른 많은 나라들과 절박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 연방정부의 실책에 지친 각 주의 관리들도 각자도생에 나서서 스스로 공급망을 찾는 현상이 벌어졌다.

다. 빈번한 태스크포스 교체와 비선체계

미국 관료체계의 정상적 작동을 교란시킨 요인이 한 가지 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의 위기대응을 이끌 태스크포스 책임자를 몇 차례 교체하였다. 처음엔 보건장관 아자르를 실무그룹 책임자로 앉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포팅어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그 일을 맡겼다. 2월 말에는 최종적으로 펜스 부통령이 책임자로 부임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공식 기관을 무시하고 비선체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관리들은 미국의 방역 방향을 바로잡으려 시도하면서, 때론 대통령이 발표하는 성명서 내용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파우치, 아자르 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고 할 때마다, 트럼프는 전염병 대처에 아무런 자격과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그의 고문이자 사위인 쿠슈너이다. 쿠슈너에게 보고할 팀은 따로 보건복지부 청사 7층 공간을 차지하고 일련의 행동을 개시했다. 미국에서 이렇듯 사조직이 발전한 것은 당파투쟁이 심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맞수인 민주당으로부터 격심한 도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편인 공화당 내에서도 ‘이단아’로 취급받았다.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점차 공조직을 불신하고 친족 위주의 사조직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쿠슈너가 수립한 계획 중 하나는 구글로 하여금 코로나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테스트 시설로 안내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이 시설은 원래 전국 각지에 있는 월마트 주차장에 출현해야 하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의 팀이 짠 또 다른 계획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아직 입증되지 않은 항 말라리아 약물을 사용해서 코로나19 병원체에 대항하는 모니터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악관이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이런 약속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위인 쿠슈너의 제안은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방역 관련 실무자들의 일을 종종 중단시키곤 했다. 현직과 전직 관료들은, 보건위생부 관리들과 의학 전문가 파우치, 질병예방통제센터장 레드필드와 다른 사람들이 이 때문에 자신들의 주의를 핵심 업무로부터 백악관의 '허위 요청'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쿠슈너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들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아자르 장관은 그 때문에 중도에 도태되어 정책결정권을 박탈당했으며, 쿠슈너를 비롯한 백악관 관리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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