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주민대회 – 경기 안산 편

주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새로운 정치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전국 20여 기초단체에서 전개된 주민대회를 선별해서 소개한다.[편집자]

“우리 세금 우리가 쓰자”

2019년 6,798억
2020년 4,049억…

안산시가 쓰지 않고 묵힌 예산이다. 경기도 안산에서도 ‘우리 세금 우리가 쓰기 운동’이 펼쳐졌다. 진보당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는 지난 5월부터 9월 초까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남은 세금을 어디에 쓰면 좋겠는지’ 정책제안을 받았다.

3,254건의 제안이 들어왔고, 요구안 선별과정을 거쳐 5개의 주민요구안을 마련했다. 9월27일부터 한 달간 1만 424명의 주민이 참여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세금페이벡(남은 세금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1위를 차지했고, 안산시가 이 요구를 수용해 새해가 시작되면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집 앞에 가로등 하나, CCTV 하나 달아달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돈 없다’ 하더니 이렇게 돈이 많이 있었어요?”
“(주민투표) 잘한다! 한번 해보자!”
“진짜 1만 명이 투표하면 가능한거예요?”
“진짜 재난지원금을 받게된다니 정말 기쁘네요.”

안산시를 향한 ‘분노’, 가능하겠는지에 대한 ‘의문’, 주민대회 활동에 대한 ‘격려’와 ‘가능성’이 겹쳐지는 속에 1만명 이상의 주민투표가 성사됐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가장 유능한 정치인’이 맞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직접정치’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만들고 명령해서 이뤄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 정세경 본부장은 주민의 힘을 느끼고 직접정치의 효능감을 느꼈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 정세경 진보당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 본부장(가운데), 김순재 집행위원장(오른쪽), 양강석 사무국장(왼쪽)
▲ 정세경 진보당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 본부장(가운데), 김순재 집행위원장(오른쪽), 양강석 사무국장(왼쪽)

노동자 ‘우세우쓰 실천단’

1만 주민투표를 달성하고 ‘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1차 성과를 내기까지 ‘우세우쓰 정치실천단’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우리 세금 우리가 쓰기’ 운동을 위해 구성된 노동자 실천단이다.

“노동자는 선거 때만 되면 ‘돈(정치후원금)을 대고 몸을 댄다’는 말을 들으며 진보정당을 반짝 지지하는 데에 머문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런데, 노동자는 주거지에선 시민이고 현장에선 노동조합의 주인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경험한 노동자 당원들이 주민들을 만나서 시민의 입장으로 설명한다면 더욱 잘 할거라 생각했다.” 정세경 본부장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만 하다가 지역 밖으로 나오면 피켓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노동자들이다. 지역실천과 현장실천이 일체화되지 않았던 모습이 ‘우세우쓰 실천단’의 활동 속에선 가능했다. 노동자들은 현장에 나가 동료들에게 정책제안을 받고 주민투표도 받았다. 지역에서의 실천과 현장에서의 실천이 일체화된 것이다.

▲ 정세경 본부장이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진보당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
▲ 정세경 본부장이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진보당 안산주민직접정치운동본부]

직접정치운동의 주인으로 나선 노동자

진보당 안산현장위원회 당원들로 꾸려진 ‘우세우쓰 실천단’. 이들은 모두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안산에서 일하는 금속노동자, 화학섬유노동자, 청소노동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하다가 당원이 된 여러 여성 노동자, 그리고 마트노동자, 택배노동자로 구성됐다.

5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진행된 정책제안운동은 물론 9~10월 진행된 주민투표까지 노동자 실천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먼저, 주민들과 대면하기 전 스스로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주민의 마음으로 안산시 예산의 구성과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봤다. 다른 지역에서 먼저 시작한 주민투표와 주민직접정치란 무엇인지 배우는 ‘직접정치학교’에도 참여했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주민대회였지만 같이 공부하고 단련하면서 우리가 먼저 주인이 돼 노동자 주민 직접정치의 실현 가능성을 보자고 결심했다. 노동자가 진보당 운동의 주인이 되고, 당중심의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실천하고 전면화해보자는 결심을 한거다.” 김순재 직접정치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주말은 없다, 연차도 아깝지 않다

‘우세우쓰 실천단’은 매주 목요일과 주말, 정책제안운동에 힘을 쏟았다. 1만 명의 투표를 받아야 하는 주민투표 시기엔 퇴근 후 저녁시간 뿐만 아니라 주말실천, 그리고 반차와 연차를 쓰면서까지 활동했다. 주민투표는 말 그대로 ‘집단 전투’였다. 4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활동의 목표(투표수)를 정해 실천했다.

첫 주 투표 1,700명을 돌파하는 것을 보고 2주차엔 3,000명 투표를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우천에, 한파까지 이어져 거점투표를 중단하는 상황에 이른다. 당원들과 주민들에게 연락해 투표를 조직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온라인카페를 찾아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2주차가 끝날 무렵 목표치보다 800표가 모자란 2200여 표를 달성했다.

2주차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 3주차 목표를 3,000명으로 정하고 실천에 돌입한다. 아파트 입주민대책위를 통해 투표함도 설치하고 선전물을 부착해 효과는 봤지만 3주차 목표도 2,100여명 달성. 남은 일주일 간 1만 명 투표를 채우기 위해선 4,000표 정도가 모자랐다.

“‘어떻게 돌파할까’ 고민하며 과표를 정했다. 주민 이동이 많은 거점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실천단을 배치했다. 이때에 ‘여기에 와서 투표 받으라’고 제보해주는 주민도 많았다. 매일매일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주일이었다.”

1일차 162표, 2일차 216표, 3일차 446표, 4일차 834표, 5일차 650표, 6일차 923표, 투표 마지막 날 1,093표를 받았다.

이렇게 한달동안 이어진 총 주민투표 수는 10,424표. 목표달성에 성공했다. 연인원 200여 명이 실천에 참여한 ‘우세우쓰 실천단’과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 주민투표를 알리고 있는 당원들.
▲ 주민투표를 알리고 있는 당원들.

변화와 성장

주민대회 실천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성장과 변화도 두드러진다. 그간 1인시위에 익숙했던 노동자들, 주민을 만나는 것에 난처한 얼굴을 했던 노동자들 입에선 “(주민들 만나러) 갑시다”가 먼저 나왔다.

“주민을 대면하는데 낯설고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여유롭게 주민들과 대화를 하며 일취월장했다. 스스로도 ‘내 자신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며 옆에 있는 사람과 선의의 경쟁까지 하더라.”

주민들을 만나 정책제안을 받고 주민투표 100명 이상을 받아 온 노동자도 있다. 동료들이 ‘제발 내일은 쉬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해왔던 노동조합원에서 ‘매일 실천’의 대명사로 거듭난 열정적인 당원의 모습이었다.

또 하나의 모범은 생활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노동자들의 분회 ‘싸리나무 분회’ 활동이다.

예산분석팀의 안산시 예산분석을 토대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민간위탁 문제를 선전물에 반영했다. 이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문제가 주민정책제안운동의 주요 의제에 포함됐고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관심갖고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당은 진보당’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노동자 25명이 당원으로 가입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들은 주민투표 실천까지 결심했다.

“노동조합만으로는 직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감한 당원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이 되어 매주 목요실천, 퇴근 후 실천, 주말실천, 연차 실천활동을 완강하게 진행했다.” 5개의 주민요구안에 대한 주민투표와 함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의 직고용에 대한 찬반 설문’까지 함께 벌여 93% 찬성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력으로, 노동자의 힘으로 1만 투표를 돌파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주민투표를 조직했고 11월 7일 결과를 공표하는 주민대회까지 열었다.

▲ 우세우쓰 실천단의 모범, '싸리나무 분회' 노동자들.
▲ 우세우쓰 실천단의 모범, '싸리나무 분회' 노동자들.

‘당 중심 노동운동’을 고민하다

노동자들이 앞장선 주민대회, 가장 큰 성과에 대해 묻자 정세경 본부장은 “정치는 어느 후보를 뽑는 ‘선거행위’가 아니라 주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 힘을 키우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에서도 근본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안산 노동자 당원들은 주민투표활동에서 주민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도록 안내하고, 진보당 당원으로 조직했다. 정 본부장이 말했던 정치적 힘을 키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김순재 집행위원장이 당활동에 앞장선 노동자들의 모습에 대해 한마디 얹었다. “1만 주민투표를 통해서 당중심 노동운동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올해 초 처음 결심했던 당중심 노동운동의 원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직접정치학교를 마치고 노동자들이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 직접정치학교를 마치고 노동자들이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거 안 했으면 우린 무엇을 했을까?

주민대회를 통해 “‘주민이 답’이고, 주민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는 정세경 본부장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한다.

“이거(주민투표) 안 했으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집권의 모델을 창조해야 할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게 답인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1년이 지나고 보니 후보로서 주민들에게 말씀드릴 내용이 생겼다. 주민대회가 아니었으면 내가 몸소 느꼈을 수 있을까 되돌아본다.”

그래서 내년엔 주민대회에 속도를 낼 생각이다. 이른 시기 정책제안운동을 시작해 주민이 제안한 내용으로 공약을 만들 참이다. 주민 스스로 지방선거 공약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옆에 있던 양강석 사무국장도 자신있게 얘기한다. “주민대회 전과 후 후보의 인지도에서 확실히 차이가 생겼다”는 것.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주민 속에서 노력을 다한다면 안 될 게 없다. 내년 지방선거 무조건 당선된다는 결심으로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실천단이 앞장설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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